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54·사진) 씨는 이름난 글쟁이다. 1990년대부터 음악, 영화, 미식 등에 탐닉해 수많은 글을 썼고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입학 점수가 높은 대학을 졸업했으며, 같은 학교에서 석사학위도 받았다. 번듯한 직장에 들어간 적은 없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배를 곯은 적도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락을 누린 삶. 이만하면 꽤 성공한 인생이라 여길 만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은 어떤가. 그는 두 번 이혼했고, 나이 마흔둘에 갑자기 ‘사망확률 98%’ 진단을 받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내던 어느 날 밤, 이유도 없이 동맥이 70cm나 찢어진 것이다. 응급실에 실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을 때 의사는 “당신에게 남은 날은 길게 봐야 2년”이라고 알렸다. “조금씩 주변을 정리하라”는 얘기를 들은 그날 이후 평생 즐기던 소주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게 됐지만, 사내는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그 덕에 11년도 더 지난 어느 오후, 기자 앞에 앉은 것이다.
여전히 ‘이름난 글쟁이’이면서 이제는 ‘사주쟁이’이기도 한 남자. 죽음을 눈앞에 두고 ‘명리학(命理學)’의 세계에 빠져들어 자칭 ‘좌파명리학자’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인물. 강씨와의 인터뷰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그의 서재에서 진행됐다. 사방을 둘러 책이 빼곡히 꽂힌 공간에서 강씨는 인문과 예술을 탐독하던 자세 그대로 명리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 앞에 ‘좌파’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이 연구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명리(名利)’가 아니라 ‘공공선(公共善)’이기 때문이다.
강씨는 “명리학은 보통 입신양명의 도구로 여겨진다.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 관직에 나아갈 수 있을까,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까 궁금할 때 사람들은 명리학자를 찾는다. 하지만 진짜 명리학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생로병사의 고통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명리학은 개인이 가진 기질과 특성을 파악해 각각의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알려준다”고 했다.
강씨는 “그래서 명리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자신과 더불어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며, 상생을 꾀하게 된다. 저절로 우리 헌법 제1조 1항의 ‘공화(共和)’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요새는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좌파라고 하기에 나도 ‘좌파명리학’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봤다”며 웃는 그의 표정에서 최소한 명리학을 통해 ‘혹세무민’하고 ‘치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저는 원래 종교를 비웃던 사람이에요. 점이나 굿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의지박약하고 주체성 없는 사람이나 그런 데 기댄다고 여겼죠. 명리학을 공부한 지금도 숙명론(宿命論)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고, 사람의 의지로는 이에 결코 저항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거예요. 사주 몇 자 풀어보고 ‘당신은 이렇게 된다, 안 된다’ ‘부적 써라’ ‘굿을 해라’ 하는 사람은 100% 사기꾼이죠.”
강씨는 그런 이를 ‘사주쟁이’라고 칭했다. 그러니 강씨에게 그 호칭은 적합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명리학자’는 그들과 뭐가 다를까. 강씨는 “명리학자는 다른 모든 학자처럼 ‘대체 인간의 삶은 왜 이러한가’를 이해하려는 절박한 욕망에서 출발해 바로 그 문제를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키워드가 ‘운명(運命)’이다.
강씨에 따르면 운명은 숙명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두 단어의 ‘명(命)’이 날 때부터 주어진 요소, 즉 타고난 연월일시(사주)에 따라 정해진 것을 뜻한다면, ‘운명’의 ‘운(運)’은 이를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명’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여기면 명리학은 성립부터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강씨는 “명을 달리 말하면 원국(原局)이라고 하는데, 나를 찾아와 상담하는 사람 10명 중 원국대로 사는 사람은 3명 정도에 불과하다. 사회 안에서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며 “명리학자는 사람의 원국을 읽고 그의 기질과 특성을 파악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할지 조언해주는 일종의 카운슬러”라고 했다.
그는 명리학에 대한 일부 종교계의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도 “모든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구원 아닌가. 명리학은 구원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신앙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명리학은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직면하는 구체적이고 세속적인 모든 사안에 대해 해법을 찾는 하나의 이론 체계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 입문한 동기가 ‘나를 알고 싶어서’라고 합디다. 스스로에 대한 호기심은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거죠. 저도 그랬어요. 마흔두 살에 갑자기 쓰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을 때 ‘내 인생이 왜 이럴까’ 알고 싶어졌어요.”
