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3

2018.04.11

이슈 | 의협 vs 문재인 케어

문재인 케어, 지난해엔 OK지만 올해는 아냐

강경파 회장 당선된 대한의사협회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하면 파업불사”…정부 “합의 파기 이해 못해”

  • 입력2018-04-10 11:43:5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3월 18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국의사대표자회의’ 참석자들이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동아일보]

    3월 18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국의사대표자회의’ 참석자들이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동아일보]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건강보험(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파업까지 예고했다. 특히 문재인 케어 반대 강경투쟁 노선을 내건 새 회장이 선출되면서 방향이 급선회하고 있다. 의협은 전임 회장 시절 합의한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에도 반대하며 급여화 시점을 늦추지 않으면 총파업까지 불사하겠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급여 항목이 확대되면 의료계 종사자의 생업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의료 서비스 질이 저하될 위험도 있다며 비급여 항목의 전면 급여화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이미 합의까지 한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에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너무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문재인 케어’ 관련 협의를 위해 만난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왼쪽)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 [동아일보]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문재인 케어’ 관련 협의를 위해 만난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왼쪽)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 [동아일보]

    문재인 케어라고 부르지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정권마다 추진하던 사업이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부터 ‘건강보험 중기 보장성 강화 계획 수립’에 나섰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비급여 항목이던 치료 행위를 건강보험이 보장하겠다는 의미다. 급여 항목은 국가가 해당 치료 행위의 가격을 매기고 그 가격의 전액 또는 일부를 병·의원에 지급하는 것을, 비급여 항목은 병원이 자체적으로 가격을 매겨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계획에 따라 특진료, 상급병실료, 간병료 등의 급여화가 추진됐다. 특진료는 ‘병원 선택 진료’로, 실력 있고 경험 많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은 환자가 추가금을 내는 취지로 1991년 도입됐다. 환자가 특진 의사를 선택해 진료 받으면 기본 진료비의 15~50%를 추가로 부담하는 방식이다. 2014년부터 특진 의사 지정 비율을 줄여나가 80%에서 지난해 33%까지 낮아졌다. 올해부터는 아예 특진료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특별히 ‘문재인 케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가 있다. 그간 정부 정책은 비급여 항목 가운데 필요한 것만 급여화하는 방식이었다면, 현 정부는 비급여 항목을 단계적으로 전면 급여화하겠다고 밝힌 것. 지난해 8월 9일 문 대통령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향후 5년간 30조6000억 원을 들여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모든 의학적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에서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재원은 그간 건강보험이 쌓아온 돈으로 충당하고 건강보험료 인상은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건강보험 보장률이 낮은 편이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OECD 건강통계 2017’을 분석한 결과 2016년 기준 한국 경상 의료비 중 공공재원의 지출 비중은 56.4%로 OECD 회원국 평균(72.5%)보다 낮았다. 공공재원은 건강보험 외에도 정부 지원, 산재보험, 장기요양보험 등을 합산한 금액이다. 경상 의료비에서 공공재원의 비중이 한국과 같거나 적은 나라는 라트비아(56.4%), 멕시코(51.7%), 미국(49.1%) 등 3개국이다. 



    당연히 의료 소비자의 부담도 여느 OECD 회원국에 비해 큰 편이었다. 2015년 기준 의료비 가계 직접부담 비중은 36.8%로 OECD 평균(20.3%)보다 약 1.8배 높았다. 한국보다 가계 직접부담 비율이 높은 국가는 라트비아(41.6%), 멕시코(41.4%)뿐이다. 

    정부는 가계의 의료비 부담이 큰 원인을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서 찾고 있다. 2015년 기준 총 의료비는 69조4000억 원. 이 가운데 비급여 의료비는 13조5000억 원으로 전체의 약 20%를 차지했다. 치료와 무관한 미용, 성형, 단순 기능 개선을 제외하고 질병 치료에 필수적인 비급여를 추리면 12조1000억 원 규모다. 게다가 건강보험 적용 항목 일부는 진료비의 20~60%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전체 의료비에서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비율은 62~63%로 낮은 편이다. 정부는 이를 5년 내 7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의사 “의료비 원가는 보상해줘야”

    최대집 제4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이 3월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케어’와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동아일보]

    최대집 제4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이 3월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케어’와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동아일보]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당장 줄어든다는 점만 놓고 보면 당연히 문재인 케어를 시행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의사 사회의 반발은 거세다.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발표한 이후 당시 추무진 의협 회장은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12월에는 의협을 포함한 의사단체 회원 3만여 명(경찰 추산 7000명)이 서울 덕수궁 앞에서 문재인 케어 전면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의사들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지적도 있지만 의사 사회에서도 반대하는 이유가 있다. 현행 건강보험은 의료비 보장비율도 낮지만 의료비 원가보전율도 낮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건강보험 의료행위 유형별 원가 보상 수준’ 자료에 따르면 의료행위 유형에 대한 건강보험 원가 보상 수준은 평균 85%였다. 비급여를 포함할 경우에도 106%로 원가를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상 급여 항목에서 생긴 손실을 비급여 항목으로 메우는 상황인 것. 

