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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설 연휴 ‘혼라이프’

묵직한 시대극 한 편과 코미디의 향연

  • 정민아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yedam98@hanmail.net

묵직한 시대극 한 편과 코미디의 향연

[GettyImages]

[GettyImages]

극장가에서 설 연휴는 겨울방학과 맞물려 다수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 성수기다. 당연히 각 영화사는 이 시기에 맞춰 대작을 내놓는다. 설에 개봉한 영화는 1~2월 겨울방학까지 죽 이어지는 데다, 관객 입장에서는 가족이 한데 모이는 명절에 가족 단합에 유용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준다. 

지난해 설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이 17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명절에는 사극’이라는 공식이 깨졌고, 코미디를 흥행 키워드로 내세운 영화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는 장르 유행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극한직업’과 ‘엑시트’가 넓혀놓은 코미디시장이 어느 정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설 연휴에 출사표를 던진 영화들은 유신의 마지막 풍경을 다룬 시대극 ‘남산의 부장들’,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코미디 ‘미스터 주 : 사라진 VIP’, 웹툰과 결합한 액션코미디 ‘히트맨’ 등이다.


‘남산의 부장들’, 베스트셀러가 원작

‘남산의 부장들’. [사진 제공 · ㈜쇼박스]

‘남산의 부장들’. [사진 제공 · ㈜쇼박스]

이번 설 연휴 최대 화제작은 누가 뭐래도 ‘남산의 부장들’이다. 이 영화는 근현대사를 수놓은 무수한 사건 중에서도 대중적 궁금증을 야기하는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저격이라는 실화를 다루고 있다.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 김형욱 등 군인들의 나라를 만들었던 이들의 권력 쟁투,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막을 내린 유신의 마지막,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대한 성찰 등 이 사건 자체가 던지는 화두가 묵직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제5공화국의 흥망성쇠는 미디어가 사랑하는 소재라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TV 드라마로는 ‘제5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삼김시대’가 있었고, 영화로는 ‘그때 그 사람들’(2005)이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10·26 단 하루를 다루는 ‘그때 그 사람들’과 소재는 같지만 상당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블랙코미디로 그날 사건을 한바탕 소동으로 그리면서 인물들을 풍자적으로 바라본 ‘그때 그 사람들’과 달리 ‘남산의 부장들’은 차갑고 냉철한 누아르적 분위기를 채택했다. 영화는 디데이(D-Day) 40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 방의 총성을 낳게 한 사건들의 연쇄를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남산의 부장들’은 1990년부터 ‘동아일보’에 2년 2개월간 취재기를 쓴 김충식 가천대 특임부총장의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원작은 박정희 정권 18년과 함께한 초법적 권력기관인 중앙정보부의 탄생부터 소멸까지를 중앙정보부 부장들을 중심으로 그린 방대한 정치 이야기지만, 영화는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마지막 시기를 가져왔다. 부총리급인 중앙정보부장, 일명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정치사 이면에서 실질적인 주인공 역할을 했다. 

주요 등장인물은 4명이다. 실존 인물들을 다루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였기 때문에 각각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 분)은 미국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전 세계에 박정희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며 파란을 일으킨다. 그는 인권 유린과 불법비자금, 미국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뇌물과 로비 등의 실체를 담은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현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 분)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 분)이 그를 막기 위해 나서고, 박통(이성민 분) 주변에는 충성세력과 반대세력이 뒤섞여 나태해진 권력자를 뒤흔든다. 쿠데타 이후 18년간 대통령에게 충성해온 김규평은 대통령을 암살한다. 

영화는 거사를 앞둔 긴박한 순간의 김규평에서 시작된다. 미스터리 구조의 스토리 진행은 플래시백으로 돌아가 왜 김 부장이 총을 드는 결정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이 사건에 익숙한 관객은 클라이맥스의 폭발에 다가서기까지 더해지는 심리적 긴장감의 세밀한 축조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것이다. 개성 넘치는 악당들과 주인공의 심리를 관찰하고 읽어가면서 그날 그 시간에 당도하는 서스펜스는 누아르 영화가 가진 마성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내부자들’ 감독의 성공적 재기작

이 사건의 배경을 잘 모르는 관객에게는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는 재미가 충만하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박 전 대통령의 말년을 채운 매너리즘과 따분함, 그리고 2인자를 결코 허용하지 않던 용인술의 무자비함을 목격하는 가운데 최고권력자를 두고 서로 자리를 바꾸는 전환의 순간들은 권력과 인생사의 허망함을 드러낸다. 충성 경쟁에 앞장선 2인자들로 하여금 배신하게 만드는 패턴이 박통의 비극을 낳게 한 원인이 됐다는 사실은 많은 깨달음을 전한다. 

묵직하고 차가운 이 영화에서 위트는 비켜나간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어수룩한 캐릭터들의 좌충우돌로 역사적 소극을 비판적으로 구경하게 했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캐릭터들의 심리적 변화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난데없는 결심 이유를 이성적으로 해석하게 한다. 

