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2

2022.08.12

투자 세계에도 내비게이션과 자율주행이 있다

[김성일의 롤링머니] 2016년 시작된 투자 자동화 시대… 안전한 투자와 적절한 수익 기대감

  • 김성일 리치고 인베스트먼트 최고투자책임자

    입력2022-08-1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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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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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출근길 차에 시동을 걸어 내비게이션이 켜지면 목적지에 회사 이름을 입력한다. 내비게이션은 3가지 경로를 알려준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2100원 나오는 가장 빠른 경로 A, 통행료가 A의 절반 수준인 경로 B, 무료도로인 경로 C.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경로별 소요 시간은 60~80분인데, 문제는 어느 길이 막힐지 모른다는 점이다. 출근하는 사람이 몰리는 러시아워에는 시간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내비게이션은 경로 C를 추천하기도 한다. 그래서 휘발유 값보다 더 비싼 통행료가 부담될 때는 종종 경로 C로 출근한다. 경로 C의 문제는 초반 1~2㎞를 목적지가 아닌 방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 가려면 북쪽으로 향해야 하는데 먼저 남쪽으로 갔다가 돌아가도록 내비게이션이 알려준다. 그곳에 고속화도로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십 차례 이용해본 도로라 신호등이 없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 더 낫다는 점을 나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괜히 돌아간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심리 때문에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내가 아는 길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과는 대부분 ‘후회’다.

    팩트 확인해도 갈등 생기는 인간의 직관

    ‘그림’에 있는 선 2개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길어 보이는가. 일반적인 경우 아래 선이 더 길어 보인다. 이 실험은 ‘뮐러-라이어(Müller-Lyer) 착시’라고 부른다. 두 직선은 길이가 같으며, 자로 측정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직관은 너무 강력해서 자로 측정한 후에도 위쪽 선이 짧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감각 기능이 착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도 착시현상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지금 보고 있는 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것이 옳다고 느끼는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심리학·정신의학·생물행동학 교수인 매슈 리버먼은 두뇌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두 측면을 ‘반사(직관) 두뇌’와 ‘사고(분석) 두뇌’라는 용어로 구분했다. ‘사고 두뇌’는 선의 길이를 측정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반사 두뇌’는 눈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래도 아래 선이 더 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출근길에 경로 C를 선택한 것은 나의 ‘사고 두뇌’다. 주행 중에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경로를 무시하는 것은 직관을 담당하는 ‘반사 두뇌’다. 사고 두뇌와 반사 두뇌는 사람이 무언가 결정할 때 늘 경쟁한다. 그렇다고 사고 두뇌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운전 중 갑자기 끼어드는 자동차를 피할 때 사고 두뇌만 작동한다면 ‘검토 시간’을 거치느라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반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반사 두뇌는 ‘즉각적으로’ 반응해 핸들을 돌리거나 브레이크를 밟아 충돌사고를 피할 수 있다. 이처럼 반사 두뇌와 사고 두뇌는 상호 보완적 관계다.

    나의 출근길 운전을 도와주는 또 한 가지 장치는 자율주행 기능이다. 자율주행에는 5단계가 있다(표 참조). 레벨1은 조향 또는 감가속 중 한 가지 기능으로 운전자를 지원한다. 내 차에는 레벨2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레벨2는 조향 및 감가속이 동시에 작동하는 부분 자동화 단계로, 핸들을 항시 잡고 있어야 한다. 핸들을 잠시 놓거나 손에 힘이 풀리면 어서 잡으라고 경고를 보낸다. 레벨3은 핸들을 잡을 필요가 없으며 비상시에만 운전자가 관여하면 된다. 정부는 올해 안에 레벨3 자동차 출시와 운행 제도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이다. 2027년에는 비상시에도 시스템이 대응하는 레벨4의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처음 자율주행 기능을 사용할 때는 긴장했지만 점차 신뢰가 갔다. 시내 주행에서는 신호등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오토바이 등 돌발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지만, 고속도로에서는 꽤 유용하다. 차가 막힐 때 앞차와 간격을 자동으로 맞춰주고 차선을 벗어나면 핸들이 자동으로 움직여 차선을 맞춘다. 나보다 운전을 더 잘한다는 생각도 든다. 레벨2 자율주행도 꽤 큰 도움이 되는데 레벨3 이상 단계가 상용화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뇌동매매 막는 로보어드바이저 투자

    투자 세계에도 내비게이션과 자율주행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좋겠다며 ‘투자 경로’를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 역할은 아마도 투자 서적과 강의일 테다. 책과 강사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투자 경로’가 존재한다. 어떤 경로가 자신과 잘 맞는지는 스스로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경로 혹은 자신과 맞지 않는 경로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을 잘 걸러내야 한다.

    투자 세계에서 자율주행은 내가 정한 경로대로 문제없이 투자를 자동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 트레이딩은 정한 규칙에 맞게 시스템이 알아서 트레이딩(매매)하는 것인데, 과거에는 주로 단기투자를 하는 이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온 개념이다. ‘로보’는 자동화돼 있다는 뜻이고, ‘어드바이저’는 내비게이션처럼 안내해준다는 의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베터먼트, 웰스프론트 같은 기업이 로보어드바이저라는 단어를 사용해 널리 퍼졌다. 이들은 자산배분을 통해 투자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챙긴다. 또한 투자자의 손이 최대한 덜 가도록 자동화했다.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간편하게 가입하고 매매 역시 대부분 자동화한다. 2016년 무렵부터 국내에도 많은 로보어드바이저 회사가 등장했다. ‘어느 회사가 가장 좋은가’를 따지기에는 아직 역사가 짧다. 다만 공통적으로 자산배분 투자법을 지향하고, 자동화를 통해 반사 두뇌의 방해를 최대한 억제한다.

    좋은 성능의 내비게이션과 자율주행 기능은 안전하고 빠르게 당신을 목적지로 안내한다. 투자 역시 비슷하다. 자신에게 맞는 철학과 전략을 갖추고 자동화로 뇌동매매를 막는다면 ‘안전’하게 ‘지속’적으로 ‘적절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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