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의 미식세계

토마토로 고추장을 만든다고?

‘토마토아뜰리에’의 기발한 토마토 가공식품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9-07-0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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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과 별도로 쇼룸 및 가공장으로 운영되는 ‘토마토아뜰리에’. [사진 제공·김민경]

    농장과 별도로 쇼룸 및 가공장으로 운영되는 ‘토마토아뜰리에’. [사진 제공·김민경]

    과일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유난히 손이 가지 않는 것이 토마토다. 토마토를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유는 맹맹하고 싱거워서다. 특히 완숙 토마토는 탐스러운 붉은색, 크고 불룩한 모양새와 어울리지 않게 ‘물맛’이 많이 난다. 달고 맛 좋은 토마토가 넘쳐나는 이탈리아와 비교하며 ‘우리의 땅심이 부족하고, 종자가 달라 좋은 맛이 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토마토아뜰리에’의 토마토를 맛보고 나서야 짧은 경험과 지식이 만든 오해라는 것을 알았다. 토마토는 달고 맛있는 과일이었다.


    골고루 익기 기다려 수확한 ‘완숙’ 토마토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서 열리는 ‘문호리 리버 마켓’에 참여한 모습. [사진 제공·김민경]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서 열리는 ‘문호리 리버 마켓’에 참여한 모습. [사진 제공·김민경]

    ‘토마토아뜰리에’는 본래 ‘토마토총각네’로 시작된 브랜드다. 부모가 30여 년 동안 자신들의 노하우로 키운 토마토를 아들이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시장에 들고 나가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토마토에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한 가지다. 맛있기 때문. 단맛을 내는 스테비아를 주입하지도 않았고, 종자가 특이하거나 생김새가 남다른 것도 아니다. 영양분이 열매까지 충분히 가도록 가꿔지고, 온몸이 발갛게 골고루 익을 때까지 줄기에 달려 있던 완숙 토마토일 뿐이다. 완숙 토마토는 쉽게 무를 것 같지만, 끝까지 익은 토마토라면 단단하면서도 붉은 과육이 오랫동안 싱싱한 향을 뿜고 있다. 

    집 근처에서 구입하는 완숙 토마토는 후숙이 많다. 푸릇푸릇할 때 수확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는 5~7일 동안 색이 붉게 변한다. 충분히 익지 못해 맛이 싱겁고, 향도 덜 나며, 쉽게 물러진다. 몇 단계를 거치는 유통 과정으로 소비자는 토마토의 제맛을 보기 어렵다. 

    김인성 ‘토마토아뜰리에’ 대표는 부모가 땀으로 지은 토마토의 제맛을 알리고 싶어 시장으로 나섰고 사람들은 그 차이를 금세 알아차렸다. 토마토를 알린 다음에는 맛 좋은 토마토로 만든 식품을 알리고자 했다. 김 대표의 어머니가 건강을 위해 집에서 만들어 먹던 토마토 고추장이 첫 주자였다. 토마토 고추장이 뭘까 호기심은 생기지만 맛보기 전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까다롭고 보수적인 ‘집밥’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함을 알 수 있다. 


    ‘토마토아뜰리에’의 토마토 농장. 농장에 들어서면 토마토 향이 가득하고, 대가 굵고 키가 큰 토마토 나무에 붉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사진 제공·김민경]

    ‘토마토아뜰리에’의 토마토 농장. 농장에 들어서면 토마토 향이 가득하고, 대가 굵고 키가 큰 토마토 나무에 붉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사진 제공·김민경]

    잘 익은 토마토를 설탕에 재워 발효시킨다. 과일청을 만드는 법과 비슷하지만 기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대체로 과일청은 짧게는 1주일, 길게 잡아도 100일가량 발효시킨 다음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추장 재료로 사용할 토마토청은 무려 3년의 발효 기간을 거친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도드라지던 설탕의 단맛이 둥글둥글 무뎌지고, 싱그럽던 토마토의 향은 푹 농익은 과일향처럼 진해진다. 처음과 달리 점성도 높아진다. 게다가 오랫동안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몸에 유익한 효소가 생성된다. 



