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8

2020.12.11

주한 미 지상군 전투부대 철수, 내년 6월이 고비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10-17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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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맹(Alliance)의 사전적 정의는 둘 이상의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가 서로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동일하게 행동하기로 맹세하여 맺은 약속이나 조직체, 또는 그런 관계다. 동맹이 체결되기 위해서는 공통의 목적이 있어야 하고, 동맹의 구성원들에게 공통의 이익이 주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동맹은 비슷한 상황의 국가들끼리 체결되기도 하지만, 국력의 차이가 현격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도 종종 체결된다. 강대국은 약소국과 동맹을 맺어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약소국은 강대국과의 동맹으로 안보 소요를 채운다. 1953년 10월 1일 시작된 한미동맹이 바로 그러한 동맹이다.

    자율성-안보 교환 모델

    10월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 [국방부 제공]

    10월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 [국방부 제공]

    국제정치학에서 한미동맹은 자율성-안보 교환(Autonomy-Security trade-off) 모델로 설명된다. 이 모델에서 약소국은 동맹인 강대국의 힘을 빌려 안보 소요를 충족하는데, 강대국은 그 대가로 그 약소국에 정치·경제·군사·안보 등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미동맹 역시 그런 모습이었다. 

    현실주의 관점에서 보면 1953년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것이 체결될 당시, 이 조약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조약이었다. 양자 동맹은 동맹을 체결한 두 국가 모두에게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체결함으로서 안보 소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안보 리스크를 줄여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등 많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6‧25 전쟁 장기화로 인해 반전 여론이 상당했다. 한국전쟁에 대해 미국인들이 느낀 염증은 민주당의 20년 장기 집권에 종지부를 찍게 했고, 한국전 종식과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뗄 것을 공약으로 내건 공화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정도였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동맹을 맺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국내정치적으로도 그랬고, 세계전략 차원에서도 압도적인 해·공군력을 바탕으로 일본-대만을 잇는 방어선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한국에 미군을 진주시킬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탁월한 협상력으로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응했고, 결국 한미동맹이 탄생했다. 



    조약 체결 당시 한국과 미국의 국력 차이를 생각해보면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이라는 표현은 얼토당토않았다. 그러나 양국은 상호방위조약이라는 이름으로 조약을 체결했고, 조약 전문과 본문에 당사국 중 어느 한 나라라도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인정될 때 서로 협의하고 돕자고 합의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문에는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라고 적시했으며, 본문 제2조에는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自助)와 상호 원조에 의하여 무력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이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할 것이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동맹

    요컨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름 그대로 서로 돕도록 약속한 조약이고, 미국은 지난 70여 년간 이 조약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식량과 물자, 자금을 지원해 한국의 경제 발전을 도왔고, 막대한 무기를 무상 지원해 한국군의 양적 팽창과 현대화를 도왔다. 1978년에는 우리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고, 한반도 전구작전을 지원할 다양한 부대와 전력을 배치했다. 그 덕분에 한국은 안보 리스크를 줄이고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고, 한미동맹은 안보와 초고속 압축 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동맹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 한미동맹은 지난 2002년, 불행했던 한 사건을 계기로 우후죽순 확산된 반미 정서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반미 정서를 주도하며 정치적 세력화에 이용했던 어떤 정치 세력이 수권(授權)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10월 1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거의 파탄 직전의 상황이 연출됐다. 

    이번 SCM은 평소 한미관계가 공고하다는 정부 입장을 대변해온 친정부 매체들조차 역대 가장 논쟁적인 회의였다고 평가할 만큼 험악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서욱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위비 분담금과 같은 거시적인 현안은 물론 연합훈련과 확장억제 등 세부 현안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충돌하더니, 결국 당초 약속했던 회의 후 공동 기자회견을 취소시켰다. 

    국방부는 에스퍼 장관이 얼마 남지 않은 미국 대선 관련 일정이 바빠 불가피하게 공동 기자회견이 취소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번 대선에서 국방부와 미군은 철저하게 중립을 지킬 것이고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수차례 밝힌 에스퍼 장관이 대선 때문에 바쁠 일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 국방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자회견 일정까지 날려버린 미국의 분노는 공동성명 전문 곳곳에서도 발견된다. 미국은 최근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노골적으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한국에게 경고라도 하듯 공동성명 안에 “한미관계의 기반인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공동의 가치와 미래 국방협력, 상호 신뢰 등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것임에 주목했다”라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공동성명에는 그동안 한국정부가 고집해온 표현인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라는 표현 대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라는 표현이 들어갔으며, ‘족보 없는 유엔사’ 등 최근 한국 여당 의원의 발언을 의식한 듯 “유엔사가 한반도에서의 정전협정을 이행하고 신뢰구축 조치를 실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강조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미국은 또 공동성명에 최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수차례 문제를 제기해 온 주한미군 훈련 중단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한국 측의 협조, 연합다목적실탄사격장 건설을 못 박았고, SCM 직전 한국군 수뇌부에서 나온 “전작권 조건이 문제가 될 경우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을 일축하고 당초 합의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재확인한다는 문구도 명시했다.

