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5

2021.06.25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홀로그램이라면

[궤도 밖의 과학] 물리학에서 말하는 정보의 새로운 정의

  • 궤도 과학 커뮤니케이터

    nasabolt@gmail.com

    입력2021-06-2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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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홀로그램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GETTYIMAGES]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홀로그램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GETTYIMAGES]

    홀로그램은 2차원 평면상에 3차원 입체를 기록하는 기술이다. 반사된 영상으로 간단하게 구현하는 유사 홀로그램 방식은 이미 널리 퍼져 있으며, 누구라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만큼 현실과 차이가 크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것이 홀로그램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이다. 그는 ‘홀로그램 우주’를 주장한다. 우주와 우리가 보는 세계는 홀로그램의 ‘간섭무늬’처럼 실제 세상의 일부분일 뿐이며, 실체는 더 깊고 본질적 차원에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먼저 홀로그램 우주는 ‘정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정보는 보거나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정보는 조금 다르다. 그들에게 정보란 모든 입자의 양자적 특성인 ‘양자 정보’를 뜻한다. ‘책’의 정보라고 치면 책 제목이나 내용이 아닌, 구성하는 입자들이 어디에 어떤 구조로 모여 있는지, 얼마나 빠른지, 어떻게 도는지 같은 양자 정보를 의미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이러한 양자 정보를 갖는 입자들로부터 만들어진다.

    크루아상과 수제비는 둘 다 밀가루로 만들지만, 어떤 조리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여기서 조리법을 정보라고 볼 수 있다. 탄소라는 입자도 나열 방법에 따라 연필심이 되거나 다이아몬드가 된다. 심지어 아주 복잡하게 다른 입자와 섞어서 구성하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정해진 수십 가지 입자로 이뤄져 있는데, 어떻게 나열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이 키를 쥐고 있는 녀석이 바로 정보다. 만약 입자 사이의 특수한 관계인 정보가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면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그저 똑같이 떠도는 입자일 뿐이다. 우리 인류도 마찬가지다.

    블랙홀로 들어간 정보는 파괴될 수 있을까

    블랙홀이 방출하는 열 복사선을 찾아낸 스티븐 호킹. [GETTYIMAGES]

    블랙홀이 방출하는 열 복사선을 찾아낸 스티븐 호킹. [GETTYIMAGES]

    정보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현대 물리학의 기반이 되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법칙을 만들었다. 정보는 어떤 경우에도 파괴될 수 없으며,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의 총량은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 책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더라도 원 정보는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책에 가해진 에너지를 꼼꼼히 계산하고, 입자를 하나하나 모아 재구축하는 게 가능하다면 다시 책을 원래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정보는 절대 파괴될 수 없고 또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원 책의 정보가 굉장히 해석하기 어려운 정보로 형태가 바뀐 것뿐이다. 이게 무너지면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과학적 발견은 전부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블랙홀이라는 강력한 천체의 발견은 과학자들에게 공포를 선사했다. 단순히 빛조차 빨아들이는 무시무시한 중력 때문이 아니다. 블랙홀의 등장은 정보와 관련된 절대적 법칙을 무너뜨려버렸다. 블랙홀은 막대한 질량이 아주 작은 한 점에 집중돼 있을 때 만들어진다. 물론 차원조차 의미가 없기에 실제 점도 아니다.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경계를 넘으면 블랙홀과 블랙홀을 제외한 모든 것은 철저히 분리된다. 우리가 블랙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것처럼, 안에서도 경계 너머에 있는 우리를 볼 수 없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블랙홀로 들어간 물질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고민이 과거에 많이 있었고, 화이트홀이라는 이론적 출구가 만들어졌다. 빨려 들어간 물질들이 혹시 화이트홀을 통해 배출되지 않을까. 하지만 스티븐 호킹 덕분에 화이트홀이라는 존재는 불필요해졌다. 그는 블랙홀이 물질을 방출하는 ‘호킹 복사’를 찾아냈다.



    호킹 복사는 양자 중력 이론의 하나로, 블랙홀이 방출하는 열 복사선이다. 텅 빈 것 같은 진공 상태를 아주 작은 세계에서 바라보면 사실 입자와 반입자가 무한하게 생성됐다 서로 충돌해 소멸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불확정성의 원리로 인해 볼 수 없다. 쉽게 말해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코로나19 잔여 백신 알림이 와 확인하면 보기도 전 이미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이런 현상은 우주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호킹은 이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를 블랙홀 근처로 옮겨보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천체와 아주 작은 양자 세계의 현상을 연결해버린 것이다. 정확하게 사건의 지평선을 사이에 두고 생성된 입자와 반입자는 바로 다시 만나 사라지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의 지평선 때문에 둘은 완벽히 분리돼버렸다. 블랙홀 안쪽의 반입자는 결국 내부의 입자를 만나 사라질 테고, 바깥쪽의 홀로 남은 입자는 반입자를 찾아 떠난다. 결과적으로 블랙홀은 입자가 하나 줄고, 블랙홀 밖의 세상에는 입자가 늘어난다. 1974년 호킹은 호킹 복사를 통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블랙홀들이 사건의 지평선에서 입자를 조금씩 내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라면을 끓일 때 수증기가 나오는 것처럼, 서서히 증발하다 보면 마침내 냄비는 물을 잃는다. 이게 사실이라면 블랙홀에 들어간 책도 호킹 복사를 통해 나올 수 있다. 다만 나온 녀석은 책이 아니다.

