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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감축 카드 빼든 트럼프, 주한미군 흔들 우려 커졌다

트럼프의 잘못된 지정학적 게임…주독미군 감축은 러시아용 선물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미군 감축 카드 빼든 트럼프, 주한미군 흔들 우려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8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서로 외면하고 있다. [DP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8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서로 외면하고 있다. [DPA]

“옛 소련 붕괴 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패권을 유지하려면 유라시아대륙 동서 양쪽의 일본과 독일을 양대 축으로 해 확고한 동맹을 맺고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 

세계적 지정학자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1928~2017)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저서 ‘거대한 체스판(Grand Chessboard)’에서 미국이 소련 붕괴로 냉전의 승리자가 됐지만 이에 만족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정학적 세계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면서 주장한 내용이다.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은 특히 러시아와 중국 주변의 유라시아 국가들을 미국 쪽으로 견인하는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중의 ‘우군 만들기’ 경쟁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신냉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미국과 중국이 각국을 상대로 ‘우군 만들기’에 들어간 가운데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이 제시한 지정학적 전략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통적인 동맹국 독일에서 미군 병력 감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때문에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독미군 9500명을 9월까지 감축할 것을 국방부에 지시했다”면서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이 각서(memorandum)를 통해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또한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독일 정부에 주독미군 감축에 대한 사전 협의나 공식 통보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독일 정부는 6월 10일 미국 정부가 주독미군 감축을 검토 중이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면서 “최종 결론은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리넬 전 주독 미국 대사는 독일 빌트지와의 6월11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독일에 이어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및 한국과 일본에서도 미군 철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9500명은 3월 말 기준으로 주독미군 전체 병력 3만4674명의 27%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국방부에 주독미군 병력 규모를 순환 배치 인력을 포함해 2만5000명을 넘지 않도록 할 것도 지시했다. 이 경우 주독미군 병력 규모는 2만8500여 명인 주한미군보다 축소된다. 

미국 역대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옛 소련을 견제하고자 옛 서독에 30만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주둔해왔다. 특히 소련이 붕괴되고 동·서독이 통일된 후에도 미군 7만여 명이 배치됐다. 그러다 미국 국방부의 해외 주둔 미군 병력 감축 계획에 따라 주독미군 병력 규모는 2004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었고, 지난해까지 3만5000여 명 수준을 유지해왔다. 주독미군 병력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다. 전 세계적으로도 주일미군(5만5000명)에 이어 두 번째다.



방위비 증액 거부에 대한 불만

독일 주둔 미군 탱크와 대포들이 훈련을 위해 
한 마을을 지나고 있다(왼쪽). 
독일 주둔 미군 병사들이 낙하산으로 각종 무기를 투하하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 육군]

독일 주둔 미군 탱크와 대포들이 훈련을 위해 한 마을을 지나고 있다(왼쪽). 독일 주둔 미군 병사들이 낙하산으로 각종 무기를 투하하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 육군]

주독미군 병력이 많은 것은 러시아의 군사력 팽창을 억제하고 유럽 안보를 보장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에는 유럽 50여 개국을 담당하는 유럽사령부가 있고, 그 산하에 공군과 육군 지휘부가 상주하고 있다. 또 독일 중서부 헤센주 람슈타인 공군기지는 해외 미군 공군기지 가운데 가장 크며, 미국에서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지역으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거점이다. 게다가 독일은 오랫동안 유럽 주둔 미군의 훈련 주요 거점으로 활용돼왔다. 독일에는 미군의 아프리카 사령부도 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독일 정부가 미국이 요구한 방위비 증액을 거부한 데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충분히 지출하지 않고 있다며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까지 인상하라고 압박해왔다. 특히 그는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이 국방예산을 늘리지 않은 채 미국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독일 국방예산은 현재 GDP의 1.36%밖에 되지 않는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목표 시점을 2031년으로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독일 정부의 이런 입장이 사실상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나토 회원국들에게 자신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주독미군 감축을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그동안 보호무역, 난민, 기후변화협약 등 국제 현안에서 사사건건 대립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노르트 스트림(Nord Stream) 2’라는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이 공사가 올여름 완공될 경우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를 대량으로 공급받기 때문에 미국은 자국 셰일가스를 수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노르트 스트림 2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제재하는 내용을 담은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 서명했다. 그는 또 최근 메르켈 총리와 전화통화에서 6월 말로 예정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직접 대면해 열자고 제안했는데, 메르켈 총리가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불참하겠다고 하자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G7 정상회담을 9월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이 서방의 일원으로서 대(對)중국 압박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점에 불만을 토로해왔다. 메르켈 총리는 6월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에서 “독일은 중국과 교류를 강화하길 원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도록 지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올여름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게다가 독일 정부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미국 F-35A 스텔스 전투기를 포함시키기로 약속했다 제외시켰다.

영원한 평화를 위한 투자

해외 미군 공군기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 [위키피디아]

해외 미군 공군기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 [위키피디아]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주독미군 감축은 미국과 유럽의 관계에서 전략적으로 엄청난 변화이기 때문이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주독미군은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라며 “양국이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지만 관계가 복잡해졌다”고 밝혔다. 집권 여당인 독일기독교민주동맹(기민당)의 요한 와데풀 원내부대표는 “동맹 간 불협화음이 생기면 중국과 러시아만 이익을 얻는다”고 비판했다. 토마스 클라이네-브로코프 독일마셜펀드 부소장은 “미국의 병력 감축은 유럽 내 미군 주둔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럽연합과 나토 회원국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나토를 약화시키고 러시아의 힘을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은 “미군의 독일 주둔은 영원한 전쟁이 아니라 영원한 평화를 위한 투자”라며 “미군 감축은 러시아의 추가 침략을 유혹하고, 미국 신뢰성에 대한 동맹국의 의구심만 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앤드루 와이스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연구원은 “주독미군 감축은 러시아를 위한 큰 선물”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러시아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미소 짓고 있다. 러시아 싱크탱크인 러시아 국제문제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러시아의 유럽 영향력 확대에 발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반중(反中) 연합전선 구축을 위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가 G7 정상회담에 한국, 호주, 인도를 비롯해 러시아까지 초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4월 20일 공동명의로 ‘엘베의 정신(Spirit of the Elbe)’을 통해 상호 협력하자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군과 소련군은 1945년 4월 25일 독일 엘베강에서 조우하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역사적 상징이 됐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수교하고 화해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도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중국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동안 중국과 에너지, 군사 분야 등에서 밀월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처럼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정학적 전략에 따라 동맹국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경제적 관점에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철군함으로써 동맹인 쿠르드족을 배신하고 독재자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권력 유지에 도움을 줘 러시아 측에 지정학적 이득을 넘겼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요한 축

대형선박이 발트해에 천연가스 파이프를 투입하고 있다.  [nordstream2.com]

대형선박이 발트해에 천연가스 파이프를 투입하고 있다. [nordstream2.com]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따라 자칫하면 불똥이 한국으로 튈 수도 있다. 미국 언론은 미국과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갈등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의 단계적 감축이나 철수 대상으로 한국을 지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한국은 북한 핵 문제와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요한 축이라 독일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는 주한미군 규모를 현행 2만8500명보다 줄일 수 없다고 명기돼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을 밀어붙인다면 국방수권법이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어벽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간동아 1243호 (p46~49)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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