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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 찬성, 단 복지제도부터 가지치기 다 해야”

[인터뷰] 복지정책 설계 1세대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장관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기본소득제 찬성, 단 복지제도부터 가지치기 다 해야”

서상목.

서상목.

기본소득제(UBI: Universal Basic Income)’ 도입 논쟁이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다. 전 국민에게 매달 현찰을 나눠주자는 것은 지금까지는 주로 진보 진영 담론이었다. 이번엔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꺼내들면서 보수 야당이 먼저 깃발을 들고 나섰다. 보수 일각에서 일찌감치 도입을 찬성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그는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경제발전과 소득분배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세계은행(IBRD)에서 5년 간 일한 뒤 1978년 귀국 후 힌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1993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 각종 복지정책 설계에 참여했다. 

서 회장은 수년 전부터 강연과 기고를 통해 “기본소득제에 대한 진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1월에는 ‘보수와 진보, 기본소득을 논하다’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도 한 바 있다. 서 회장을 만나보았다.

이념이 아닌 복지효율 문제

-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기본소득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보, 보수를 넘나든다. 진보 성향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이후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를 해결하기위해 전통적 복지시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시민의 ‘사회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회보장제도라는 거다. 이에 비해 보수 성향 지지 인사들은 제도가 매우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들어 복지행정 효율화에 기여한다는 측면에 주목한다.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지급되는 보편적 복지이므로 근로의욕 감퇴라는 부작용도 발생하지 않고 근로자들이 실직 상태에서도 기본생활이 보장되니 더 나은 직장을 찾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가질 수 있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부각되는 고용절벽이나 산업의 구조조정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거다. 미국에서도 자유주의 진영에서 찬성론자들이 있다. ‘작은 정부’를 주장해온 대표적 시장경제연구소인 케이토연구소(Cato Institute)는 ‘재분배를 이룰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 벤처사업가들도 엄청난 부를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지자들이 있다. 벤처기업가 샘 올트먼은 2016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시 주민들에게 월 1000달러를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사비(私費)로 추진해왔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예비후보였던 앤드류 양은 18세 이상 국민에게 매달 1000달러(약 120만원)를 주겠다고 공약하기도 하지 않았나. 기본소득제는 이념의 문제가 복지에 대한 효율성에 대한 논쟁이다. 기본소득제를 사회주의라고 하는 주장은 기본 개념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거라고 본다.”




역사가 긴 기본소득 개념

- 개념이 나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닌 걸로 아닌데. 

“상당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24년 엔지니어 출신인 더글러스가 ‘사회적 신용’이라는 책에서 근로자들에게 기술발전에 의한 보너스를 기본소득으로 나눠줄 것을 주장한 바 있다. 

1972년 대선에서 당시 미국 민주당 후보였던 조지 맥거번은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의 건의를 받아들여 모든 시민들에게 월 1000달러를 지급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웠지만 대선에서 패함으로써 실현되지는 못했다. 

아마존 킨들을 검색해보면 관련 도서가 2016년 이후 급속히 늘었다. 세계 주요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연례모임인 다보스 포럼에서도 이미 2018년 초 토론의 장을 마련한 바 있다.”

- 세계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 때문인가. 

“본래 사회복지는 산업혁명과정에서 생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 수단으로 등장했다. 역대 산업혁명 때 모두 그랬다. 

4차 산업 혁명은 기존 산업혁명과는 다른 차원의 혁명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있지만 양극화 심화, 고용 절벽같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나오고 있다. 

분배가 나빠지고 있다는 문제제기는 2008년 OECD 보고서에서 처음 시작됐다. OECD는 이어 2011년 보고서에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기간 중 상위 10%의 소득증가율은 연 1.9%였던 반면 하위 10% 소득증가율은 1.3%에 그쳤다고 했다. 

그나마 북유럽이 좀 나았고 이탈리아 한국 일본 영국은 소득배수가 10배로 평균보다 조금 나쁘고 이스라엘 터키 미국은 14배, 멕시코 칠레는 27배로 분배상태가 매우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 근본적으로 누가 집권해도 분배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횡이 됐다.”

- 여러 나라에서 시범 사업을 하거나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핀란드가 2017년부터 월 900달러 상당을 주는 내용의 시범사업을 실시하다 중단됐다. 고용창출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거였다. 네덜란드 캐나다도 비슷한 형태의 시범사업을 도시별로 추진한 적이 있다. 여기에 인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도 실험한 바가 있다.”

- 결과는 어땠나. 

