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한국 영화에서도 과장된 음악 사용은 이제 그만!

영화음악의 거장 인터뷰 담긴 ‘스코어’를 읽고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9-05-07 09: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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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게 일상화되면서 음악 감상은 후순위로 밀렸다.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게, 즉 음악이 시간의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게 당연해졌다는 말이다. 스마트폰의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웹서핑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다고 치자. 어떤 동영상을 재생할 경우 음악이 끊기고 해당 영상의 소리가 나온다. 우선순위가 영상에 주어진다는 얘기다. 이렇듯 음악에 집중하기가 불가능해지니 인기 있는 음악도 둘로 나뉜다. 팬덤의 충성도에 기반한 아이돌이나 오디션프로그램의 음악, 아니면 다른 일을 하면서 듣기 좋은 말랑말랑한 음악. 음원 차트에서 확연하게 보이는 추세다. 

    이런 시대에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 있다. 극장이다. 일반 가정과 비교할 수 없는 사운드 시스템, 2시간 남짓한 상영 시간 내내 딴짓을 할 수 없는 환경. 그래서 예로부터 영화음악은 한번 터지면 엄청난 성적을 쌓곤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보디가드’ ‘타이타닉’ ‘쉬리’ 같은 영화의 주제가가 그랬다. 최근에도 ‘라라랜드’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의 경우 초회 한정판 컬러 LP를 사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으며, ‘보헤미안 랩소디’의 열풍으로 퀸 중고 LP들의 가격이 몇 배씩 뛰는 기현상이 일어났을 정도다. 

    얼마든지 음원으로 들을 수 있는 곡들을 줄을 서가며, 그것도 LP로 사려는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음악이 마음속에 침투하는 정도가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감상을 넘어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자극했다는 얘기다. 많은 음악 장르를 놔두고 라디오에 언제나 영화음악 전문 프로그램이 꼭 있다는 사실 또한 극장에서 받아들이는 음악의 특별함을 보여준다.

    동명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된 ‘스코어’

    하워드 쇼어, 한스 치머, 레이철 포트먼, 제임스 캐머런 (왼쪽부터) [AP=뉴시스, rex]

    하워드 쇼어, 한스 치머, 레이철 포트먼, 제임스 캐머런 (왼쪽부터) [AP=뉴시스, rex]

    ‘스코어 오리지널 인터뷰집 : 영화음악의 모든 것’(스코어)은 영화음악 작곡가의 인터뷰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쓴 이는 탐사 보도 전문가인 맷 슈레이더. 그는 동명의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는데 이 다큐는 아이튠즈 차트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했고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퀸스 존스는 자신의 재능을 이렇게 표현한다. “제게는 공감각을 느끼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음을 들으면 그에 해당하는 색깔이 느껴지죠. (중략) ‘B플랫’은 자주색이고, 뭐 그런 식이죠. 색깔은 원하면 언제든 바꿀 수 있어요. 공감각은 하나의 사고방식입니다. 사실 음악은 원래 말이 안 돼요. 논리적이지 않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음악을 창조하고 해석하는 과정은 논리적일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작곡가의 독특한 습관이 있다. ‘반지의 제왕’으로 오스카를 수상한 하워드 쇼어는 늘 원작을 읽는 것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그 후 작가가 어떤 계기로 그 작품을 썼는지, 작품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사한다. 그다음 산책과 낮잠을 통해 무의식으로 들어가 원작의 의도에 공감하는 단계를 거친 후 곡을 쓰기 시작한다. “상영관에 들어가 조명이 꺼지면 화면에 영상이 뜨기 시작합니다. 꿈을 꿀 때와 비슷하죠.” 

    ‘다크 나이트’ ‘인셉션’의 작곡가 한스 치머는 “아침에는 그 어떤 작업도 할 수 없으며, 모든 작품을 맡을 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는 의외의 고백을 한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음악이 혁신적인 비결에 대해 치머는 ‘라이온 킹’을 예로 들어 이렇게 말한다. “그때까지 관객은 애니메이션 하면 ‘미녀와 야수’ 같은 만화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특이한 애니메이션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의 시작 부분에 제 친구이자 작곡가인 레보엠이 부른 성가를 깔았습니다. 관객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캔자스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색다르지만 흥미로울 겁니다. 그러니 함께 즐깁시다.’ 그 뒤로 저는 늘 영화의 첫 장면에 관객을 사로잡을 음악을 넣으려고 노력합니다. (중략) 배트맨 시리즈 영화의 시작 부분에는 박쥐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를 넣었습니다. 첫 장면에 상징적인 소리를 넣으면 관객에게 예상 밖의 전개를 미리 암시할 수 있습니다.”

    영화음악, 장면과 다소 어긋날 때 매력적

    한국 영화를 보면 답답할 때가 있다. 윤제균 감독의 작품을 비롯한 이른바 통속 영화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게 만드는 듯한, 과장된 음악 사용 때문이다. 거장들이 가장 경계하는 방식이다. 

    ‘엠마’로 오스카를 수상한 레이철 포트먼은 말한다. “장면을 부풀리는 이른바 과장된 음악은 좋지 않습니다. 비극적인 장면에는 똑같이 비극적인 음악이 흐르게 하는 것이 정석이죠. 하지만 비극적인 장면에 희망이 조금 섞이거나 달콤, 쌉싸래한 음악, 그러니까 장면의 정서와 다소 어긋나는 음악을 깔면 영화가 흥미로워집니다. (중략) 영화음악이 정말 흥미로운 건 장면과 다른 정서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2차 방정식을 근의 공식으로 푸는 듯한 뻔한 음악이 기억에 남을 수 없다는 건 자명할 터, 제임스 호너가 만든 ‘타이타닉’ 테마곡을 듣는 순간 성공을 확신했다는 제임스 캐머런은 이 책에 등장하는 유일한 감독이다. 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틴 스코세이지와 더불어 할리우드에서 소문난 음악광이기도 하다. 캐머런은 영화음악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영화음악은 영화의 심장 박동이나 마찬가지예요. 영화의 리듬이자 영화가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실용음악과가 전국에 퍼지면서 많은 음악 지망생이 영화나 드라마 음악 작곡을 목표로 잡는다. ‘도구 이상의 무엇’으로 영화음악이 남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새겨둘 경구일 것이다. 멀티태스킹의 시대, 유일하게 귀를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극장에서 청력을 낭비하는 것만큼 불쾌한 경험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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