영화는 비극적 운명론과 미니멀리즘적인 형식미를 보여준 장피에르 멜빌의 ‘암흑가의 세 사람’(1970)이나 게리 올드만이 비밀정보부 요원을 연기했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의 분위기에 가깝다. 긴박한 사건들의 나열과 눈요기를 더하는 액션, 밀고 당기는 대사를 과감히 삭제하고 주요 인물의 심리적 변화와 전환에 방점을 둔 감독의 선택은 역사의 회오리에서 진한 흔적을 남긴 인물들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전략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배우들의 연기다. 백윤식, 박근형 등 선 굵은 선배 배우들의 잔상이 짙은 가운데 자신만의 해석으로 고뇌하는 김 부장을 창조한 이병헌, 대통령의 외모가 아니라 말년의 권태로움을 제대로 시각화한 이성민, 기이한 행적이 코믹하게 보이도록 영화에 쉴 틈을 주는 경호실장 이희준, 자신의 비극적 죽음을 예감하고도 발버둥치는 인간적 모습으로 박 부장을 해석한 곽도원 등 4인방의 연기 앙상블이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을 압도한다. 연출을 맡은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2015)로 사회비판 의식과 오락성을 훌륭하게 조합하며 상승세를 타다 ‘마약왕’(2017)으로 일시 추락했지만 이 영화로 다시 비상할 것 같다.


‘미스터 주 : 사라진 VIP’

‘미스터 주 : 사라진 VIP’. [사진 제공 · 리양필름㈜]

‘미스터 주 : 사라진 VIP’. [사진 제공 · 리양필름㈜]

전천후 연기파 배우 이성민이 타이틀 롤인 미스터 주를 연기하고, 드라마 ‘SKY 캐슬’의 걸크러시 김서형이 코미디에 도전하며, ‘미스터 션샤인’의 코믹남 배정남이 호흡을 맞춘다.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태주(이성민 분)는 중국에서 특사로 파견된 VIP 판다의 경호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온갖 동물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 태주를 의심하는 상사 민 국장(김서형 분)과 낙하산으로 온 부하 만식(배정남 분)을 따돌리고 태주는 군견 알리와 함께 VIP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이 영화는 톰 행크스의 발랄하고 명랑한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빅’(1988)과 ‘터너와 후치’(1989)에서 모티프를 따온 듯 많은 설정이 겹친다. 13세 소년이 놀이동산에 갔다 소원을 비는 기계 앞에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 다음 날 30대 어른으로 변신하는 이야기인 ‘빅’처럼, 태주는 임무 완수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주문에 걸린 듯 동물들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청결 제일주의자인 형사의 집에 유일한 살인사건 목격자인 못난이 개가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터너와 후치’처럼, 태주는 셰퍼드 알리와 버디 커플이 돼 판다 실종 사건과 그 이면에서 펼쳐지는 국가적 재난을 해결해나간다. 

동물이 대거 등장하지만 12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이 결정된 이유는 판다를 유괴한 범죄집단의 사악한 비즈니스를 설명하기 위해 펼쳐지는 다소 잔인한 장면들 때문이다. 동물의 말을 알아듣게 된 편집증적인 청결남이 동물과 팀플레이를 통해 인간적으로 거듭난다는 스토리는 어쩌면 뻔하다. 그렇기에 동물들과의 재치 넘치는 일화들로 뻔함을 넘어 감동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 앞에서 ‘재심’(2017)과 ‘또 하나의 약속’(2014)을 연출했던 김태윤 감독은 거침없는 코미디 리듬보다 ‘가족’에 방점을 찍고 있다.


‘히트맨’

‘히트맨’.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히트맨’. [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탐정’ 시리즈를 통해 구박받는 가장에서 사건 해결자로 거듭나는 코믹 이미지를 구축한 배우 권상우의 캐릭터를 다시 가져온 영화다. 비밀 프로젝트 방패연 출신의 전설적 암살요원 준(권상우 분)은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 국정원을 탈출했으나 연재하는 작품마다 악플만 달리고 돈도 못 버는 구박덩어리다. 그는 술김에 자신과 관련된 일급기밀을 그려 나날이 인기를 얻지만 이로 인해 국정원과 테러리스트의 타깃이 되고 만다. 이중으로 쫓기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의 향연에 웃음과 재미가 더해진 코믹액션 영화다. 

신예 최원섭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화려한 액션 장면과 스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꽤나 노련하고, 권상우는 잘 맞는 제 옷을 입은 듯 코믹 캐릭터 이미지를 잘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슬픔과 웃음을 오가는 주인공 앞에 놓인 사건의 배경 및 해결 과정은 개연성 면에서 어긋난다. 이렇듯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이 영화가 설 연휴 승자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번 설 연휴 영화 빅3 주인공이 모두 국가정보 요원이라는 것에 대해 그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초법적 권한을 이용한 국가권력기구가 비밀스럽게 사건을 벌이고 은폐하는 가운데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날 때 음모론은 기승을 부리고 사회는 흉흉해진다. 영화는 좀 더 투명한 사회를 향한 대중의 집단무의식적 염원을 반영하고 있다.






주간동아 2020.01.17 1223호 (p70~73)

정민아 영화평론가·성결대 교수 yedam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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