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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숫자를 세기 위한 무한 도전 [궤도 밖의 과학-27]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큰 숫자를 세기 위한 무한 도전 [궤도 밖의 과학-27]

2019년 개최된 전국체전 주경기장의 무한대를 형상화한 조형물.[동아DB]

2019년 개최된 전국체전 주경기장의 무한대를 형상화한 조형물.[동아DB]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이라 불리는 무한도전에서 ‘무한’은 어떤 의미로 사용된 걸까.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을 거쳐 ‘무한도전’으로 안정되었고, 늘 방송의 시작에서 출연진이 함께 ‘무한도전’을 외치지만 그 의미는 모호하다. 물론 수학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이며, 프로그램명으로는 나쁘지 않다. 우리는 이미 무한대라는 표현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놀면 뭐하냐는 의문에 답하며 동 시간대 맥을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 아쉽게도 개성 넘치는 방송인들의 도전은 무한 번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563회로 막을 내렸다. 끝날 때를 몰랐기에 ‘563회 도전’ 대신 ‘무한도전’으로 시작을 했을까. 이 프로그램은 비록 무한하진 않았지만, 무한할 것만 같던 희망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쉽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무한대, 정말 그리 간단한 개념인지 확인해보자. 

큰 수의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호텐토트 부족은 1부터 3까지는 숫자를 셀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조건 많다고 대답한다. 콩고 분지에 사는 키가 작은 피그미족은 아, 오아, 우아, 오아-오아, 오아-오아-아, 오아-오아-오아라고 숫자를 센다. 역시 6을 넘어가면 그저 많다고 할 뿐이다. 좀 더 많이 셀 수 있는 부족은 뉴기니섬의 파푸스족이다. 이들은 각 숫자에 대응되는 신체를 이용해서 셈을 하는데, 오른쪽 새끼손가락부터 왼발 새끼발가락까지 이용하면 무려 41까지 셀 수 있다. 혹시 더 큰 수가 필요할 때는 여러 명이 모여서 몇 번째 사람의 왼손 엄지손가락이라고 하는 식으로도 응용한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식 같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다 새로운 수 체계가 필요했다. 

고대에는 각각 숫자에 해당하는 특별한 기호를 만들었고, 그 기호를 해당하는 단위에 맞추어 반복해서 적는 형태로 숫자를 썼다. 그러다 보니 혹시 로마인에게 30만이라는 숫자를 적어보라고 한다면, 그는 점토판 위에 뾰족한 필기구로 최선을 다해 종일 끄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한대까지 도달하기는커녕 아직 큰 수를 적는 것조차 버거웠다. 기원전 3세기가 되어서야 드디어 제대로 된 거물급 프로 계산러가 등장했다. 바로 고대의 대표적인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르키메데스다. 그는 매우 큰 수를 세고 싶었고, 우선 어떻게 큰 수를 불러야 할 지부터 고민했다. 당시 존재하던 가장 큰 수는 1만이었는데, 1만과 1만을 곱한 1억, 즉, 108을 1차수로 정했고, 여기에 108을 곱한 1016을 2차수로, 또 곱하면 3차수, 이런 식으로 108차수까지 만들었다. 차수가 1억 개 있다는 뜻이며, 쉽게 말해 지수의 법칙을 사용한 반복적인 지수 함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이렇게 큰 수를 만들어낸 이유는 모래알이 무한하지 않고, 충분히 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나온 논문이 바로 ‘모래알을 세는 사람’이다. 당시 시칠리아섬 시라쿠사의 왕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논문을 썼는데, 대중에게 연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최초의 논문이 되었다. 우리가 모래알을 세지 못하는 이유는 그 수를 부를만한 이름이 없기 때문이며, 매우 큰 수를 부를 방법만 있다면 세상에 세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심지어 그는 당시 알려진 지동설을 바탕으로 우주의 크기를 추정하고, 우주 전체를 채우는데 필요한 모래알의 개수를 제시했다. 물론 당시 아르키메데스가 생각하던 우주의 크기는 지금 밝혀진 크기에 비하면 너무 작았고, 반대로 우주는 원자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지 않기에 어긋난 결과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접근 방식은 놀라울 만큼 과학적이었다.