    블랙홀 정보 역설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

    만약 우주가 홀로그램이라면
그곳에 빨려 들어간 사람은 어떻게 될까. [GETTYIMAGES]

    만약 우주가 홀로그램이라면 그곳에 빨려 들어간 사람은 어떻게 될까. [GETTYIMAGES]

    이제, 얼마나 큰 문제가 벌어진 것인지 감이 올 수도 있겠다. 책이든, 신발이든 일단 블랙홀로 들어갔다 나오면 정보를 잃는다. 블랙홀은 무한한 우주의 역사에서 어느 순간 완전히 증발해 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블랙홀은 존재하는 양자 정보를 빨아먹고, 호킹 복사를 통해 기존 정보를 상실한 녀석을 꾸준히 내놓은 뒤 유유히 퇴장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를 지워버리는 구간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얘기다. 정보는 우주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우주 자체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우주는 전부 정보를 통해 기술되며, 정보란 절대 파괴될 수 없고, 우주 전체 정보의 총량은 일정해야 한다. 그런데 블랙홀이 이것을 자비 없이 무너뜨려버린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블랙홀 정보 역설’이라고 부른다.

    블랙홀은 모든 정보를 흡수해 전부 똑같이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즉 정보를 파괴할 수 있으며, 정보는 파괴될 수 없다는 명제마저 함께 파괴해버렸다. 블랙홀 내부에 들어가거나 블랙홀이 방출하는 물질을 모두 모아 분석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과학자들은 싸우기 시작했다. 호킹과 인터스텔라로 유명한 킵 손은 블랙홀에 들어간 정보는 파괴돼 회수할 수 없기에 역설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대 측 진영에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 물리학자이자 내기의 달인 존 프레스킬이 있었다. 사건의 지평선 내부와 외부에 관측자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상보성으로 인해 아무도 두 가지 상황을 동시에 볼 수 없으니 모순이나 역설은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우리가 알 수 없으니 정보 역설은 풀렸다고 믿었고, 호킹은 이를 인정했지만 킵 손은 인정을 거부했다.

    이후 끈 이론으로 블랙홀을 설명하는 퍼지볼(fuzzball) 가설이나, 사건의 지평선 대신 방화벽을 세우는 블랙홀 방화벽 역설 등 다양한 견해가 등장했다. 심지어 헤어진 연인의 사진이 담긴 디지털카메라가 고장 나 사진을 꺼낼 방법이 없는 것처럼, 정보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영원히 꺼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주장도 나왔다. 몇몇 과학자는 정보라는 것은 블랙홀 안으로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 홀로그램 우주 가설이다. 블랙홀 밖에서 보면 정보는 블랙홀의 경계에 그저 붙어 있을 뿐이며, 블랙홀이 정보를 빨아들여 파괴하는 게 아니라 사건의 지평선 표면에 암호화해 기록해둔다면 어떨까. 블랙홀의 질량이 증가할수록 사건의 지평선도 증가하기에 정보를 보존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그래서 무한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게 된다는 원리다.

    요즘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많이 읽는다. 둘은 기록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지만, 똑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즉 블랙홀은 3차원에 있는 정보를 2차원으로 암호화해 기록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평면상에 입체로 기록하는 기술, 바로 홀로그램이다. 만약 3차원 정보가 사건의 지평선에 2차원 형태로 저장된다면 호킹 복사를 통해 암호화된 정보를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정보는 블랙홀과 무관하게 파괴되지 않으며, 현대 물리학은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보 역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신은 주사위를 굴린다”

    여기서 한 단계만 더 나아가보자. 만약 우주가 홀로그램이라면 그곳에 빨려 들어간 사람은 어떻게 될까. 아마 평소와 다름없는 세계를 경험할 것이다. 밖에서 본다면 2차원의 평평한 모습이겠지만, 같은 차원인 내부에서는 어색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그럼 현재 우리가 비슷한 처지라면 어떨까. 이미 우리는 블랙홀 안에 들어와 있고, 표면에 2차원으로 암호화돼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면 현실이 정말 3차원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라는 개념이 있다.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멀어지는 영역은 관측할 수 없으며, 인류가 볼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혹시 3차원인 우리 주위를 둘러싼 2차원의 표면으로 이뤄진 경계는 아닐까. 마치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처럼 말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단지 그 정보를 홀로그램처럼 투영한 것이며, 실체는 여기 대신 우주 바깥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인류에게 흥미로운 숙제를 남긴 호킹은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던 아인슈타인은 틀렸다. 블랙홀을 떠올리면 신은 아마 주사위를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던져놓았을 것이다.” 언젠가 인류가 블랙홀의 비밀을 풀고, 신이 던진 주사위라는 진리에 다가갈 날을 기대한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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