주간동아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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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응급’ 아니면 돈 더 내! 무서운 응급실, 환자는 봉!

‘비응급’ 분류되면 진료비 추가…응급실 과밀화 해소 vs 응급 기준 모르는 환자는 억울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1-11 15: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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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은평구에 사는 박모(34) 씨는 최근 한 달 동안 병원 응급실을 드나들었다. 태어난 지 백일 남짓한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은 생후 60일 전후부터 줄곧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먹은 것을 자주 토했다. 동네 소아과의원과 종합병원에 데려가 치료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박씨는 아들을 대학병원 응급실에 데려가 이틀 동안 치료받게 했다. 박씨는 “대학병원 응급실이 만원이라 대기실에서 2박3일 동안 숙식한 끝에 아들을 입원시켰다. 대기실에도 사람이 많아 아기가 감기에 걸리는 등 입원하기 전까지 힘든 과정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진료비 올려서라도 경증환자 막아야”

    박씨의 아기는 경증질환을 앓는 ‘비응급환자’로 분류돼 병원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치료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비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비용이 늘어난다. 응급실에 몰려드는 경증환자를 덜어내기 위한 보건복지부(복지부)의 방편이다.
    2015년까지는 응급실 체류 시간에 따라 진료비가 책정됐다. 응급실에 6시간 이상 머물면 입원본인부담률이 책정돼 총 진료비의 20%를 내면 됐다. 하지만 6시간 내 응급실 이용을 마치면 외래본인부담률이 적용돼 진료비의 50~60%를 내야 했다. 의료계에서는 ‘응급실에 6시간 이상 머무르면 본인부담률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부러 오래 머무르려는 경증환자가 많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따라서 올해부터는 응급실 체류 시간과 무관하게 질환의 경중에 따라 응급실 진료비가 책정된다. 중증환자는 입원본인부담(진료비의 20%), 경증환자는 그보다 비싼 외래본인부담 (진료비의 50~60%)이 적용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시행 시기는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경증환자를 줄이려는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복지부가 2015년 12월 발표한 ‘의료관련감염 예방·관리대책 추진안’에 따르면,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데도 계속 이용하는 비응급환자에게는 본인부담을 늘릴 예정이다. 비응급환자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 24시간 이상 체류할 경우 비급여로 1인실 입원료 수준의 응급실 입원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비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했을 때 부과되는 응급의료관리료는 기존과 같이 본인 부담으로 책정된다. 서울대병원 등 전국 20곳의 권역응급의료센터는 5만6860원, 전문 및 지역응급의료센터는 4만9280원, 지역 응급실기관은 1만8950원이다. 일부 언론은 응급의료관리료가 올해 첫 부과되는 것처럼 보도했지만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비응급환자의 응급의료관리료 제도가 신설됐다는 보도는 오보이며, 기존에도 똑같이 책정해왔다”고 밝혔다.



    복지부의 정책은 그 나름대로 합리적인 면이 있다. 의료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대형병원의 응급실 과밀화’ 문제가 제기돼왔다. 일부 환자가 1·2차 의료기관인 동네의원이나 종합병원보다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형병원 응급실은 감기 등 가벼운 증세를 가진 경증환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과밀도가 높은 20개 병원 응급실 환자의 75%는 경증 및 비응급환자로 분류됐다. 또한 응급실 과밀화는 전염병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 186명 중 88명이 응급실에서 감염됐다.
    정제명 전 대한응급의학회 회장(경북대 의과대 응급의학교실 명예교수)은 “복지부의 정책에 따라서라도 대형병원 응급실 과밀화를 경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회장은 “응급실이 너무 붐비면 의료진이 집중해서 진료하기 힘들고, 한시가 급한 중증환자를 돌보지 못하게 된다. 경증환자에게 진료비를 더 많이 부과하는 것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단기적 방편이라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현장에서 뛰는 종사자도 “복지부 정책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서울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이모(31·여) 간호사는 “병원에는 ‘세상이 평화롭든 전쟁이 나든 관계없이 응급실은 늘 전쟁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응급실이 과포화 상태라 모든 환자에게 빠른 조치를 취하기 힘들다.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해 경증환자는 1·2차 의료기관으로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레지던트로 근무하는 의사 윤모(36) 씨는 “대형병원 응급실 의료진은 과중한 환자 진료와 당직 근무에 지쳐 쉴 틈이 없다. 현재 상태보다 이용객이 줄어야 더 나은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 마음 모르는 일방적 정책

