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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암과 함께하는 사람들

“살려는 의지 내려놓으니 살아”

전립샘암과 수술 후유증 딛고 제2의 인생 사는 변양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살려는 의지 내려놓으니 살아”

“살려는 의지 내려놓으니 살아”
‘이제 나는 갈 준비가 되었으니 기꺼이 활짝 돛을 펼치고 바람을 기다리네.’

칼릴 지브란의 잠언집 ‘예언자’(더클래식)의 한 구절이다. 변양균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회장(사진)은 2012년 췌장암 선고를 받고 이 책을 떠올렸다고 했다. 예언자 알무스타파가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본 모든 것’, 즉 사랑, 결혼, 우정, 먹고 마심, 아름다움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의 책이다. 변 회장은 이 책을 오랫동안 가까이 두고 읽었다고 했다. 죽음이 눈앞에 온 걸 느꼈을 때 ‘예언자’가 떠오른 이유다. 자신도 알무스타파처럼 그동안 삶에서 얻은 지혜를 가족에게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랜 성찰을 담은, 깊이 있고 따뜻한 유서를 쓰고 싶었다. 그는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면 바로 집필을 시작할 생각으로 노트북컴퓨터를 챙겨 들고 병원에 갔다. ‘유서를 다 쓸 즈음 나의 삶도 마무리되리라. 그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자’고도 마음먹었다.

“췌장암은 생존 확률이 매우 낮은 병이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진단 후 병원 웹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살 수 있는 확률이 5%’라고 하더라고요. 죽는 게 거의 확실하다는 걸 다시 확인한 셈이죠. 그러고 보니 주위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고 살아 있는 사람을 못 본 것도 같았어요.”

노추를 피한 죽음

죽음을 맞는 게 분명해지자 의외로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좋아했던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마지막 모습도 떠올랐다.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는 1972년 73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가스를 마시고 자살한 그의 선택은 변 회장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늙고 추한 모습을 보이기 전 생을 마감했다는 게 멋있고 존경스러웠어요. 저도 언젠가 치매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거나 삶을 이어가는 게 노추처럼 느껴지면 그런 죽음을 맞고 싶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의 그런 결정이 자식에게 큰 멍에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종종 ‘자살하기도 쉽지 않은 나라’라고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췌장암인 걸 알고 마음 한편으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췌장의 절반 가까이를 잘라내는 대수술 후 의사가 “췌장에 있던 것이 암이 아니었다”는 진단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벌떡 일어나 전처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도 아니다. 호된 수술 후유증이 그를 괴롭혔다.

“4월 18일 췌장암 수술을 받고 5월 3일 퇴원했어요. 그때는 이미 췌장암이 아니라는 걸 아는 상태였죠. 그런데 12일 저녁부터 배액장치에 붉은빛이 비치더군요. 그리고 극심한 통증이 왔어요.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 들어갔지만 바로 증상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피를 토하고, 혈변을 보고…. 정말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어요.”

“살려는 의지 내려놓으니 살아”

경기 과천의 자택에서 실내자전거를 타고 있는 변양균 회장.

그는 온몸에 구멍을 다섯 군데나 뚫고 동맥을 연결하는 처치를 받아야 했다. 수술 도중 숨이 끊어질 뻔한 위기도 겪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정신 차리세요”라는 소리를 듣고 가쁜 호흡을 몰아쉰 순간이 그가 생과 사의 경계에서 이승으로 돌아온 때다. 변 회장은 숨이 목으로 넘어가면서 산소마스크 너머 세계가 마치 안개에 싸인 듯 뿌연 무엇에서 형태와 색을 띤 선명한 실체로 달라지던 모습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생의 밧줄을 움켜쥐었고, 이 땅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새로운 삶의 모습은 가혹했다. 키 174cm에 72kg을 유지하던 체중이 순식간에 60kg까지 줄었다. 다시 걸을 수 있을 만큼 몸을 회복하는 데 반년이 걸렸다. 췌장 절제 후유증으로 당뇨까지 찾아왔다. 변 회장은 2010년 전립샘암 진단을 받고 종양이 있는 부위에 방사선 동위원소 시드(씨앗) 삽입 치료를 받은 상태였다. 그는 “전립샘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하면 후유증이 적은 치료를 받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안 했다. 그런데 암도 아닌 수술 후유증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받는다는 게 참 얄궂었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새로운 몸에 적응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 건강히 살기 위해 그가 택한 것은 걷기였다. 변 회장은 1986년부터 줄곧 경기 과천의 한 주택에서 살고 있다. 양재천이 집에서 멀지 않다. 그전에는 한 번도 제대로 걸은 적 없던 그 길을, 그는 이 무렵부터 틈나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저녁을 든 뒤 1시간~1시간 30분씩 걷는다. 자연스럽게 혈당이 관리되고 체력이 회복됐다.

삶과 죽음은 하나

변 회장은 최근 전립샘암 치료 후 꾸준히 추적검사를 받아온 병원에서 “모든 수치가 정상이니 1년 후 다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사실상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이다. 매일 아침 사과 반쪽과 수삼 반 개를 먹는 정도를 제외하면 특별히 식이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그는 건강을 되찾은 비결로 걷기와 더불어 ‘평온한 마음’을 꼽았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을 만큼 죽음 앞에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게 도움이 된 것 같다는 뜻이다. 그는 “암을 이기려면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래, 죽자! 죽어주면 될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모든 고민이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1997년 감명 깊게 읽었다는 소걀 린포체의 저서 ‘삶과 죽음에 대한 티베트의 책’(국내에서는 ‘티베트의 지혜’(민음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 한 구절을 소개했다. ‘죽음은 아침저녁으로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1949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변 회장은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던 60년대 유년기를 보냈고, 73년 행정고시 합격 후 경제 관료로서 우리나라의 공업화, 도시화를 목도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 장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등을 지낸 그는 지금은 팬택과 인수합병(M·A) 계약을 체결한 옵티스 회장을 겸하며 지식정보산업의 첨단에 서 있다. 누구보다 다이내믹했던 지난 삶과 독서를 통해 쌓은 내공이, 그가 죽음을 ‘새로운 옷’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듯했다. “아무리 화나는 일이 생겨도 5분만 기다리면, 기다릴 수 있다면 다 해결된다”고 말하는 변 회장은 “누구나 마지막엔 다 죽는다. 그걸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기보다 현재를 즐겁게 사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주간동아 2015.10.12 1008호 (p38~39)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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