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17

2021.12.03

은수미 기소, 이재명 발목 잡나

뇌물공여 등 혐의 받아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21-12-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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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는 은수미 당시 의원. [동아DB]

    2016년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는 은수미 당시 의원. [동아DB]

    은수미 경기 성남시장의 ‘대표작’은 19대 국회가 끝나가던 2016년 2월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안과 관련해 했던 가장 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저지)다. 그는 화장실에도 가지 않고 10시간 18분간 서서 말을 이어갔다. 1969년 박한상 당시 의원이 ‘앉아서’ 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0시간 14분 동안 했던 3선개헌 반대 발언 기록을 깬 것이다. 앉아서 말하는 것과 서서 하는 연설의 고통 차이는 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은 시장이 국가정보원이 담당할 테러방지법 제정에 강력히 반대한 것은 ‘젊은 날’의 추억 때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인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백태웅, 박노해 씨가 만든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에 참여해 정책실장 등으로 일했다. 백태웅 씨는 1989년 5월 사노맹이 창간한 ‘노동해방문학’에서 ‘이정로’라는 필명으로 “5·18은 준비된 무장봉기였다”고 주장했다. 1988년 출범한 노태우 정부가 민주화합추진위원회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는데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박근혜에 맞섰던 女전사

    그리고 시작된 수사와 재판에서 사노맹은 반국가단체로 규정되고, 은 시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됐다. 이때 고통으로 그는 소장과 대장을 50㎝가량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결핵에도 걸렸다. 1997년 석방된 그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노동연구원에 들어갔다. 박근혜 정권 출범 직전에 있었던 2012년 19대 총선에선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3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은수미와 박근혜’라는 구도를 만들며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니, 테러방지법안에 대한 최장 필리버스터는 당연지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관류하는 시각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은 시장의 발언이 길어지자 김용남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야!”라고 소리쳤다. 그는 “김 의원은 그렇게(공천 때문에)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사과하라”고 받아쳤다. 20대 총선에서 그는 더불어민주당 성남 중원구 후보로 공천됐으나 낙선했다. 그때 성남시장이 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였다. 2018년이 다가오자 당시 이재명 시장은 경기도지사 출마를 굳히고, 민주당은 그를 성남시장 후계자로 옹립했다.

    그런데 2018년 4월 26일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최모 씨가 한 언론에 나와 “(은 시장이 총선에서 떨어진 다음인)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은씨의 운전기사로 일했는데, 월급 200만 원과 차량 유지비 등을 성남시에 있는 한 업체로부터 받았다”면서 “그런데 2016년 12월부터 급여가 지급되지 않아 생계가 어려웠다. 급여를 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은씨의 운전기사 일을 했다는 이유로 수사기관 조사를 받고 벌금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이 내용을 밝히게 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최씨에게 급여를 지급하다 중단한 업체는 경찰이 예의 주시하는 폭력조직 ‘국제마피아파’가 세운 ‘코마트레이드’였다. 이 회사 대표인 이준석 씨는 2016년 제8회 성남시 중소기업인 장려상을 받았다. 그러한 이씨가 해외에 불법도박 사이트를 개설해 운용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는 사실이 바로 확인됐다. 은 시장은 성남시장에 당선했으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그는 “두 사람 사이 거래는 모른다. 나는 자원봉사인 줄만 알았다”고 주장했으나, 최씨는 “나는 가족이 있어 생업을 마다한 채 자원봉사할 처지가 아니었다. 은 시장 측은 주차요금도 내주지 않았는데 이건 자원봉사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받아쳤다.

    1심은 은 시장에게 벌금 90만 원을 선고했으나 검찰 항소로 열린 2심은 벌금 300만 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검찰이 항소 이유로 내세운 ‘양형 부당’은 판사의 심판 대상이 되지 않고 2심이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한 것은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반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그리고 벌금 90만 원형이 확정됐기에 그는 성남시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폭로가 터져 나왔다.

    2018년 8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왼쪽)와 함께 경기 성남시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은수미 성남시장(가운데). [동아DB]

    2018년 8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왼쪽)와 함께 경기 성남시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은수미 성남시장(가운데). [동아DB]

    부하들에게 배척당한 은수미

    지난해 12월 22일 JTBC가 은 시장의 비서를 지낸 이가 “은 시장이 자신의 선거캠프에 참여했던 39명을 성남시와 산하기관에 채용되도록 했다”고 주장하면서 “검찰이 정치자금법 위반을 수사했을 때 은 시장 측은 한 경찰관으로부터 검찰의 수사 정보를 제공받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고 말한 내용을 보도한 것. 전(前) 비서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했다. 올해 3월 31일 검찰은 해당 경찰관을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기소하고, 11월 30일에는 은 시장을 뇌물 공여 및 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에 대해 성남시 측은 “현재 시점에서 지난해 말 JTBC가 보도한 ‘서현도서관 자료정리원 채용’ 등 관련 건은 수사 중으로 진실로 밝혀진 내용은 전무하다”면서 “해당 보도의 39명은 성남시와 산하기관에 채용하도록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전 비서가 1월 25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성남시에 채용된 캠프 출신과 인사 책임자 등을 포함해 신고한 숫자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대장동 게이트로 초토화된 성남시청은 이번 일로 또 압수수색을 받았다. 성남시청은 비리 온상인 복마전 처지가 된 것이다. 국제마피아 소속이었다는 박철민 씨는 이준석 씨와 이재명 후보 사이에서 돈 심부름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은 시장이 기소됐으니 국제마피아와 이재명-은수미 관계는 물론이고, 이석기 전 의원이 연루된 경기동부연합과 은수미-이재명 관계에도 새삼 관심이 쏠리게 됐다.

    왜 은 시장은 거느렸던 이들로부터 거듭 배신을 당하는 것일까. 그는 자신에 대한 수사 정보를 얻으려고 경찰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이로 전락할까. 그가 했던 최장 필리버스터의 여운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과거 운동권은 품성론을 무척 강조했는데 말이다. 이재명 후보와 은 시장은 점점 더 묶여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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