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황러’가 사는 법 ②

불황기 소비는 양극화로 간다

점심은 구내식당, 커피는 고급 카페… 불황의 몸살, 소비 행복으로 달래려 해

  •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소비자분석연구소 소장

    입력2019-07-29 08: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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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

    [사진 제공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

    불황이 깊어지면 소비트렌드의 변화도 두드러진다. 불황을 넘어 장기 저성장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소비 형태와 심리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장기 저성장 시대에 사람들은 최고 성능이 아니어도 최선의 품질에서 타협하고, 적당한 가격에서 포기할 줄도 안다. 또한 소비자는 자신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따라 때로는 높은 가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기 저성장기에 소비자의 양극화된 역설적인 소비 형태를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달라진 소비함수

    불황기에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듯 소비자도 소비에 대해 구조조정 전략을 짠다. 무엇보다 개인의 소비함수 내에서 소비 양극화가 이뤄진다. 이는 일종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가성비’(cost-effectiveness) 높은 제품을 찾는 동시에 자신에게 만족을 주는 소비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많은 이가 마트에서는 100g당 1원이라도 저렴한 제품을 찾는 한편, 자신이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고 지출하는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즉 작은 사치 경향을 함께 보여준다. 

    불황이 깊어질수록 개인 소비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과거에는 고가격 지향 소비자 집단과 저가격 지향 소비자 집단을 명확히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이가 소비 양극화 성향을 나타내기 때문에 명확하게 ‘고가격 지향/저가격 지향’ 소비자로 고객 집단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래프’를 보자. 과거에는 중간 가격대에 적정한 품질을 가진 제품을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제품에 대한 수요는 줄었고, 사람들은 저가격 제품과 고가격 제품을 동시에 추구한다.

    [가성비 소비] B급 제품과 셀프 인테리어 인기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비’의 줄임말로 소비자가 지급한 가격에 비해 제품 성능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를 나타낸다. 예전에는 주로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등 ‘고관여’ 상품에서만 가성비를 따졌지만, 지금은 생활용품이나 식품 등 저관여 제품에서도 가성비가 중요해지고 있다.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품질을 보유한 제품은 이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브랜드·마케팅에 따른 가격 거품을 빼고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PB(Private Brand)상품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상품은 브랜드보다 품질과 가격을 더 중요시하는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B급 상품’ 또한 소비자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한 예가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다. 주로 식품 부문에서 이러한 소비가 늘고 있다. B급 상품에 대한 관심은 가전 및 가구 시장에서 리퍼브 제품의 인기로 이어진다. 못난이 과일(흠과)도 인기 있다. 낙과 또는 출하 과정에서 상품 가치가 떨어진 못난이 과일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인데, 가성비 지향 소비자들이 이를 선호한다. 이러한 제품은 소비자가 원하는 핵심 품질과는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가격은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만족감을 줄 수 있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사람은 지출은 최소화하되 만족감은 극대화하고자 점점 더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모든 것을 집 안에서 해결하는 일명 ‘셀프 소비’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요리해 먹고 취미생활을 향유하며 집 꾸미기에 관심을 가진다. 무엇보다 집에서 향유하는 생활은 외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성비가 높다. 전문 요리사가 소개하는 쉽고 저렴한 레시피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 레시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서도 일류 요리에 도전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적은 비용으로 집을 꾸미는 셀프 인테리어가 주목받는다. 가구 제작부터 도배, 페인트칠, 부엌과 화장실 개조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휴가도 집에서 즐기는 이른바 ‘홈캉스’가 인기다. 또 셀프 뷰티 제품을 구매해 스스로 피부를 관리한다. 집에서는 밖에서처럼 억지로 자신의 취향을 맞춰야 하는 불편함이 없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기 때문에 집 안에서 놀기를 자처하는 소비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가성비 소비] 버킷 리스트 중심 ‘체험경제’가 뜬다

    불황기에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작은 사치에 관심을 기울인다. 가성비 소비로 돈을 절약하는 한편, 자신이 관심 있는 영역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스몰 럭셔리 소비에서 주목할 영역은 무엇보다 ‘체험 소비’다. 물건을 소유하는 위시 리스트(Wish List) 중심 소비에서 특별한 체험을 원하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형 소비로 바뀌고 있다. 

    대표적 체험 소비인 여행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사회, 경제, 문화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기보다 더 풍부한 체험과 경험을 원하게 된다”며 “이른바 ‘체험경제’ 시대가 오고 있다”고 선언한다. 미각 체험을 원하는 이들은 위치정보 기반의 기술 발전과 더불어 멀리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매해 봄마다 많은 호텔에서 딸기뷔페 상품을 내놓는데, 이른바 ‘감성값’을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5만 원을 기꺼이 지불하고 새롭고 예쁜 디저트 세계를 경험한다. 

    이러한 소비 현상은 ‘가심비 소비’라고 부른다. ‘가격 대비 마음속 만족’이라는 의미로, 주관적 만족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큰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애정을 가진 대상에 대해서는 합리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랑을 베풀듯, 소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소비 형태를 일찍부터 ‘일점호화(一點豪華) 소비’라고 불렀다. 일본 영화감독 데라야마 슈지가 자신의 책에서 “거적때기를 덮고 자더라도 한 부분(일점)에서만큼은 호화로움을 추구하자. 그것은 무료하기만 한 소시민적 삶의 한 돌파구이다”라고 말하면서 회자되기 시작한 표현이다.

    불황기 행복을 위한 최후의 보루

    불황형 소비는 가치소비다.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가치=혜택÷가격’이다. 심리적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분모인 가격을 최대한 내리거나(가성비 소비), 분자인 심리적·주관적 혜택을 최대한 높이면(가심비 소비) 된다. 1000원이라도 아끼고자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먹지만, 디저트는 고급 카페에서 비싼 돈을 내고 즐기는 식이다. 이렇듯 고가와 저가를 뒤섞는 크로스(cross) 소비는 불황기에 부상하는 소비트렌드다. 

    저성장, 고용 불안, 취업난, 부(富)의 양극화에 따른 스트레스로 현대인은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치유하고자 여전히 소비를 통한 행복감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지출은 최소화하지만 만족감은 극대화하기 위해 갈수록 다양화하는 소비 전략은 불황기에 행복해지려는 눈물겨운 노력인 것이다.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소비 행복’을 위해 최후의 보루를 남겨두고 소비를 구조조정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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