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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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강화로 생기는 화병 ‘코로나 레드’, 생활 리듬 조절로 치유해야

  • 정동청 정신과 전문의(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입력2020-09-06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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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의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정체불명의 질병에 대해 경고했을 때만 해도 인류의 삶이 이렇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사람들은 바이러스 공포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생활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이 힘든 점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구나 최근 확진자가 다시 빠르게 늘어나면서 우리가 겪는 고충이 더욱 커지고 있다.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개인이 경험하는 고충의 종류와 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은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 생소하게 느껴지고, 친구들과 마주할 수 없는 단절된 생활도 힘들 것이다. 취업준비생은 학원이나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서 불가피하게 계획에 차질이 생긴 점을, 직장인은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점을 호소한다. 엄마들은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종일 가사와 육아를 병행해야 하니 어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화병 키우지 말고 운동이나 취미로 풀어야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우울증을 넘어 화병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GETTYIMAGES]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우울증을 넘어 화병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GETTYIMAGES]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경제적 문제 또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구직자들은 취업 기회 자체가 줄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지어 아르바이트 자리도 경쟁률이 너무 높아 구하기 어려워졌다. 자영업자는 생계 자체에 위협을 느끼고, 직장인 역시 경기가 안 좋아져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나 많이들 걱정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많다 보니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는데, 최근 들어선 그 정도를 넘어 민감한 사회 이슈에 ‘부글부글’ 치미는 분노를 해소하지 못해 화병 증세까지 보이는 이가 늘고 있다. 

    최근 병원에 찾아와 화병을 호소하는 사람 중에는 아파트 값이 폭등해 망연자실한 3040세대 가장도 있고, 임대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친정 부모가 세금 폭탄을 맞아 잠을 못 이룬다며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딸도 있으며, 한동안 낮아지던 자살률이 최근 다시 높아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았다는 이유로 핏대를 세우는 할아버지도 있다. 

    사실 화병은 우울증의 한 종류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국인의 문화적 특수성을 반영한 우울증의 개념이고 억울함, 울분의 감정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내가 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니까 억울함과 울분의 감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슴을 누르는 화를 더는 참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면 마음속까지 벌겋게 타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러다 ‘코로나 블루’가 아니라 ‘코로나 레드’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판이다. 



    의사인 필자도 요즘 울분을 많이 느낀다. 공공의대 등 의료정책에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을 두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쁜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으니 억울함을 참기가 힘들다. 시민단체 추천을 통해 공공의대 입학 여부를 결정한다는데, 이는 힘깨나 쓰는 분들의 자제가 손쉽게 의사가 되는 방편으로 악용될 소지가 매우 높다. 그런 정책을 굳이 지금 시점에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지금, 사냥도 안 끝났는데 사냥개를 잡아먹을 만큼 시급한 정책인지도 의문이다. 

    얘기가 잠깐 옆으로 샜지만 이런 어려움은 결국 각자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일상생활 리듬을 유지하면서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해야 한다. 취미생활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미생활도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내가 재미있고 만족스러우면 그게 좋은 취미생활이다. 운동 역시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동영상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집에서 혼자 운동할 수도 있고,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를 잘한다면 사람이 많지 않고 개방된 공간에서 산책, 조깅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다. 스트레스 양을 조절할 필요도 있다. TV나 휴대전화로 뉴스를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뉴스 시청 시간을 줄이거나 뉴스와 접촉을 끊으면 될 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 맞는 대처 방식 개선 절실

    스트레스 정도가 일상적인 수준을 벗어났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울, 불면, 가슴 답답함, 소화불량 같은 증상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적인 어려움을 털어놓는 일 자체가 도움이 될 수 있고, 공황장애나 우울증으로 발전하면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상담이나 치료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꿔주지는 않지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은 할 수 있다.

    TV를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시청을 줄이거나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GETTYIMAGES]

    TV를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시청을 줄이거나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GETTYIMAGES]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접어든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국민의 정신적 피로를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부의 대처 방식은 확진자가 발생하는 집단의 문제점을 부각하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초기 전염 차단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고 감염 경로가 분명하지 않은 확진자가 대량 발생하는 시점에는 오히려 대중의 피로감과 심리적 스트레스만 가중할 수 있다. 

    단순히 확진자 수와 감염 경로를 발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 연구와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를 병행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확보, 정리한 뒤 그 정보를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또한 확진자가 지금보다 급증하는 상황에 대비해 장비와 인력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대중의 불안을 줄이려 노력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 역시 단편적인 뉴스보다 전체적인 정보를 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확진자가 비난의 대상이 아닌, 우리가 보듬어야 할 피해자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고 우리는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 변화는 우리에게 낯설고 당황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항상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남았다. 현실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 현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대처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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