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게임연구소 - 세가새턴

CD로 2D 게임시장 노렸던 비운의 게임기

만년 2위 세가의 야심작에도 불구, 3D 플레이스테이션에 밀려

  • 조학동 게임동아 기자

    igaleau@donga.com

    입력2019-05-20 1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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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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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초부터 세가는 세가마스터시스템과 메가드라이브로 게임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마리오’의 라이벌 ‘소닉’의 탄생과 북미지역에서 강세는 세가의 콘솔게임기 사업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이후 가정용 게임기에 오락실(아케이드 게임센터)용 고퀄리티 게임이 속속 이식되면서 세가는 가정용 게임기시장에서 선전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는 어려웠다. 당시 세가에 붙은 꼬리표는 ‘만년 2위’였다. 세가는 1992년부터 가정용 게임기시장 1위 탈환을 목표로 본격적인 차세대 게임기 제작에 돌입했다. 게임기 개발 프로젝트명은 ‘세가새턴’. 세가는 1994년 11월 일본에서 ‘세가새턴’을 출시했다.

    프로젝트명이 그대로 이름으로

    사실 세가는 ‘새턴’이라는 이름을 고수할 생각이 없었다. 새턴은 태양계 6번째 행성인 토성인데, 세가의 6번째 게임기라는 의미다. 하지만 출시 전 정보 유출로 새턴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어쩔 수 없이 정식 명칭이 됐다. 

    세가새턴이 당시 차세대 게임기로 주목받았던 요인은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용량의 자유였다. 세가새턴은 기존 슈퍼패미콤이나 메가드라이브와 달리 팩을 사용하지 않고 콤팩트디스크(CD)를 채용했다. 당시 롬팩 내장메모리 가격은 굉장히 비쌌다. 이 때문에 개발사가 더 큰 용량의 게임을 만드는 데는 원가 부담이 컸다. 그래픽과 사운드를 보강하려면 용량이 커야 하는데 팩 생산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 팩 게임 용량은 보통 8MB였고 커봐야 32MB였다. 하지만 최대 650MB까지 가능한 CD의 도입은 업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래픽 한계가 사라졌고 사운드 역시 용량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두 번째는 연산 능력의 발전이다.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의 발달로 비로소 아케이드 게임센터와 큰 차이 없이 게임을 구현할 수 있었다. 이전 세대 가정용 게임기는 오락실용 게임을 완벽하게 이식하지 못했다. 연산 능력의 차이로 오락실용 게임을 가정용으로 이식할 때 원작에서 많은 부분을 삭제해야 했다. 세가새턴은 오락실의 쟁쟁한 2D 게임을 거의 그대로 이식 가능해 처음으로 ‘오락실 완전이식’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다. 



    당시 일본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기려면 게임당 100엔을 내야 했다. 반면 세가새턴 소프트는 5800엔 정도만 투자하면 됐다. 60번 넘게 플레이하면 이득인 셈. 세가새턴은 히타치에서 제작한 고성능 프로세서 SH-2(28.63MHz)와 충분한 메모리(2MB RAM, 1.5MB VRAM, 512KB ROM), 고성능의 사운드 담당 프로세서(Yamaha FH1 (SCSP) @ 22.6MHz)를 탑재했다. 세가는 메가드라이브가 슈퍼패미콤에 비해 부족했던 다양한 2D 강화기술을 도입해 압도적인 2D 구현 능력도 갖췄다.

    초반 분위기는 좋았으나 미래를 보지 못하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가 세가새턴을 정식 발매했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가 세가새턴을 정식 발매했다.

    세가새턴은 1995년 5월 북미, 7월 유럽에서 출시됐다. 한국에서는 삼성과 협력해 삼성새턴이라는 이름으로 1995년 11월 시장에 나왔다. 판매량을 보면 일본에서 약 640만 대, 해외에서 약 316만 대 등 총 956만 대가 팔렸다. 

    출시 초기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세가새턴이 발표됐을 당시 닌텐도는 여전히 슈퍼패미콤의 성공에 취해 CD 드라이브 채용도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세가는 오락실을 주름잡는 메가 히트작을 여럿 보유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3D 대전 격투 게임의 시작을 연 ‘버추어 파이터’, 3D 공간 안에서 테러리스트들을 박살내는 ‘버추어캅’, 엄청난 박진감으로 몰입도를 높인 ‘데이토나 USA’ 등 오락실은 세가 전성시대였다. 

    하지만 정작 큰 문제는 세가새턴으로 자사 게임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세가의 첨단 오락실용 게임은 전부 3D인 데 반해 세가새턴은 2D 게임 구동에 최적화돼 있었다. 기존 2D 게임은 완벽하게 이식했지만 3D 연산 능력이 거의 없어 오락실 히트작 효과를 거의 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니가 3D 연산 능력에 특화된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발표하면서 세가새턴 진영은 그야말로 울상이 됐다. 이미 양산체제에 있던 세가새턴을 살리고자 세가와 히타치는 메인 프로세서인 SH-2를 한 개 더 장착했지만 개발 과정만 난해해졌을 뿐 3D 대응은 여전히 어려웠다. 

    전작 메가드라이브가 북미에서 2700만 대 판매된 것에 비해 세가새턴은 고작 316만 대에 그쳤다. 오락실에 비해 퀄리티가 형편없는 ‘버추어 파이터’와 ‘데이토나 USA’에 유저들은 등을 돌렸다. 플레이스테이션이 독점한 3D RPG(롤플레잉게임) ‘파이널 판타지7’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세가새턴은 생명력을 잃었다. 

    사실 세가 북미지사인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개발 과정에서부터 세가새턴을 3D 그래픽에 특화된 게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미지역 게임웹진 ‘IGN’의 기획기사 ‘세가의 역사’에 따르면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가정용 게임기시장도 3D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적극적으로 3D 그래픽 회사들과 접촉했지만 일본 본사의 반대로 무산됐다. 만약 세가가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주장을 받아들였더라면 세가새턴이 플레이스테이션 대신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가정용 게임기가 됐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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