    위기관리합의각서

    이수혁 주미대사(사진 위쪽 TV화면 가운데)가 10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이수혁 주미대사(사진 위쪽 TV화면 가운데)가 10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이번 공동성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1항이었다. 이 항에서 미국은 지난 2016년 작성된 위기관리 합의각서를 최신화 할 것을 요구했다. 위기관리합의각서란 한미연합위기관리 대응 지침을 규정한 최상위 문서로서 연합위기관리의 범위가 규정하고 있다. 현행 위기관리 각서에는 연합위기관리의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로 제한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 문구를 수정해 ‘미국 유사시’라는 조항까지 추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말부터 위기관리 각서 개정 요구를 들고 나왔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미국의 이러한 요구는 한미동맹이 ‘상호방위조약’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나온 지극히 당연한 요구였다. 조약이 체결될 당시에는 한국이 절대적 약소국이었고,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인 지원을 받는 수혜국 입장이었지만, 현재는 경제·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견국가로 성장했으니 이제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였다. 

    그러나 현 정부는 미국 측 요구대로 위기관리 각서를 개정할 경우, ‘미국 유사시’, 즉 미국과 중국의 충돌 등에 휘말리게 될 것을 우려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명시된 조약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뜻을 미국에 밝힌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이러한 주장은 상호방위조약을 이행하지 않겠다, 즉 동맹을 종지(終止)하겠다는 뜻으로 비춰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미국과 경제·안보 모든 분야에서 반대의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주미대사가 워싱턴 D.C 한복판에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동맹을 하라는 것이냐”는 망언을 내뱉었고, 외교부장관은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국 주도의 반중(反中) 협력체 쿼드(QUAD)에 대한 반대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10월14일 열린 제5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는 미국 측의 화웨이 배제 요청과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요청을 거부했고, 같은 날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에서는 상호방위조약 이행을 위한 위기관리 각서 개정을 거부했다.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급격한 탈미(脫美)에 대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선임보좌관을 역임했던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은 최근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대통령이 미국 의회, 행정부의 입장과 이렇게까지 일치하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한국에서 美 지상군 전투부대 사라지게 돼

    결국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양국은 매년 SCM 공동성명에 주한미군 병력의 현 수준 유지라는 조항을 반드시 포함시켰지만, 올해 공동성명에서는 주한미군 현상 유지라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 측은 미국에 이 조항을 포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 측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최근 미국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라이언 매카시 육군장관, 제임스 인호프 상원 군사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들이 잇달아 인도태평양지역 미군 재배치 이슈를 언급한 바 있었다. 최근 미국은 대중(對中) 군사력 운용 효율 극대화를 위해 다영역작전(Multi-domain operation) 개념을 발전시켜 나가며 편제 개편과 교리 수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새로운 교리와 편제에 따르면 다수의 지상군 전투 병력과 지원부대가 좁은 지역에 몰려있는 주한미군은 ‘FM’에서 벗어난 ‘이단’과 같은 존재가 된다. 

    한국이 상호방위조약 이행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히고,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군의 전략과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북한·중국군 화력의 직접 위협에 노출된 지역에 미군을 배치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인식은 미 국방부에서는 거의 입장 정리가 끝난 분위기이고, 주한미군 감축을 반대해온 의회조차 최근 상원 군사위원장이 “최근 국방부가 밝힌 인도태평양 미군 재배치 계획은 현명하다”며 공개적지지 입장을 밝힘으로써 주한미군 감축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은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주한미군은 순환 배치되는 1개 기갑여단의 작전 지원을 위해 제반 지원부대가 배치되어 있는 구조다. 미국은 국방수권법에 따라 10월15일, 한국에 새 순환배치 부대로 제3보병사단 예하 제1기갑여단전투단을 파견해 기존의 제1보병사단 제2기갑여단전투단을 대체했는데, 미국이 후속부대를 지정하지 않고 내년 6월 이 부대가 떠나면 주한미군은 지상군 전투부대가 사라지게 된다. 

    제8군 예하 유일한 지상전투부대인 순환배치 여단이 사라지면 이를 지원하는 제2전투항공여단, 제210야전포병여단, 제1통신여단과 같은 전투지원부대는 물론 이들 지상군 부대의 전구작전을 지원하는 제19원정지원사령부와 제65의무여단, 제501군사정보여단도 한국에 주둔할 의미가 사라진다. 이들의 전구작전에서 방공과 근접항공지원 임무를 맡는 제7공군의 2개 전투비행단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떠나면 주한미군에는 극히 일부의 지휘·행정·연락부대만 남게 된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미국이 절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20년 전, 미국이 군사혁신(RMA : Military in Military Affairs)을 추진하며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 :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을 발표했을 때도 나왔던 ‘인지부조화’에 불과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지 못할 것이라는 이들의 전망과 달리 미국은 중사단(Medium Division)이었던 제2보병사단 예하 4개 지상전투여단 중 3개를 뺐고, 주한미군 병력은 1만 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다영역 작전과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앞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다영역작전이라는 전혀 새로운 작전 개념에 맞춰 군사력의 구조와 편제, 배치를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센서와 타격자산의 유효 범위가 기존의 상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는 다영역작전 전장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의미가 없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맹은 공통의 목적과 이익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 역시 상호방위조약이라는 형태로 탄생했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 동맹의 일방으로서 다른 일방과 목적과 이익을 공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조약문에도 명시된 상호방위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라에게 다른 일방이 자신의 돈과 인력, 그리고 정치적 부담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헌신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끝없이 파열음을 내던 한미동맹도 이제는 끝이 보인다. 중화민족주의의 광풍에 휩싸인 중국이 한국을 노려보고 있고, ‘게임 체인저’를 완성한 북한이 발사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지금, 미국의 손을 놓고 홀로 폭주하고 있는 이 정부는 과연 우리 국민을 온전히 보호할 능력이, 아니 의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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