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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껍데기만 남은 방위산업

창조경제 핵심 동력 시동 꺼진다

MB정부 시절부터 방산 특성 무시한 무한경쟁 강요…아직은 경쟁보다 육성 필요한 때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창조경제 핵심 동력 시동 꺼진다

창조경제 핵심 동력 시동 꺼진다

2014년 10월 강원 원주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열린 국산전투기 FA-50 전력화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전투기 기체에 쓰인 ‘창조국방의 나래’는 박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을 인쇄한 것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제 우리 방위산업이 민간의 창의력과 결합해 창조경제의 꽃을 피우는 핵심 동력이 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전력화 기념행사에서 축사로 한 말이다. 2014년 10월에는 국산전투기 FA-50의 전력화 기념식에 참석해 “FA-50은 창조경제의 성공모델”이라고 평하며 “정부는 방위산업을 창조경제의 핵심 분야로 키우면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도록 적극 지원해나갈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방위산업은 박 대통령의 공언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기업이 하나 둘씩 방위산업부문을 정리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업계를 떠나거나 대기업 하청업체 수준으로 전락했다. 원인은 방위산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경쟁’을 강조한 정부의 방위산업정책에 있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정책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자주국방’ 기치를 내건 뒤 국군이 주로 사용하던 미국산 무기를 국산화하고, 노후장비를 교체하는 현대화 작업을 실시했다. 74년부터 93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32조 원이 투입된 ‘율곡사업’이 이때 시작됐다. 당시 민간 부문의 기술력은 매우 저조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정부 주도가 필연적이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던 ‘방위산업육성회의’는 향후 대한민국 방위산업정책의 뼈대가 되는 기본 방침들을 수립했다. 대표적인 것이 ‘방산지정제도’와 ‘방산원가계산제도’다. 방산지정제도란 정부가 특정 무기의 생산을 한 기업에 지정해 전담케 하는 제도를 말한다. 방산원가계산제도란 생산한 무기에 대한 원가를 보상해주고 이에 더해 적정한 수준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수요자가 단 하나뿐인 시장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위 제도들은 방위산업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통상적인 시장과 달리 방위산업은 시장에 수요자가 단 하나, 정부밖에 없는 특이한 산업이다. 이 때문에 시장의 성장률도 일반적인 수요·공급 원칙이 아닌, 정부 시책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은 이윤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방위산업을 육성하려면 정부가 어느 정도 이윤을 보장하고 꾸준히 일감을 제공해야 했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방위산업정책은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꾸준히 지속됐으며 1983년 이후 방산지정제도는 전문화·계열화 제도로 더욱 심화됐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계기는 율곡사업 추진 중에 발생한 대규모 비리사건이었다. 이후 ‘율곡비리’로 통칭되는 이 사건은 방위산업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을 굳혔다. 이때부터 방위산업에 대한 각종 지원제도가 하나 둘씩 폐지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방위산업 부문이 민간에 비해 비효율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경제개발기를 거치면서 민간 부문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반면 방위산업 부문은 민간 부문에 비해 정체돼 보인 것이 사실이다. 이때부터 ‘치열한 시장경쟁’을 통해 방위산업 또한 민간 부문 못지않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담론이 언론 등을 통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여기에 더해 방위산업의 ‘신(新)성장동력화’를 추진했다. 과거 방위산업은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 생산에 국한돼 있었다. 이러한 소극적 의미의 기능을 확장해 방위산업 물자의 수출 증대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고, 국가 경제와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방위산업 영역을 제시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방위산업 ‘신성장동력화’의 골자였다. 시장경쟁을 통한 경쟁력 확보는 이를 위한 선행과제였다.

성장 없는 시장에 무한경쟁 본격화

창조경제 핵심 동력 시동 꺼진다

육군의 차륜형 장갑차 사업은 대표적인 과당경쟁 사례다. 참여한 모든 업체가 시제품을 만들었기 때문. 사진은 사업자로 최종 선정된 현대로템의 장갑차. 사진 제공 · 현대로템

2009년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는 이명박 정부가 취한 경쟁력 강화 조치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 과도한 경쟁으로 초기 성장이 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문 분야에 따라 업체를 지정해왔으나 기술 개발의 촉진을 저해하고 새로운 업체의 참여를 가로막는 등 자유시장경제에 걸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약 40년간 방위산업을 보호하던 울타리가 무너지고 무한경쟁 시대가 열렸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가 한국 방위산업계의 생태계를 파괴한 주범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제도가 폐지되자 중복 투자와 과당경쟁이 극심해졌다는 것. 일례로 2013년 사업자가 최종 선정된 육군의 차륜형 장갑차 사업을 들 수 있다. 전문화·계열화 제도가 유지되던 과거에는 전차, 장갑차, 자주포 생산업체가 각각 현대로템, 두산DST,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으로 분리돼 있었다. 그러나 제도 폐지 후 실시된 차륜형 장갑차 사업에는 세 업체가 모두 뛰어들어 시제품을 제작했고, 현대로템이 사업자로 선정되자 두산DST와 삼성테크윈이 시제품 제작에 쓴 비용은 공중으로 흩어졌다. 일반 시장이라면 다른 수요자에게 팔 수라도 있겠지만 한국 방위산업시장에서 수요자는 단 하나, 대한민국 정부밖에 없다.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의 충격은 특히 중소기업에게 컸다. 이제 아무런 울타리도 없이 대기업과 경쟁을 벌여야 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별다른 자격도 없는 무자격 중소업체까지 난립하면서 대기업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또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가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저가경쟁입찰제 도입은 한국 방위산업계 생태계 파괴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무기 도입비의 20%는 깎을 수 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정부가 무기 도입에 사용하는 예산이 곧 한 해 시장 규모의 전부인 한국 방위산업에서 정부의 방위력개선사업비 증가율은 노무현 정부 때 연평균 14%였다 이명박 정부 때는 5.4%로 크게 줄었다. 게다가 굵직한 사업들은 해외 도입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잦았다. 여기에 저가경쟁입찰이 일반화되자 방위산업체들은 일단 공장 가동률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저가입찰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이는 자연스레 부실 증가와 성능 저하로 이어졌다.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로 해당 사업 부문에 전문성이 부족해도 입찰에 뛰어드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오히려 방위산업비리와 부실이 발생할 여지가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상작전헬기 도입 관련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무기중개상 함모 씨의 회사가 K11 소총 납품 비리사건에서 불량부품을 공급한 사실을 지적하며 “과거(제도 폐지 전)였으면 이런 업자들이 활개 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방위산업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세계 수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유시장경쟁 요소를 도입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방위력개선사업비는 이명박 정부 시절보다 적은 3.9% 증가율을 보였을 뿐이며, 앞으로도 정부 국방예산은 큰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 방위산업시장의 성장가능성에 뚜렷한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한국 방위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일 만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긴 어렵다. 이제 겨우 소량의 항공기를 해외에 수출한 것이 전부다.
박근혜 정부의 방위산업정책은 현재까지 ‘창조경제’라는 수식만 제외하면 이명박 정부의 ‘신성장동력화’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성장 없는 시장’에서 무한경쟁만 강요하는 현 정책기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으면 한국 방위산업은 창조경제의 핵심 동력이 되기도 전에 말라 죽을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15.12.16 1017호 (p20~21)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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