    3년간 숙성시킨 토마토청만 준비되면 고추장 만드는 법은 간단한 편이다. 메줏가루에 태양초 고춧가루와 토마토청을 넣어 농도를 맞춰가며 골고루 갠다.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일반 고추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찹쌀가루(혹은 쌀가루, 밀가루, 보릿가루)를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고추장은 찹쌀가루 전분이 분해되면서 단맛과 감칠맛이 좋아지고 매운맛도 부드러워지는데, 토마토 고추장은 발효시킨 토마토청이 이 역할을 대신한다. 또한 토마토 고추장은 끓여서 만들지 않는다. 재료를 골고루 섞은 다음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서 6개월 동안 숙성 기간을 거친다. 이 시간을 거치고 나면 색, 맛, 향, 농도 등 모든 면에서 맛있게 익은 고추장 태가 난다.

    나트륨 함량 낮고, 입자가 살아 있는 토마토 고추장

    토마토 고추장으로 만든 떡볶이(왼쪽)와 비빔밥. [사진 제공·김민경]

    토마토 고추장으로 만든 떡볶이(왼쪽)와 비빔밥. [사진 제공·김민경]

    입자가 곱고 다소 크리미한 질감의 기존 고추장과 달리 토마토 고추장은 일명 ‘다대기’처럼 선명한 색의 곱디고운 입자가 살아 있다. 눈으로는 고추장의 결이 보이지만 입에서 걸리는 느낌은 전혀 없고, 국물이나 다른 양념에 섞으면 술술 잘 풀어진다. 맛은 여느 고추장 못지않게 매콤하지만 단맛은 훨씬 덜하다. 뒷맛이 깔끔하며, 입에 남는 매운 기가 놀라울 정도로 산뜻하다. 

    고추장 맛을 보자마자 비빔국수나 골뱅이무침 같은 칼칼하면서도 개운한 맛의 음식이 몇 가지 번뜩 떠올랐다. 그뿐 아니라 식초를 섞어 초장을 만들고, 육수에 풀어 물회 양념으로 활용해도 아주 맛있겠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페스타 다이닝에서 비빔밥(골동반상 메뉴)에 토마토 고추장을 곁들였는데 반응이 아주 좋은 편이다. 토마토 고추장이 다양한 채소가 가진 본래의 맛을 뒤덮지 않으면서 매콤하고 산뜻한 맛만 보태는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토마토 고추장은 끓이면 칼칼하고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감칠맛이 살아난다. 쉽게는 떡볶이, 복잡하게는 닭볶음탕, 푸짐하게는 해물탕, 독특하게는 장칼국수나 매운 수제비를 만들어 먹어도 잘 어울린다. 단맛을 조금 더해 닭강정이나 떡꼬치의 소스로 활용해도 그만이다. 말하자면 일반 고추장과 용도는 같은데 맛이 더 개운하고 깔끔하다. 

    토마토 고추장이 가진 살뜰한 장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나트륨 함량이다. 이른바 슈퍼마켓에서 흔히 접하는 ‘대기업 고추장’의 1일 영양성분 기준치 비율을 보면 나트륨 함량이 대체로 2000mg을 훨씬 웃도는 데 비해, 토마토 고추장은 1400mg 선을 유지하고 있다. 토마토 고추장의 단백질 함량은 높고, 탄수화물 함량은 평균적으로 낮다. 


    토마토 고추장(왼쪽}, ‘토마토아뜰리에’가 준비하고 있는 말린 토마토. [사진 제공·김민경]

    토마토 고추장(왼쪽}, ‘토마토아뜰리에’가 준비하고 있는 말린 토마토. [사진 제공·김민경]

    토마토의 변신은 간장, 식초, 청국장으로도 이어진다. 토마토에 북어와 고추씨 등을 넣어 달여 만든 토마토 간장이 있다. 역시 나트륨 함량을 낮추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달착지근한 맛이 좋은 간장이다. 비빔, 조림, 볶음 요리나 밥반찬에 사용하면 감칠맛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 

