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4

2018.04.18

원포인트 시사 레슨

5월 5일이 어린이날 된 숨겨진 이유

올해 탄생 200주년 맞은 카를 마르크스의 생일

  • 입력2018-04-17 15: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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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카를 마르크스(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제공=동아DB]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카를 마르크스(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제공=동아DB]

    올해 어린이날은 96회를 맞는다. 첫 어린이날의 기점을 1923년으로 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1년 전인 1922년 같은 날 천도교소년회가 공식 설립 1주년을 맞아 어린이날로 선포했다. 천도교소년회는 소파 방정환(1899~1931)과 그의 보성전문학교 5년 선배인 소춘 김기전(1894~1948)이 1921년 함께 창립한 어린이단체다. 

    소파와 소춘은 모두 천도교도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소파는 천도교 3세 교주인 손병희의 사위였고, 소춘은 1920년 천도교에서 창간한 종합월간지 ‘개벽’의 초대 주필 겸 편집장이었다. 소파는 이 잡지의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호가 소파(小派)와 소춘(小春)으로 짝을 이룬 것도 어린이운동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어린이운동에서 소춘이 이론가, 소파가 운동가 역할을 나눠 맡은 것으로 본다. 

    그런데 왜 1922년이 아니고 1923년이 어린이날의 기점이 됐을까. 첫 번째 이유는 1922년 어린이날 행사가 천도교 차원에서 이뤄졌다면 1923년에는 경성 시내 소년단체 회원과 관계자 1000여 명이 모여 첫 전국 행사로 치러졌다는 점 때문이다. 두 번째는 1923년 이날이 해방 후 어린이운동을 주도한 색동회의 공식 창립일이라는 점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 소파는 당시 일본 유학 중이라 경성(서울)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대신 도쿄에서 색동회원들과 어린이날 기념식을 가졌다. 

    그런데 당시 어린이날은 우리가 아는 5월 5일이 아니었다. 모두 5월 1일이었다. 요즘은 노동절로 불리는 메이데이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어린이 인권 존중과 압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운동적 의미를 살리고자 일부러 노동절을 택한 것이었다. 

    소춘이 1923년 ‘개벽’ 5월호에 쓴 ‘5월 1일은 어떤 날인가’라는 글을 보면  ‘대우주 의 회춘’ 절기의 첫날이기도 하지만 ‘마음껏 노는 날’에서 ‘압제로부터 해방’을 의미하는 서구 메이데이의 전통에 부합하기에 조선에서 소년운동이 기치를 올리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또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소년 메이데이’ ‘메이데이와 어린이날’ 등 두 날을 해방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등치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5월 5일로 날짜가 바뀐 것은 해방 후 첫 기념일을 맞아 좌우진영 합작으로 행사가 열린 1946년부터였다. 여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첫째는 1928년부터 5월 첫 일요일을 기념일로 삼기로 했는데 1946년 5월 5일이 마침 첫 일요일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어린이날만이라도 당시 극심하던 이념대결에서 자유로운 날로 만들자는 데 좌우진영이 합의했기 때문이다. 해방공간에서 메이데이는 좌파가 가장 중시하는 기념일이 됐기에 분열보다 통합을 강조하고자 메이데이를 피했을 개연성이 크다. 셋째는 ‘두 개의 어린이날’이란 논문을 통해 그 기원을 추적한 한영혜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가설이다. 당시 좌익진영이 이날의 ‘특별한 진보적 의미’를 감안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 바로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생일이 5월 5일이란 점이다. 실제 당시 좌익신문에 어린이날 특집 기사와 마르크스 탄생 특집 기사가 나란히 실렸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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