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르포]업종 불문 실직 충격파, 가산디지털단지 IT업체들에도 미쳐

영세 IT업체 공구상가 음식점에 코로나 發 대량실직 직격탄…배달업 뛰어들려는 실직자 늘면서 오토바이 매장만 성업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르포]업종 불문 실직 충격파, 가산디지털단지 IT업체들에도 미쳐

가산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

“불황은 업종을 가리지 않나 봐요” 최근 직장을 잃은 김모(28) 씨의 말이다. 김씨가 일하던 곳은 의류 쇼핑몰. 구로구 가산 디지털 단지에 작은 사무실이 있는 소규모 업체였다. 김씨는 회사의 경영악화로 사무실에서 짐을 빼게 됐다. 그는 “회사가 폐업 위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더 버티더라도 희망은 없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유행으로 디지털단지 대부분의 회사들이 악전고투 중이다. 불황은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공구 제조업은 물론 IT업계도 일자리 구조 조정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지난 주말 제조업 기반의 공구상가와 디지털 산업단지가 공존하는 서울시 구로, 금천구 일대를 둘러본 결과 코로나로 인한 불황의 불똥은 고용시장으로 번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월 실업급여를 신청한 구로구민은 1397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1095명) 대비 27% 가량 늘었다. 이들 중 IT업계에 종사하는 상당수 청년들은 디지털단지와 공구상가의 중소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 IT벤처 집적지에서 구조조정 칼바람

5월 8일 점심시간에 찾은 서울 지하철 1호선 가산 디지털단지역 주변은 조용했다. 크고 작은 회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보통 점심시간이 되면 으레 식당으로 이동하는 인파로 거리가 꽉 찼다. 하지만 최근의 모습은 달랐다.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이 간혹 보이는 정도였다. 외려 자전거와 스쿠터가 더 많이 보였다. 배달 플랫폼 업체 가방을 멘 사람들이 음식점으로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가산 디지털단지는 과거 구로 제 2, 3공단으로 불리던 곳이다. 제조업 기반의 업체가 많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체질이 완전히 바뀌었다. 컴투스 등 중견 게임 개발사는 물론, 르노삼성 자동차, 후지필름 한국 본사 등 다양한 기업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벤처기업으로 약 8000여개의 벤처기업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중 약 34%(2500여 개)가 IT관련 기업이어서 국내 최대 IT벤처 집적지다. 



대형 IT업체는 코로나로 인한 불황을 피했다는 분석이 많다.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등으로 외출을 삼가다 보니 자연스레 온라인 쇼핑이 늘었고, 유튜브, 게임 등 온라인 콘텐츠 이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적이 좋으니 세간을 늘리는 회사도 많다. 네이버, 카카오, NC소프트와 펄어비스는 현재 신사옥 건설에 나섰다. 가산 디지털단지 근처 구로 디지털 단지(과거 구로 제 1공단)에 위치한 넷마블도 현재 신사옥인 ‘구로 지스퀘어’를 짓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단지에 입주한 중소 IT업체들의 사정은 날마다 악화하고 있다고 한다. 가산 디지털단지 IT 벤처기업 종사자인 정모(32)씨는 “코로나 유행으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마케팅이나 홍보에 돈을 쓰는 업체가 줄어 홈페이지 구축 등 온라인 마케팅 관련 일을 주로 하는 IT업체들은 일감이 줄었다”고 밝혔다. 

가산 디지털단지에서 건물 경비 일을 하는 최모(52)씨는 “작년 말까지만 해도, 주차장에 들어오는 외제 승용차들이 꽤 많았는데,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며 몇 달 새 바뀐 산업단지의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회사 경영 악화로 직장을 그만 둔 김모 씨는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는 업종은 음식배달이나 생필품 시장의 이야기”라며 소규모 쇼핑몰에서 실직이 이어지는 이유를 말했다. 의류 판매업에 종사했던 그는 “사람들이 외출을 해야 옷을 사 입을 텐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이 줄어드니 자연히 의복 소비도 크게 줄어 의복 판매와 연계된 온라인 사이트 이용도 대폭 줄어 사이트를 지원하던 소규모 IT업체가 타격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로역 인근 구로 공구상가는 을씨년스러운 수준이었다. 특히 1공구 상가에는 드나드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1공구 상가 1층에는 문을 연 가게가 몇 곳 있었지만 2층 상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부품 판매상을 운영했다는 조모(55)씨는 “매 해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곤 했는데, 올해는 배달원 빼고는 새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다”며 “작년 말에 사람을 더 뽑으려 했지만 지금은 새 사람을 들이는 게 부담스러워 포기했다”고 밝혔다. 

가산 디지털단지역을 빠져나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대형 의류 아울렛이다. 때문에 이곳에는 의류관련 종사자들이 꽤 많다. 문제는 이 의류 업계가 IT업계와는 달리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21% 감소했고, LF는 매출이 줄어 임원들이 3월부터 급여의 30%를 회사에 반납하고 있다. 불황은 의류업체의 규모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 것이다. 한 의류업계 종사자는 “자본금이 탄탄한 대기업 의류업체들은 몰라도 영세한 중소 업체들은 코로나 사태가 극복될 때까지 버티지 못할 곳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커피 소비도 줄이는 근로자들

산업단지의 고용 사정이 나빠지면서 주변 상권에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 가산 디지털단지내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양모(22·여)씨도 최근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코로나 사태 초기, 카페 사장님이 ‘야근이 많은 동네라, 직원들이 커피를 안 마실 수는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하루가 다르게 손님이 크게 줄자, 결국 아르바이트생을 모두 내보냈다”며 “직원들의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 가장 먼저 커피 같은 기호식품 소비를 줄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로 디지털단지 주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달 전까지 구로디지털단지 인근 음식점에서 홀 매니저로 일한 박 모씨는 “최근 경영 악화로 일하던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며 “지난해에 비해 손님이 절반 이상 줄어 각오는 했지만 가게 문을 아예 닫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기존 일자리를 잃은 사람 가운데 호구지책으로 배달업에 뛰어들려는 이가 늘면서 오토바이 매장은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음식점 홀 매니저를 최근 그만 둔 박씨는 “월세와 휴대폰 요금을 내려면 당장 돈이 급한데, 요즘은 아르바이트 자리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며 “스쿠터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어 겁은 조금 나지만, 운전면허가 있으니 일단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20.05.15 1239호 (p4~6)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40

제 1240호

2020.05.22

“정의연이 할머니들 대변한다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다”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