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0

2018.05.30

경제

금융 취준생이 달라졌어요!

‘명퇴’ 종용하는 은행보다 ‘전문성’ 키워주는 보험사 선호

  • 입력2018-05-29 11:25:4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shutterstock]

    [shutterstock]

    최근 금융권 취업준비생(취준생) 사이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은행보다 보험사가 낫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보험사 취업을 목표 1순위로 두는 이가 늘고 있는 것. 그동안 은행은 ‘화이트칼라’의 대명사이자 고임금의 ‘신의 직장’으로 여겨졌다. 반면 보험사는 제2금융권인 데다 영업 압박이 커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은행과 보험사의 위상이 사뭇 달라지면서 취준생들의 선호 대상도 바뀌고 있다. 

    은행업계는 ‘디지털 금융’의 가속화로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면서 점포 축소 등의 이유로 상시적인 명예퇴직이 일어나고 있다. ‘은행원의 꽃’이라 부르는 지점장 자리도 쉽게 넘볼 수 없게 됐다. 또 인원 축소로 업무 강도는 날로 세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보험업계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가까워질수록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지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 많아지면 개인정보 유출 내지 사이버 테러 같은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에 대비책으로 보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례로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빗썸은 지난해 10월 사이버 위험에 대비해 60억 원 한도의 배상책임 보험에 가입했다. 또 고령화 사회에 빠르게 진입하면서 자산 관리와 노후 대비에 관심을 갖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보험업의 잠재적 성장 요소로 꼽힌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취준생 들이 보험사를 은행의 차선책쯤으로 여긴 게 사실이다. 내가 입사하던 15년 전만 해도 영업 스트레스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보험이 활성화하면서 본사 직원들에게까지 영업 압박이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무엇보다 정보기술(IT) 산업의 발달로 보험 영역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조만간 자동차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그것에 따른 위험을 차단하고자 새로운 보험이 등장하지 않겠나. 또 최근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신사업을 시작하기 전 리스크 방지를 위해 보험을 들고자 하는 이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몸값 높은 보험계리사

    한화손해보험 주니어 사원들이 취업준비생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취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뉴시스]

    한화손해보험 주니어 사원들이 취업준비생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취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뉴시스]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업무 형태 또한 취준생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대표적으로 보험계리사 자격증을 들 수 있다. 보험계리사는 수학과 확률, 통계적 방법 등을 활용해 미래적 상황을 바탕으로 보험 위험률을 측정한 뒤 보험, 연금 등의 보험료와 보상지급금을 계산해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보험개발원과 금융감독원(금감원)이 공동으로 1년에 한 번씩 국가공인 자격시험을 시행하는데, 보험사 처지에서는 어떤 상품을 출시하느냐에 따라 회사 전체 수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보험계리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생명·손해보험사에 속한 보험계리사는 920명으로 삼성화재(124명), 삼성생명(119명) 등 일부 대형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보험사에는 전속 보험계리사가 30명도 채 안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험사들은 신입사원 채용 때 보험계리사 자격증 소지자를 우대할 수밖에 없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보험계리사는 보험사마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격증만 따면 취업이 거의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특히 직급과 경력이 쌓일수록 연봉이 올라가고, 몸값을 높여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 수학과나 통계학과 출신은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보험사들은 보험 부채 평가가 원가 기준에서 시가 기준으로 바뀌는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보험계리사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험사 전체로 봤을 때 현재 필요한 보험계리사 인원은 3000명가량 된다. 

    따라서 보험사들은 직원들에게 보험계리사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고 있다. 현재 국내 중형 보험사에 근무 중인 최모 씨는 2017년 보험계리사 시험에 일부 합격한 상태에서 취업에 성공했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최씨는 처음부터 보험사 취업을 목표로 보험계리사 자격증을 준비했다. 현재는 회사를 다니면서 나머지 시험을 준비 중이다. 보험계리사 시험은 1차 시험을 통과한 뒤 5년 안에 5개 과목에 합격하면 되는데, 최씨의 경우 현재 3과목을 통과했다.

    보험회사에 고급인력 몰린다

    최씨는 "중형 보험회사의 경우 계리사 자격증을 따면, 매달 받는 수당이 20만~40만 원 정도 더 오른다. 보험계리사 시험은 문제 난도가 높고 변동 폭도 커 과목당 적어도 2~3개의 기본서를 봐야하는데 '보험수리' 같은 책은 권당 6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원서는 너무 비싸 제본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그것도 3~5만원 정도 한다. 강의는 인터넷 강의와 보험연수원에서 진행하는 보험계리사 수업, 그리고 일반 사설학원을 통해 들을 수 있는데, 월 20만~70만 원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의하면 현재 보험계리사의 평균 연봉은 6200만 원(상위 25%는 7100만 원) 정도다. 국내 보험업계 1위인 삼성생명의 대졸 초임 연봉은 4200만 원 선이다. 

    손해사정 업무도 보험업에서 전문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손해사정사는 보험약관을 파악해 사고 정황을 조사하고 피해 규모를 판단한 후 적정 보험료를 산출하는 업무를 맡는데, 보험계리사와 마찬가지로 합격률이 2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각 분야의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채용 지원자의 수준도 한결 높아졌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대형 손해보험사 한 관계자는 “보험업계는 대부분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지만 면접 과정에서 지원자의 수준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해마다 지원자 수가 느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보험업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경우도 있어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부터 채용비리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은행업계는 고육지책으로 채용 필기시험인 ‘은행고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전국은행연합회는 면접관에 외부 인사를 참여케 하고, 필기시험을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은행권 채용 절차 모범규준’을 금융당국에 전달했다. 현재 필기시험은 KB국민, KEB하나, NH농협 등 일부 은행에서만 시행하고 있는데, 하반기부터는 대다수 은행이 필기시험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그동안 은행 취업을 준비해온 취준생들은 또 한 번 혼란에 빠지게 됐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가장 공정하다고 여겨지던 블라인드 채용이 오히려 채용비리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독창적인 영업전략이 필요한 시점에 이렇게 과거로 회귀하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