그때 문득 20여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1980년 1월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이리저리 쏘다니던’ 시절 얘기다.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아버지가 불쑥 ‘사주를 한번 불러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역술가였다.
“사흘 뒤에 오라 하셔서 다시 갔더니 ‘내년에 이번에 떨어진 그 학교, 그 과에 붙을 테니 걱정 마라. 너는 마흔두 살까지는 글 쓰는 걸로 먹고살겠다. 그런데 그 무렵 굉장히 큰 위기가 온다. 잘 넘기면 오래 살겠지만 거기서 삶이 끝날 수도 있다. 특히 건강을 조심하라’고 줄줄 말씀하시더군요. 그러고는 잠깐 쉬었다 ‘그리고 너, 결혼 세 번 하겠다’ 하셨어요.”
채 스물도 안 된 ‘소년’에게 마흔 너머의 건강 위험 따위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 세 번’은 얘기가 달랐다. 강씨가 깜짝 놀라자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세 번 하기 싫으면 처음 결혼할 때 나를 찾아오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씨가 이 기억을 떠올렸을 때 그는 이미 한 번 이혼을 하고, 두 번째 이혼을 앞둔 참이었다.
“당시 전남 해남에서 요양하고 있었는데 바로 후배한테 연락해 서울 서점에 있는 역술 관련 책은 모조리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몸은 무력했지만 머리만은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돌아갔다. 책에서 글씨 한 자 한 자가 날아 들어와 그대로 뇌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공부하자 ‘문리(文理)’가 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리학적 용어와 풀이가 체화된 것이다. 자신의 사주를 들여다보자 비로소 왜 자기 삶이 이러한지가 읽혔다.
강씨의 말이다. 물론 이것이 누구나 그의 ‘친구 아버지’ 같은 명리학의 대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좋은 명리학자가 되려면 문리가 트인 뒤 명리학 지식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실제 인간을 통해 확인하는 통변(通辯·의뢰인의 원국을 해석해 의뢰인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일)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 적어도 3만 명의 원국은 해석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이후에는 세 번째 단계, 영성(靈性)이 필요하다고 한다. 명리학의 마지막 단계가 ‘입산수도’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저처럼 ‘내 삶을 이해하고 싶다’는 정도의 바람을 이루는 데는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잘 알고 있거든요. 세상 어떤 대가(大家)도 나에 대한 정보를 나만큼 갖고 있지 않아요. 또 내 부모, 내 자녀, 내 배우자에 대해, 그들과 내가 주고받는 영향에 대해 나만큼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또 있습니까. 그래서 명리학을 조금만 공부해도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는 일만큼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강씨가 ‘만인의 명리학자화’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명리학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수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찾아가 비용을 지불하는 건 너무 소모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주위에 보면 많은 재산, 높은 지위를 갖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죠. 반면 내 눈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요. 후자의 경우는 자기 원국대로 사는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삶이 고민스럽다면 원국을 한번 들여다보는 게 좋아요. 중요한 결정을 앞뒀을 때도 자신의 원국을 놓고 스스로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 직접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강씨는 최근 이런 깨달음과 원국을 풀이하는 데 필요한 기본 정보 등을 담아 명리학 입문서 ‘명리, 운명을 읽다’(돌베개)를 펴냈다. 생년월일시를 이용해 원국표를 만든 뒤 그 안에 담긴 음양과 오행, 천간과 지지, 합과 충 등을 풀이해 ‘나’를 읽는 데 도움을 주는 자료다. 10개로 구성된 각 장의 끝에는 강씨 본인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가수 조용필 씨 등의 사주 풀이를 곁들여 참고가 되게 했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그가 말하려는 것은 “니 쪼대로 살아라”다. 세상의 시선이나 부모 욕심, 배우자의 바람 등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신의 욕망대로, 무엇이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 우주의 질서 안에서 마음껏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강씨가 10여 년 명리학 공부에서 터득한 것이 바로 그 자유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은 어떤가. 그는 두 번 이혼했고, 나이 마흔둘에 갑자기 ‘사망확률 98%’ 진단을 받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내던 어느 날 밤, 이유도 없이 동맥이 70cm나 찢어진 것이다. 응급실에 실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을 때 의사는 “당신에게 남은 날은 길게 봐야 2년”이라고 알렸다. “조금씩 주변을 정리하라”는 얘기를 들은 그날 이후 평생 즐기던 소주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게 됐지만, 사내는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그 덕에 11년도 더 지난 어느 오후, 기자 앞에 앉은 것이다.