    응급환자의 중증도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5등급으로 구분된다. 당장 소생실로 보내야 하거나 수술이 필요한 중증응급환자는 1등급(소생), 10분 내 응급진료가 필요한 중증응급환자는 2등급(긴급)이다. 지금은 중증이 아니더라도 곧 중증환자가 될 가능성이 있어 30분 내 응급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3등급(응급), 1시간 내 진료해야 하는 경증응급환자는 4등급(준응급)이며, 진료가 긴급하지 않은 환자는 5등급(비응급)이다(Tip 참조).
    하지만 환자는 응급실에 가기 전까지 자신의 응급도를 확인할 길이 없다. 감기 증상이 있으면 단순 감기인지 메르스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경증인 응급환자 진료비를 인상하는 정책에 대해 일부 환자는 분통을 터뜨린다. 특히 영·유아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의 불만이 높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배모(31·여) 씨는 “한밤중에 말도 못하는 아기가 울기만 하는데 응급·비응급 여부를 부모가 어떻게 판단하겠나. 우는 갓난아기는 부모에겐 다 응급환자다. 병원 응급실에 갈 때마다 소아 환자를 냉대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진료비까지 인상된다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경기 김포시에 사는 정모(38) 씨는 “아기가 아프면 비싼 치료비를 내고서라도 큰 병원에 데려가려는 게 부모 마음이다. 1·2차 의료기관에 갔다가 병을 키우거나 추후에 ‘더 큰 병원으로 갈걸’ 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부 방침에 따르면 적은 진료비를 내고 1차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신생아의 건강이 달린 문제라 동네의원 진료가 불안할 때도 있다. 이런 부모 마음을 전혀 모르고 비응급환자 진료비를 인상한다니 화가 난다”고 말했다.


    “돈으로 과밀화 해결 못 해”

    환자단체는 “대형병원의 경증환자 진료비를 인상한다고 응급실 과밀화가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응급실 과포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는 공감한다”면서도 “복지부 정책의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 대표는 “국내에서는 중소병원보다 대형병원 선호도가 훨씬 높고, 응급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존 대형병원 이용자들이 비용 때문에 중소병원에 가는 일은 드물 것”이라며 “2011년 10월에도 ‘경증환자 약값 차등제’를 통해 경증질환자의 상급 종합병원 이용 시 약값 부담률을 30%에서 50%로 늘렸지만 과밀화는 해소되지 않았다. 복지부의 정책은 중산층 이하 환자들에게 비용 및 정신적 부담만 전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의사단체는 “환자에게 병원 선택권을 주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며 환자들과의 인식 차를 드러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대형병원에 비응급환자가 올 경우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중소병원보다 다소 비싼 비용을 받고 진료하거나 의사의 권고를 환자가 받아들이면 중소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할 수도 있다. 즉 환자 스스로 의료서비스와 비용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며 “대형병원에서는 중증질환을 빠르게 구분하는 접수 시스템이 있어 환자가 대기하는 동안 경증질환이 중증으로 확대되는 부작용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환자들이 병원 선택 전 중증도를 파악할 수 없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응급실에서 비응급환자를 걸러내려면 비용 차등화는 불가결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환자들의 요구에 따라 점진적으로 보완할 측면은 있다. 환자의 중증도 분류체계도 개선의 여지가 있고, 병원에서의 대기나 이동 중 증상이 악화할 수 있어 이송제도도 더 발전시켜야 한다. 환자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진료비 인상 정책을 시행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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