    토마토 식초는 토마토 과육, 프로바이오틱스, 쌀누룩, 원당을 섞어 18개월 동안 발효시켜 만든다. 새콤하지만 은은한 단맛이 나고, 자극적이지 않은 산미가 역시 산뜻함을 준다. 토마토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남아 있으며, 묽은 귤색 또한 곱다. 과일청이나 레몬, 오렌지 같은 시트러스류의 과즙, 올리브 오일 등을 섞어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다용도 드레싱으로 사용하기에 알맞다. 샐러드는 물론이거니와 살짝 익힌 해산물, 생선회, 튀김 등에 살짝 곁들여도 어울리는 맛이다. 마요네즈, 머스터드, 꿀 등으로 만든 걸쭉한 소스에 토마토 식초를 한두 방울 떨어뜨리면 입맛 돋우는 비결이 될 법하다. 

    토마토 청국장은 겨울 한 철에만 맛볼 수 있다. 늦가을 마지막 토마토를 수확하면 계약 재배한 콩을 삶아 띄우고 토마토 분말을 섞어 청국장을 만든다. 콩 알갱이가 잘 살아 있고, 특유의 향이 진하지 않아 청국장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거부감 없이 먹을 만하다. 

    개인적으로 ‘토마토아뜰리에’를 알게 돼 얻은 가장 큰 성과는 토마토 주스다. 어머니는 완숙 토마토를 골라 얇은 겉껍질을 벗겨가며 강판에 갈아 아침마다 가족에게 먹였다. 나는 단단한 토마토를 구해 꿀과 함께 믹서에 갈아 마시는 걸 즐겼다. 그러다 착즙기가 유행하면서 맛과 향이 한껏 진하게 우러나는 엑기스 같은 즙을 마시곤 한다. 

    ‘토마토아뜰리에’의 토마토 주스는 끓여서 만든다. 잘 익은 완숙 토마토를 손으로 대강 주물러 냄비에 넣고 끓인다. 수분이 많은 과일이라 끓이는 도중에 물이 많이 나온다. 과육이 풀어질 정도로 무르게 익으면 즙을 거른다. 끓인 토마토를 고운 망에 넣어 얇은 껍질만 남을 정도로 주무르고 누르기를 수차례 반복해 즙을 모두 짜낸다. 이 즙을 뭉근하게 고아 주스를 만든다. 토마토 5kg을 주스로 만들면 고작 2ℓ가 나온다.

    끓여서 만든 토마토 주스, 목 넘김 부드러워

    채소 음료 ‘V8’과 색, 농도가 비슷한데, 맛이 훨씬 달고 목 넘김은 부드럽다. 빈속에 먹으면 든든하고, 숙취가 있는 날이면 해장에 도움이 되며, 식사 후에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 토마토 주스는 뜨거울 때 소독한 병에 넣어 밀봉하기 때문에 실온에 두고 먹어도 상관없다. 솜씨 좋은 이라면 소스를 만들거나 국물 요리에 넣어 두루두루 활용해볼만하다. 

    ‘토마토아뜰리에’의 가공식품은 인터넷 네이버 스토어팜과 온라인 쇼핑몰 ‘식탁이 있는 삶’에서 구입할 수 있다. 완숙 토마토와 토마토 주스는 ‘토마토아뜰리에’로 직접 연락해 주문하면 된다.

    김인성 ‘토마토아뜰리에’ 대표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토마토아뜰리에’의 다음 식품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말린 토마토를 곧 선보일 예정이다. 건포도처럼 쫄깃하고 달콤한 맛이 난다. 가미를 하지 않아도 단맛과 짠맛이 토마토에서 풍성하게 나온다. 말린 토마토를 오일과 향신료에 절이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토마토 고추장은 얼마나 보관해 먹을 수 있나. 

    “고추장을 끓이지 않고 만들다 보니 보관을 걱정하는 분이 많다. 그래서 고추장에 특수한 뚜껑을 씌웠다. 발효될 때 나오는 가스를 배출해주기 때문에 고추장이 익어서 넘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뚜껑이다. 알루미늄 뚜껑을 열기 전에는 실온에 두고, 뚜껑을 연 다음에는 냉장 보관하면 된다. 일본과 유럽에 수출할 계획이라 비행기에 실어 운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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