여전히 ‘이름난 글쟁이’이면서 이제는 ‘사주쟁이’이기도 한 남자. 죽음을 눈앞에 두고 ‘명리학(命理學)’의 세계에 빠져들어 자칭 ‘좌파명리학자’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인물. 강씨와의 인터뷰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그의 서재에서 진행됐다. 사방을 둘러 책이 빼곡히 꽂힌 공간에서 강씨는 인문과 예술을 탐독하던 자세 그대로 명리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 앞에 ‘좌파’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이 연구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명리(名利)’가 아니라 ‘공공선(公共善)’이기 때문이다.
강씨는 “명리학은 보통 입신양명의 도구로 여겨진다.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 관직에 나아갈 수 있을까,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까 궁금할 때 사람들은 명리학자를 찾는다. 하지만 진짜 명리학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생로병사의 고통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명리학은 개인이 가진 기질과 특성을 파악해 각각의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알려준다”고 했다.
“나쁜 사주는 없다”
“제가 명리학을 공부했다는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아옵니다. 사주를 건네준 뒤 한 10초 지나면 열이면 열 다 이렇게 물어요. ‘제 사주가 그렇게 나쁩니까.’ 그런데 세상에 좋은 사주, 나쁜 사주라는 건 없거든요. 아니, 우주 전체에 좋은 것, 나쁜 것이라는 게 없습니다. 음과 양, 오행처럼 서로 다른 성질이 어우러져 있을 뿐이죠. 그걸 이해하는 게 명리학의 출발점입니다.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거예요.”강씨는 “그래서 명리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자신과 더불어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며, 상생을 꾀하게 된다. 저절로 우리 헌법 제1조 1항의 ‘공화(共和)’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요새는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좌파라고 하기에 나도 ‘좌파명리학’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봤다”며 웃는 그의 표정에서 최소한 명리학을 통해 ‘혹세무민’하고 ‘치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저는 원래 종교를 비웃던 사람이에요. 점이나 굿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의지박약하고 주체성 없는 사람이나 그런 데 기댄다고 여겼죠. 명리학을 공부한 지금도 숙명론(宿命論)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고, 사람의 의지로는 이에 결코 저항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거예요. 사주 몇 자 풀어보고 ‘당신은 이렇게 된다, 안 된다’ ‘부적 써라’ ‘굿을 해라’ 하는 사람은 100% 사기꾼이죠.”
강씨는 그런 이를 ‘사주쟁이’라고 칭했다. 그러니 강씨에게 그 호칭은 적합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명리학자’는 그들과 뭐가 다를까. 강씨는 “명리학자는 다른 모든 학자처럼 ‘대체 인간의 삶은 왜 이러한가’를 이해하려는 절박한 욕망에서 출발해 바로 그 문제를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키워드가 ‘운명(運命)’이다.
강씨에 따르면 운명은 숙명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두 단어의 ‘명(命)’이 날 때부터 주어진 요소, 즉 타고난 연월일시(사주)에 따라 정해진 것을 뜻한다면, ‘운명’의 ‘운(運)’은 이를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명’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여기면 명리학은 성립부터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강씨는 “명을 달리 말하면 원국(原局)이라고 하는데, 나를 찾아와 상담하는 사람 10명 중 원국대로 사는 사람은 3명 정도에 불과하다. 사회 안에서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며 “명리학자는 사람의 원국을 읽고 그의 기질과 특성을 파악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할지 조언해주는 일종의 카운슬러”라고 했다.
그는 명리학에 대한 일부 종교계의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도 “모든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구원 아닌가. 명리학은 구원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신앙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명리학은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직면하는 구체적이고 세속적인 모든 사안에 대해 해법을 찾는 하나의 이론 체계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 입문한 동기가 ‘나를 알고 싶어서’라고 합디다. 스스로에 대한 호기심은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거죠. 저도 그랬어요. 마흔두 살에 갑자기 쓰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을 때 ‘내 인생이 왜 이럴까’ 알고 싶어졌어요.”