일부와 전체가 같다는 수학적 의미

이제 충분히 큰 수는 세어본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목표는 그저 크기만 한 수가 아니다. 무한하지 않다면, 충분한 시간을 통해 어떻게든 그 수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을 기울여도 결코 써 내려갈 수 없는 상태가 있다. 바로 무지막지하게 큰 수조차 가뿐히 뛰어넘는 무한대(∞)다. 기호 ∞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개념 자체는 금기나 신의 영역처럼 여전히 모호한 상황에서,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는 무한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했다. 만약 무한대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일부와 전체는 같을 것이다. 그의 허무맹랑한 주장은 수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보자. 바구니 안에 사탕 10개가 들어있다. 이 중에서 박하사탕만 따로 표시해보자. 박하사탕의 개수는 바구니 속 사탕과 같은가? 그럴 리 없다. 바구니 속 사탕이라는 전체에서 박하사탕 몇 개만 표시했기에, 박하사탕은 바구니 속에 있던 일부일 뿐이다. 과연 정말일지 비교해보자. 바구니 속 사탕을 하나 세고, 박하사탕을 세는 식으로 말이다. 박하사탕 역시 바구니 속 사탕이기 때문에 금세 박하사탕의 셈은 끝나고 바구니 속 사탕만 남을 것이다. 그런데 무한대에서는 이게 달라진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1, 3, 5, 7로 이어지는 홀수는 1부터 시작하는 자연수에 포함된다. 자연수가 전체라면, 홀수는 일부라는 뜻이다. 당연히 자연수가 홀수보다 많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두 수는 모두 무한하다. 그럼 이제 사탕을 세는 방식을 똑같이 써보자. 자연수와 홀수를 하나씩 짝을 지어서 세는 것이다. 어떻게 짝을 지어도 둘 중에 남거나 모자라는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자연수와 홀수의 개수는 서로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칸토어는 일부와 전체가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한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지도교수는 훗날 그가 교수직에 임용되지 못하도록 손을 썼고, 천재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도 무한에 대한 그의 집착을 질병이라며 비판했다. 결국,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절대로 만실이 되지 않는 힐베르트 호텔

20세기 수학의 흐름을 바꿨다고 평가받는 독일의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는 칸토어를 지지했다. 심지어 그는 무한대를 칸토어가 만들어낸 수학자들의 낙원이라 표현하며, 무한대의 특성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가상의 호텔을 하나 머릿속에 지었다. 바로 무한한 객실을 보유한 힐베르트 호텔이다.

다비트 힐베르트. [온라인 커뮤니티]

다비트 힐베르트. [온라인 커뮤니티]

이 호텔은 늘 객실이 손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새로운 손님이 몇 명이 오던지, 늘 빈방을 만들어서 추가 손님을 묵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명이 오면, 모든 손님은 자신의 방 번호에 1을 더한 방으로 옮기면 된다. 97명의 새로운 손님이 오면, 5호실에 있던 기존 손님은 102호로 옮기는 식이다. 방이 무한하기에, 언제나 새 객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만약 특정한 인원이 아니라 무한대의 손님이 와도 마찬가지다. 모든 방의 기존 손님들이 방 번호에 2를 곱한 방으로 옮기면, 무한한 홀수 번의 빈방이 생기니 신규 손님은 순서대로 그 방에 들어가면 된다. 무한대의 버스에서 무한대의 손님이 온다면 어떨까? 이럴 땐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수인 소수를 이용한다. 기존 손님은 소수 2에 자신의 방 번호를 제곱한 방으로 이동하고, 무한한 버스는 3부터 이어지는 소수를 배정해서 무한한 손님들이 배정된 소수에 각자의 승차번호를 제곱한 방으로 가도록 안내하면 끝이다. 아마도 띄엄띄엄 빈방이 많이 발생하겠지만, 적어도 다른 호텔을 알아봐야 할 손님은 없을 것이다. 물론 매번 짐을 다시 싸고 풀어야 하는 손님들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불친절한 호텔이긴 하다. 이게 바로 무한대가 가진 특별한 성질이다. 

자연수에서는 어떻게든 호텔을 통해 비유할 수 있지만, 정수나 분수, 혹은 기하학적인 점까지 포함하면 훨씬 복잡해진다. 일상에서 쉽게 사용하는 것처럼 간단한 개념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수학자들은 무한대를 세는 방법을 알아냈고, 이젠 무한대의 크기를 서로 비교할 수도 있게 되었다. 무한대라는 난해한 표현을 이해하기 위한 무한한 접근을 해낸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만 하며, 알게 될 것이라던 힐베르트의 말처럼 인류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반드시 명쾌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무한한 도전으로 말이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12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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