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5

2015.12.02

투박하지만 속 깊은 전통의 맛

경기 안성의 국물 음식들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12-02 14: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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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박하지만 속 깊은 전통의 맛

    ‘우정집’의 냉면(왼쪽)과 ‘안일옥’의 설렁탕.

    경기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성에는 여주, 이천 쌀과 충청도 산물이 모이는 경기 최대 시장이 있었다. ‘안성장에는 서울보다 두 가지 물화가 더 많다’(1926년 7월 10일자 동아일보)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1925년 기차역이 생겨 물화가 서울로 모여들자 서서히 몰락했다. 안성의 물산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유기(놋그릇)였다.
    조선 말기부터 유기는 일반인의 겨울 그릇이었다. 조선왕조 후반기부터 1960년대까지 봄과 여름에는 백자에 음식을 담아 먹었고 가을과 겨울에는 유기를 주로 사용했다. 묵직한 갈색 유기에 음식을 담으면 따스함이 느껴진다. 여름 냉면은 하얀 사기에 담으면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기분도 그렇지만 실험에서도 밝혀진 사실이다. 번성하던 안성장터에서는 음식 장사도 흥했다.
    장터국밥은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준 필요충분의 음식이었다. 안성 도기동 대로변에 있는 ‘안성장터국밥’은 옛 국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930년대 초 안성장터에서 시작된 노포(老鋪)로 안성시가 지정한 향토음식 1호점이다. 국밥은 일견 투박해 보인다. 소 사골과 양지머리를 13시간 이상 가마솥에 끓인 육수에 시래기와 콩나물, 대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결대로 죽죽 찢은 쇠고기가 들어가 뒤섞여 있다. 국밥이 상 위에 놓이면 육향과 파향이 향기롭게 피어오른다. 고기와 채소가 투박하게 잘려 있지만 건더기의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따로 먹기도 하고, 함께 먹어도 좋다. 마늘과 파에서 나는 단맛이 은근하고 친근하다. 국물이 튀지 않고 자연스럽다. 밥과 함께 먹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성 시내에 있는 ‘안일옥’은 1920년대 창업한, 경기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설렁탕과 곰탕, 꼬리곰탕을 취급하는데 무겁지 않은 국물이 특색이다.
    투박하지만 속 깊은 전통의 맛

    ‘모박사 부대찌개’의 부대찌개.

    중앙대 안성캠퍼스 주변에는 부대찌개 전문점 ‘모박사 부대찌개’ 본점이 있다. 이곳의부대찌개는 김치를 넣지 않는 것으로 특허까지 받았다. 경기 의정부에서 시작된 부대찌개가 김치찌개를 원형으로 한다는 점에서 김치를 넣지 않은 부대찌개는 새로운 유형의 음식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집에 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찬으로 나오는 백김치와 알타리무(총각무)김치 맛은 존재감이 확실하다. 혼자 먹기 힘든 부대찌개지만 이 집에선 1인용 미니 부대찌개를 판다. 햄, 스팸, 민찌(잘게 다진 고기) 같은 가공 고기도 평택에 비해 짠맛이 약하고 감칠맛이 강한 것을 사용한다. 간이 세지 않고 은은한 육수 맛도 좋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를 섞어 지은 밥이다. 양이 많고 밥 상태도 좋다. 아주 약간의 온기만 지니고 있어 부대찌개 국물을 금방 받아들인다. 밥과 국의 관계를 잘 알고 있다. 판매를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 집 한우육개장도 마니아 사이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맛이 괜찮다. 푸짐하게 들어간 고기와 칼칼한 맛의 국물을 유기에 담아 내놓는다.
    안성의 유명 맛집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쇠고기 전문점이고 국물 있는 음식을 판다. 하지만 안성에 쇠고기를 쓰는 식당만 있는 건 아니다. 안성 시내에 있는 ‘우정집’은 냉면으로 유명하다. 1975년 창업했으니 올해로 40년째다. 초겨울이지만 넓은 실내에 손님이 제법 있다. 초록색이 감도는 살얼음 상태의 육수는 채소 육수와 고깃국물이 섞인 특유의 단맛이 난다. 면은 밀가루가 많이 섞여 매끈하고 부드럽다. 황해도식 냉면이다. 옥천의 거센 황해도식 냉면 면발보다 세련된 면이고, 인천의 백령도식 냉면보다 기품 있는 육수다. 할머니 한 분이 냉면을 만들어 판다. 잘 만든 냉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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