그때 문득 20여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1980년 1월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이리저리 쏘다니던’ 시절 얘기다.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아버지가 불쑥 ‘사주를 한번 불러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역술가였다.
“사흘 뒤에 오라 하셔서 다시 갔더니 ‘내년에 이번에 떨어진 그 학교, 그 과에 붙을 테니 걱정 마라. 너는 마흔두 살까지는 글 쓰는 걸로 먹고살겠다. 그런데 그 무렵 굉장히 큰 위기가 온다. 잘 넘기면 오래 살겠지만 거기서 삶이 끝날 수도 있다. 특히 건강을 조심하라’고 줄줄 말씀하시더군요. 그러고는 잠깐 쉬었다 ‘그리고 너, 결혼 세 번 하겠다’ 하셨어요.”
채 스물도 안 된 ‘소년’에게 마흔 너머의 건강 위험 따위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 세 번’은 얘기가 달랐다. 강씨가 깜짝 놀라자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세 번 하기 싫으면 처음 결혼할 때 나를 찾아오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씨가 이 기억을 떠올렸을 때 그는 이미 한 번 이혼을 하고, 두 번째 이혼을 앞둔 참이었다.
“당시 전남 해남에서 요양하고 있었는데 바로 후배한테 연락해 서울 서점에 있는 역술 관련 책은 모조리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몸은 무력했지만 머리만은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돌아갔다. 책에서 글씨 한 자 한 자가 날아 들어와 그대로 뇌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공부하자 ‘문리(文理)’가 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리학적 용어와 풀이가 체화된 것이다. 자신의 사주를 들여다보자 비로소 왜 자기 삶이 이러한지가 읽혔다.
“자신의 사주를 읽어라”
“명리학은 엄청난 도력을 지녔거나 지난한 수련을 거친 사람만 터득할 수 있는 ‘비기’가 아니에요. 명리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한자는 천간 10자와 지지 12자 합쳐서 22자밖에 안 됩니다. 알파벳보다 오히려 적죠. 이것을 익히고 외워야 할 몇 가지만 머리에 넣으면 누구나 쉽게 명리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강씨의 말이다. 물론 이것이 누구나 그의 ‘친구 아버지’ 같은 명리학의 대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좋은 명리학자가 되려면 문리가 트인 뒤 명리학 지식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실제 인간을 통해 확인하는 통변(通辯·의뢰인의 원국을 해석해 의뢰인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일)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 적어도 3만 명의 원국은 해석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이후에는 세 번째 단계, 영성(靈性)이 필요하다고 한다. 명리학의 마지막 단계가 ‘입산수도’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저처럼 ‘내 삶을 이해하고 싶다’는 정도의 바람을 이루는 데는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잘 알고 있거든요. 세상 어떤 대가(大家)도 나에 대한 정보를 나만큼 갖고 있지 않아요. 또 내 부모, 내 자녀, 내 배우자에 대해, 그들과 내가 주고받는 영향에 대해 나만큼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또 있습니까. 그래서 명리학을 조금만 공부해도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는 일만큼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강씨가 ‘만인의 명리학자화’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명리학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수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찾아가 비용을 지불하는 건 너무 소모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주위에 보면 많은 재산, 높은 지위를 갖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죠. 반면 내 눈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요. 후자의 경우는 자기 원국대로 사는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삶이 고민스럽다면 원국을 한번 들여다보는 게 좋아요. 중요한 결정을 앞뒀을 때도 자신의 원국을 놓고 스스로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 직접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강씨는 최근 이런 깨달음과 원국을 풀이하는 데 필요한 기본 정보 등을 담아 명리학 입문서 ‘명리, 운명을 읽다’(돌베개)를 펴냈다. 생년월일시를 이용해 원국표를 만든 뒤 그 안에 담긴 음양과 오행, 천간과 지지, 합과 충 등을 풀이해 ‘나’를 읽는 데 도움을 주는 자료다. 10개로 구성된 각 장의 끝에는 강씨 본인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가수 조용필 씨 등의 사주 풀이를 곁들여 참고가 되게 했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그가 말하려는 것은 “니 쪼대로 살아라”다. 세상의 시선이나 부모 욕심, 배우자의 바람 등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신의 욕망대로, 무엇이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 우주의 질서 안에서 마음껏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강씨가 10여 년 명리학 공부에서 터득한 것이 바로 그 자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