“나라별로 약간씩 다르다. 성과가 있는 곳도 있다. 2010년 인도 마디아프다데시 라는 주에서 한 시범사업에서는 대상 가구의 식품소비가 증가했고 건강상태가 개선됐으며 68%가구에서 자녀들 학교성적이 올랐다. 아프리카의 경우에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기본소득으로 생계를 해결하니 오히려 근로의욕을 끌어올렸다는 거다. 저소득층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대목이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하는 지점이다.”

- 2016년 6월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부결된 적도 있다. 

“기본소득제가 세계적인 관심을 끈 계기였다. 당시 안은 찬성 23%, 반대 77%로 부결됐는데 지지자들은 안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 월 275만원이 너무 많은 액수여서 무산되었다고 주장한다.”

증세 없이도 가능하다?

- 나라에서 돈 나눠준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소는 누가 키우나(웃음). 

“이번에 긴급재난지원금처럼 성인 1인당 월 30만원,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이면 현실성이 있다고 본다. 총 187조원이 필요한데 사회정책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시민단체인 LAB(랩)2050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30만 원 수준의 기본소득제는 세금 신설이나 세율 인상 없이 가능하다고 한다. 더 심층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증세 없이 실현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를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단, 기존 복지제도와 조세 감면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LAB(랩)2050은 소득공제와 세액공제같은 세금감면제도를 없애면 내년부터 당장 월 30만원씩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 

- 현재 복지행정에 비효율적 측면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증세없는 기본소득제라면 많은 국민들이 찬성할 것 같은데. 

“내가 기본소득제도를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중심에 두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참에 정치권은 복지제도의 구멍과 비효율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하고 혁신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은 해방이후 70여 년간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기본골격을 갖추어왔지만 자세히 보면 문제점들이 많다. 

우선 복지사업 가짓수가 너무 많다. 자격요건이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보니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생겼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나 지난해 탈북자 모자 아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는 한편에서 중복과 탈법으로 다양한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 돈은 아는 사람만 타먹고 모르는 사람은 못 타먹는 말들이 나온다. 

사회안전망의 두 번째 문제는 지속가능하냐는 것이다. 공적연금은 매우 심각하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2018년 현재 각각 2000억원, 1조6000억원 적자다. 규모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다 국민세금으로 전액 충당해야 한다. 국민연금도 2058년에는 바닥난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재정도 보험료인상을 하지 않으면 재정위기를 맞을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도 역시 재정에 큰 부담이다. 

여태까지 짜놓은 사회안전망은 평생 고용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득격차가 벌어지고 고용불안이 커지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덮쳤다. 세계경제가 마비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사회안전망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현재 중앙정부가 운용하는 복지제도가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해 주택지원, 생계지원, 교육지원 등 300여개 가량 있다고 하는데 지방정부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기존 조세 감면제도를 전면 개편한다면 효율성은 물론 소득재분배 기능 역시 크게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로 등 저소득층을 보호하려는 목적의 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이 확고히 구축된다면 이런 정책은 필요가 없어진다. 기초생활보장사업, 기초연금, 아동수당, 실업수당도 축소 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경제 정책을 경제논리에 충실한 방향에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 말은 쉽지만 그런 개혁이 쉬울까. 

“그래서 야당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복지는 개혁이 어렵다.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어차피 기본소득은 이슈가 될 것이다. 무조건 세금 늘려 나눠주는 식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독점하게 하면 안 된다. 복지는 그냥 나눠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일할 수 있게 하는 사회투자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진보 보수간 정책차이는 대북정책 정도에서 선명했는데 현 정부처럼 경제 정책을 이념적으로 한 경우는 없었다. 야당은 단지 이슈를 선점한 것에서 끝내지 말고 치밀하고 정밀하게 복지제도 개편안을 내놓아야 한다. 

2010년 김상곤 교육감이 무상급식을 치고 나왔을 때 보수는 ‘복지 망국론’을 내세우며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다 결국 오세훈 시장이 시장자리를 내놓았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무상보육과 반값 등록금 이슈를 먼저 치고나오면서 포퓰리즘 정책에 올라탔다. 복지 제도 개편 없는 기본소득제도는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여기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여타 개도국들에 비해 한국은 제도 시행에 유리하다고 본다. 이유는 이미 복지에 너무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개도국들은 복지제도를 개편하고 싶어도 개편할 토대가 없다. 우리의 경우 선거 때마다 이것저것 복지혜택을 마구 늘어놓았는데 이를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개편할 절호의 찬스다.”





주간동아 1243호 (p6~9)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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