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동물 통한 혼합 변종 바이러스 도시 넘어 농촌에도 타격 우려

코로나 이외에 미국 인플루엔자와 조류독감, 메르스 때와 다르지만 동물 접촉에 주의보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02-08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월 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안내 영상이 나오고 있다. [뉴스1]

    1월 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안내 영상이 나오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는 중국에 설상가상으로 조류독감(AI)까지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로 보이는 후베이성과 남쪽 경계를 맞대고 있는 후난성에서 AI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AI는 인수공통감염병 가운데 하나이긴 하나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후난성에서 발생한 AI는 유사질병 중 치사율이 높은 편이라 다시 한 번 인접국이 공포에 떨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AI가 농촌으로 확산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AI에 의한 가축 전염병 발생을 막고자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AI와 관련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일단 사람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적다. 감염된 조류와 밀접하게 접촉해야 발병 가능성이 생기는데, 당장 육계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발병 확률이 현저히 낮다. 물론 AI에 걸린 조류를 먹으면 감염될 수 있다. 하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75도 이상에서 5분 이상 가열하면 모두 죽기 때문에 충분히 익혀 먹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최근 국내에서 AI 발생 빈도는 현저히 낮아졌다. 2016년 말 국내에도 AI가 크게 퍼져, 2016년 11월~2017년 4월 국내 AI 발생 건수는 총 383건이었다. 하지만 2017년 11월~2018년 4월 22건으로 크게 줄었고, 2019년부터 아직까지는 고병원성AI 발생 기록이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AI 감소 원인을 전염 감소에서 찾는다. 일단 겨울철 기온이 올라 한국을 찾는 철새 수가 줄었다. 양계업계 관계자는 “과거 AI의 주 전염원은 허가받지 않고 소규모 육계 혹은 오리를 기르는 농가였다. 하지만 2016년 AI 사태 이후 이 같은 소규모 농가가 많이 사라졌다. 게다가 농가의 방역 의식도 강해져 전염병이 많이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동물과 사람이 동시에 걸릴 수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월 4일 팀 벤턴 리즈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지난 50년간 수많은 전염병이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며 급속히 퍼져나갔다”고 보도했다. 1980년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위기는 원숭이 등 고등 유인원에서 비롯됐으며, 2004~2007년 조류독감은 새에서 시작됐다. 2009년 유행성 독감은 돼지로부터 번져나갔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사향고양이를 통해 박쥐로부터 왔으며, 에볼라 역시 박쥐에서 비롯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가 중간 숙주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쥐가 다른 야생동물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려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로 진화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상당히 닮았다. 두 전염병 모두 사람과 동물이 동시에 걸리는 인수공통감염병인 데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15년처럼 지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많은 사람을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최근 10년간 가장 최악이라는 독감(플루)이 유행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인 1500만 명이 이 독감에 걸려 8000명 이상이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에다 중국발(發) AI까지 겹쳤으니 바이러스가 동시다발로 습격하는 형국이다.

    반려견도 바이러스의 숙주 된다

    13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인 우한 교민이 치료를 받고 있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의 선별진료소. [동아DB]

    13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인 우한 교민이 치료를 받고 있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의 선별진료소. [동아DB]

    요즘 인수공통감염병을 더욱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전파력과 변종 가능성, 그에 따른 치료의 어려움 때문이다. 산업형 동물 및 반려동물의 증가는 사람과 동물의 접점을 더욱 좁히고 있으며, 국제교역 증가로 접촉 기회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송대섭 고려대 약학과 교수는 2017년 ‘고대신문’에 기고문을 내고 ‘2009년 신종플루의 경우 조류에서 사람과 돼지 등 이종(異種) 간 바이러스 혼합 감염과 유전자 재조합으로 3종 변이체(triple reassortant)인 신종 H1N1 인플루엔자가 출현하게 됐고, 두 달 만에 전 세계로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사람이 동물을 감염시키는 역인수공통감염병 전파(reverse-zoonotic transmission)에도 주목했다. 2008년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방문한 여행객과 연구진에 의해 사람 폐렴 바이러스가 침팬지에게 감염된 사례가 나왔다는 것. 특히 사람과 빈번하게 접촉하는 반려견의 경우 생활환경과 음식 등 많은 부분을 공유하기 때문에 인수공통감염병의 중요한 숙주로 여겨지고 있다.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동물에게 계절 독감이 전파된다는 것이 실험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과 동물에게 동시에 감염되는 바이러스는 단순히 사람에게 병을 옮길 뿐 아니라, 약을 만들기 전 바이러스가 다른 형태로 변종돼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서로 다른 바이러스의 혼합은 재조합과 재배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숙주에 적응하고 고병원성으로 변질된다.

    메르스 때와 다른 코로나 대응

    2018년 9월 10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한 승객들을 대상으로 국립검역소 직원들이 체온을 재고 있다. [동아DB]

    2018년 9월 10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한 승객들을 대상으로 국립검역소 직원들이 체온을 재고 있다. [동아DB]

    다른 한편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을 담당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2015년 메르스 확산 때보다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과연 대한민국은 메르스 재앙에서 배운 것이 없을까. 

    2015년 5월 20일 국내에서 처음 메르스 확진자가 나왔다. 바레인에서 입국한 감염자를 통해 감염 경로를 찾던 중 2차 감염자가 나왔다. 정부가 확진자를 확인한 날 감염자 수는 총 7명. 같은 달 29일에는 13명까지 늘었다. 6월 3일 정부는 뒤늦게 메르스 종합대응 컨트롤타워를 구축했다. 하지만 감염자 수는 계속 늘어 같은 해 6월 초 정점을 찍었고, 메르스 종식 선언이 내려진 7월 28일까지 약 두 달 동안 186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총 사망자는 38명. 

    반면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국내 확진자가 나오기 전부터 정부가 대응에 나섰다. 질병관리본부(질본)는 1월 초 대책반을 꾸리기 시작했다. 첫 확진자가 나온 20일부터는 검역, 방역을 강화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메르스가 과거 빠르게 퍼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보 차단 때문이었다. 당시 보건당국은 국민의 과도한 불안이나 오해를 막고자 메르스 관련 정보를 의료진에게만 공개했다. 국민은 확진자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5명의 주요 감염자가 180명 이상에게 병을 옮긴 ‘슈퍼 전파자’가 됐다. 

    현재 보건당국은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알리면서 이들의 이동경로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빠른 대응과 의료의 발전이 외려 더 많은 우려를 낳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장욱 고려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대의학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지역 내 독감 정도로 치부됐을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2월 4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자의 연령과 성별 분포를 밝혔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80%는 60세 이상 고령이었다. 사망자의 75%는 당뇨 같은 기저질환도 있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정 기간은 본인의 면역력으로 질병을 이겨내야 하는데, 고령층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