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3

2018.06.20

원포인트 시사 레슨

세계 최초 ‘외로움 담당 장관’은 장관급 맞아?

언론에 minister로 나왔지만 차관급 … 영국엔 3종류의 장관 있어

  • 입력2018-06-19 15:18:2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트레이시 크라우치 준장관(정무차관). [페이스북, shutterstock]

    트레이시 크라우치 준장관(정무차관). [페이스북, shutterstock]

    영국이 올해 국민의 외로움 문제를 전담하는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물론 관심은 현대인의 외로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면 담당 장관까지 둘까에 모아졌다. 

    그 중책을 맡은 주인공은 트레이시 크라우치(43). 그런데 잠깐만. 그의 직함을 보면 우리가 아는 장관과 살짝 거리가 있다. Parliamentary Under-Secretary of State다. 이는 한국의 차관에 해당한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도 장관(minister)이라고 보도했는데 웬 차관? 

    1990년대 초까지 장관의 영문 표기와 관련해 미국처럼 Secretary로 표기하는 나라, 영국처럼 Minister라고 표기하는 나라가 있다고 배운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한국식 장관의 호칭은 1964년부터 Secretary of State로 통일됐다. 미국의 경우 Secretary of State가 국무장관(외교장관)에게만 해당하지만, 영국에선 대다수 장관의 일반적 호칭이다. 예를 들어 영국 외무장관의 정식 호칭은 Secretary of State for Foreign and Commonwealth Affairs다. 

    물론 예외도 있다. 총리(Prime Minister)와 재무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은 전통적 호칭을 고수한다. 법무장관(Secretary of State for Justice)의 겸칭인 로드 챈슬러(Lord Chancellor)에는 복잡한 역사가 담겼다. 원래 국새를 관리하는 국새상서를 뜻하던 이 호칭은 당연직 상원의장이 되는 영국 사법부의 총수에게 부여됐다. 그러다 2005년 헌법개혁법으로 대법원이 상원에서 독립하면서 과거 서열 2위였던 대법원장(Lord Chief Justice)이 사법부 수장이 되고, 상원의장은 상원의원의 투표로 선출되는 로드 스피커(Lord Speaker)로 바뀌었다. 그리고 2007년 법무부가 신설되면서 그 수장의 호칭이 된 것이다.

    장관, 부장관, 준장관

    문제는 흔히 장관(minister)이라 부르는 호칭이 영국에는 더 많다는 데 있다. 이를 꿰뚫으려면 영국의 ‘3장관 시스템’을 먼저 알아야 한다. 영국은 장관이 반드시 의원직을 겸하게 돼 있다. 그래서 선출직 정치인이 아닌, 민간 분야 전문가를 장관으로 발탁할 때는 종신귀족으로 임명해 상원의원(세습귀족+종신귀족으로 구성)직을 부여한다. 그렇게 입각한 선출직 장관은 3종류로 나뉜다. 장관(Secretary of State), 부장관(Minister of State), 그리고 준장관으로 번역할 수 있는 정무차관(Parliamentary Under-Secretary of State)이다. 



    이들은 모두 minister로 통칭되지만 서열과 역할은 뚜렷이 다르다. 장관은 20여 개 장관급 부처의 수장이다. 이들은 대부분 총리가 주재하는 내각회의(각의)에 참석하기 때문에 내각 장관(Cabinet ministers)으로도 불린다. 

    부장관은 장관 아래 ‘넘버 투’들이다. 미국 부장관(Deputy Secretary)은 보통 1명이지만 영국 부장관은 최대 5명에 이르며, 부처의 주요 업무 가운데 특정 업무를 전담한다. 예를 들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1명이지만 영국 외무부(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의 부장관은 5명(유럽 및 미주, 중동, 영연방 및 유엔,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이나 된다. 한국 외교부에선 영국 외무부 부장관을 ‘국무상’으로 차별화해 부르기도 한다. 총리가 지명하는 몇몇 부장관은 내각회의에도 참석한다. 

    minor minister로 통칭하는 준장관은 정무차관 또는 의회담당 차관으로도 번역된다. 영국에서 국가공무원으로 최고위에 해당하는 사무차관(Permanent Under-Secretary of State)이 주로 부처의 재정 업무를 담당한다면 정치인 몫의 준장관(정무차관)은 국가정책 입법과 실행 업무를 맡는다.

    수석장관? 자치정부 행정수반!

    영국 DCMS 인터넷 홈페이지의 장관 소개.

    영국 DCMS 인터넷 홈페이지의 장관 소개.

    앞서 언급한 트레이시 크라우치는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하는 ‘디지털, 문화, 미디어, 스포츠부(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and Sport·DCMS)’ 소속 3명의 정무차관 가운데 1명이다. 스포츠, 경마, 도박, 복권 업무와 시민사회청(Office for Civil Society·OCS)을 관장한다. 주로 국민의 여가활동을 담당하기에 외로움 문제까지 맡게 된 것이다. DCMS 장관은 매슈 행콕 하원의원이고 부장관(디지털 담당)은 마고 제임스 하원의원이다. 사무차관 역시 1명인데 2013년부터 5년째 수 오언 차관이 맡고 있다. 

    영국의 장관 호칭 가운데 혼란을 초래하는 또 다른 하나는 흔히 ‘수석장관’으로 번역되는 First Minister다. 이 호칭은 본래 영국 총리의 별칭이었다. 그러다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3개 자치정부의 행정수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전의(轉義)됐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 왕국으로 구성된 연합왕국(UK)이다. 이 중 잉글랜드를 제외한 3개 지역은 별도의 선거를 통해 자치정부를 구성한다. 이 자치정부에서 총리 역할을 수행하는 행정수반이 First Minister다. minister란 호칭이 들어가지만 중앙정부 내각에 참여하는 장관이 아니다. 

    한국 같으면 행정안전부에서 통합 관할하겠지만 영국은 내무부(Home Office)와 별도로 각 자치정부의 카운터파트가 되는 스코틀랜드부, 웨일스부, 북아일랜드부를 두고 있다. 이들 부처마다 장관도 따로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분리독립 문제로 시끄러운 스코틀랜드의 자치정부 행정수반(First Minister of Scotland)은 니컬라 스터전이다. 그 카운터파트인 중앙정부의 스코틀랜드장관(Secretary of State for Scotland)은 데이비드 먼델이다. 따라서 영국의 경우 First Minister는 수석장관으로 직역하기보다 자치정부 행정수반으로 의역해야 불필요한 혼동을 막을 수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