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8

2015.10.12

정직한 절망 적당한 희망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5-10-12 1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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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한 절망 적당한 희망
    조성주의 ‘청춘일기’에는 수많은 ‘나’가 등장한다. 고시원 방세를 모으기 위해 여름방학 동안 강원도 해수욕장에서 치킨을 파는 ‘들치기 인생’(한철 장사해 바짝 벌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인 나, 밤 11시부터 커피숍 야간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며 쓰레기통을 뒤져 종이컵을 회수하는 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다섯 군데에서 받은 학자금 대출 상환이 끝나면 곧 서른 살이 되는 나, 지옥의 알바라 부르는 농산물 상자 상하차 작업을 저녁 8시부터 그다음 날 오전 6시까지 꽉 채워서 하는 나. 조성주는 왜 타인의 일기를 대신 쓰는 것일까. “타인이 바로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그의 말에 답이 있다. ‘청춘일기’ 에필로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일기’다. 여기서 조성주는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백하건대 사실 나도 당신들이었다. 당신이 260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빵집에서 알바를 할 때 나 역시 학원에서 일하며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했다. 때로 주말이 정말로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학자금 대출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가 주말에는 걸려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콜센터 노동자의 휴식이 채무자의 마음의 휴식이 되기도 한다.”

    칼 세이건의 책을 읽고 천문학자를 꿈꾸던 청년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행성의 청년 문제에 ‘꽂혀’ 대학을 그만뒀다.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국회의원 보좌관, 서울시 노동전문관 등을 거쳐 현재 정의당 정책연구소 미래정치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바로 그 조성주다. 6월 그는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심상정, 노회찬 등 쟁쟁한 정치 선배들과 경합을 벌여 3위(득표율 17%)로 낙선했지만 그때 쓴 ‘출마선언문’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길지만 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새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고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을 대변해야 합니다. 양당정치에 갇힌 한국 민주주의가 외면한 이들은 바로 공과금과 집세를 책상에 고이 놓아두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세 모녀이고, 쌀과 김치가 있으면 부탁한다는 쪽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젊은 작가이며, 수십 번의 취업 실패에 절망하며 외롭게 고시원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청년입니다. 닫혀버린 한국 민주주의는 이들을 조용히 추방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고 자매들이며 이웃입니다. 그들은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며 우리가 대변하고 함께 지켜야 했던 동료 시민이었습니다. 2세대 진보정치가 이들을 대변하지 않는다면 이 비극적인 현실은 다음 세대의 거의 전부가 맞이할 미래입니다.”

    조성주는 ‘청춘일기’ 각 장마다 전태일 일기를 인용했다. 1967년 2월 17일 전태일은 이렇게 쓴다. “200원을 가지고 벌써 80원을 썼으니 절약을 해도 19일까지밖에 못 가겠구나. (중략) 일을 하러 가기로 했지만 먹을 게 있어야 가지….” 그러나 48년 전과 다름없는 처절한 현실 앞에서 그는 무릎 꿇지 않는다. “희망이란 절망한 자들만의 특권”이란 말에서 꺾이지 않는 도전정신을, “정직하게 절망하고 또 과하지 않게 희망하자”는 말에서 담담한 실천의지를 읽는다.



    정직한 절망 적당한 희망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문학동네/ 412쪽/ 1만5000원

    “파가 우러난 국물에 달걀이 스며들면 파의 서늘한 청량감이 달걀의 부드러움과 섞여서, 라면은 인간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 만한 음식이 된다.” 라면을 끓이며 이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김훈이다.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뽑은 몇 편과 새로 쓴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당장 그의 조리법대로 라면을 끓이련다.

    정직한 절망 적당한 희망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스반테 페보 지음/ 김명주 옮김/ 부키/ 440쪽/ 1만8000원

    왜 인간은 살아남고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을까. 고생인류와 현생인류를 다르게 만든 게놈은 무엇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전인자는 어떤 것일까. 누구나 가질 법한 궁금증이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긴 쉽지 않다. 고대 이집트 미라의 DNA 추출과 염기 서열 분석을 시작으로 고대 DNA 연구를 개척해온 저자가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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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 진짜진짜 역사읽기

    이호철 지음/ 자유문고/ 312쪽/ 1만4000원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나, 리승만이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소설가 이호철이 일제강점기 순국한 민영환과 이준, 해방과 분단 시기 정치 주역인 이승만과 송진우, 조만식, 최용건을 불러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스스로 변론하게 하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선보였다. 지난 60년간 분단문학의 중심에 있던 작가가 광복 70년을 맞아 한민족 근현대사를 문학 형식으로 정리한 이색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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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

    요아힘 바우어 지음/ 전진만 옮김/ 책세상/ 296쪽/ 1만5000원

    저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심신상관의학과 교수로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업무 과중, 시간 압박, 멀티태스킹, 고용 불안 등으로 규정되는 현대 노동환경의 문제를 파헤치고 일과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삶을 모색한다. 특히 정서적 소진을 뜻하는 ‘번아웃증후군’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업무량, 자율성, 인정, 동료애, 정당성, 가치 준수라는 예방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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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한 수학

    에드워드 프렌켈 지음/ 권혜승 옮김/ 반니/ 432쪽/ 2만 원

    옛 소련 출신 수학자인 저자는 2002년 35세 미만 젊은 과학자에게 주는 헤르만바일상을 수상했고, 그의 강의를 담은 인터넷 유튜브 영상은 3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바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랭글랜즈 프로그램’을 소개한 것으로 대수학부터 기하학, 수론, 해석학, 양자물리학까지 수학 각 분야의 연관성을 밝혀 수학의 대통일 이론이라 부르는 내용을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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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샤론 모알렘 지음/ 정경 옮김/ 김영사/ 325쪽/ 1만5000원

    완전히 동일한 DNA를 가졌고 다섯 살 때까지 차이를 발견할 수 없던 일란성쌍둥이 중 한 명이 열두 살 때 집단 따돌림을 당한 뒤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겪었다. 신경유전학과 진화의학 전문가인 저자는 우리가 사는 곳, 먹는 음식, 사회적 경험과 감정이 우리의 유전자를 바꾸고 유전적 운명을 결정하며 심지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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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세상 내가 하는 인문학

    문성준 글/ 하얀가루 그림/ 새잎/ 412쪽/ 1만6000원

    사회적 기업 ‘인문학카페’ 콘텐츠기획팀장과 웹툰 작가가 뭉쳐 쉽고 재미있는 만화 인문학을 시도했다. 부제는 ‘플라톤에서 니체로’지만 서양철학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혼정보회사, 등급, 동물원, 월드컵, 가방, 플래너, 학력 등 우리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통해 인문학에 접근한다. 1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 2부 ‘그러니까 어쩌라고’를 읽다 보면 ‘바로 내 얘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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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 1

    역사건축기술연구소 지음/ 돌베개/ 436쪽/ 3만 원

    ‘제도를 아름답게 하여 존엄함을 보이고, 그 이름을 아름답게 하여 경계함을 나타내야 하는’(정조) 곳 궁궐은 최고 권력자가 머물렀지만 또한 사람이 살았던 공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꿈꾼 아름다운 궁궐, 창덕궁’ ‘궁궐 정원의 아름다운 대명사, 후원’ ‘왕실의 일상과 연회의 무대, 창경궁’이란 주제로 배치도부터 역사적 사건까지 궁궐 구석구석을 소개한다. 후속작은 경복궁·덕수궁 편.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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