    의사들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전에 의료수가를 올려 원가를 보상해달라고 주장한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도 같은 측면에서 문재인 케어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지난해 8월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이 센터장은 “정부가 이번에 의료 보장성 강화를 이야기하는 걸 보고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지금 의료현장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 않나. 그런데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건 전방 병사들이 온몸을 던져 간신히 전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급을 강화할 생각은 않고 ‘돌격 앞으로’만 외치니 그게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흔히 ‘동네 병원’이라 부르는 1차 의료기관에서도 낮은 의료수가 문제가 제기된다. 수가가 낮으니 1차 의료기관에서는 박리다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진료 질도 떨어진다는 것.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6년 OECD 건강통계를 분석해 발표한 ‘한국인의 건강상태와 의료기관 이용’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인당 연간 진찰 건수는 약 6482건으로 OECD 평균인 2385건에 비해 2.7배 많았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주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의료체계 혁신 정책포럼’에서 조비룡 서울대병원 교수도 “1차 의료수가가 낮은 탓에 의료 질 저하, 환자의 불신, 의료전달체계 왜곡 같은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미국은 5구간으로 구분된 진료시간에 따라 수가를 차등 지급하는 데 비해, 한국은 시간과 관계없이 회당 1만4410원(2016년 외래초진 진찰료 기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일부 의료수가 인상에 나서고 있다. 3월 열린 ‘제31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중증외상센터 환자의 특성을 반영한 건강보험수가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외상센터 전담 전문의 인당 인건비 연간 지원액을 기존 1억2000만 원에서 1억4400만 원으로 20% 늘리고 외상센터 중환자실 간호인력도 2배 확충할 예정이다. 

    정부는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면서 의료수가 인상을 통해 의료계에 손실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3월 9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마련한 특별 강연에 나선 손영래 보건복지부 예비급여과장은 “급여수가는 관행적 가격의 70%로 맞추기 때문에 수가 손실분은 30~35%로 예상된다. 급여화를 진행하면서 수가를 인상해 비급여 손실분의 총액을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겠다며, 괜찮다며?

    그럼에도 의협은 일단 문재인 케어만은 저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비급여 항목의 전면 급여화를 받아들일 수 없고, 정부의 수가 인상안에 구체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의협은 문재인 케어의 첫 단추인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부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다. 당초 4월 1일 예정이던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의협 국민건강수호 비상대표위원회(의협 비대위)는 3월 30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급여 기준을 넘어선 추가적 진료는 모두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의료계와 협의도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급여화 시점을 고시했고, 의사가 아닌 방사선사도 초음파 검사를 가능케 해 의료의 질 자체가 저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협은 문재인 케어의 전면 재검토가 없으면 4월 하순 ‘제2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 것이고, 이후에도 정부가 강행하면 전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같은 날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반박했다. 일단 상복부 초음파 검사를 여러 번 반복해도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본인 부담률이 달라지겠지만 불법에 해당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문재인 케어의 신호탄인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 문제는 사실 오래전부터 의사단체와 정부의 논의를 거친 사안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2015년 수립한 ‘2014~2018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 계획’에 따라 2016년 6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상복부 초음파 급여화에 합의했다. 이어 2017년 7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보고 등을 통해 올해 4월 상복부 초음파검사 보험 적용을 알린 바 있다. 하지만 의협은 급여화 닷새 전인 3월 27일 상복부 초음파 고시 철회를 요구했다.

    진료에 제약 생길 수 있어

    한 의사가 상복부 초음파 검사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

    한 의사가 상복부 초음파 검사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

    의협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환자단체 등 시민단체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비판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와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 등이 소속된 ‘전국사회보장기관 노동조합연맹’은 4월 2일 공동성명을 내 의협 비대위의 성명서를 비판했다. 이들은 “의협 비대위의 논리대로라면 건강보험 급여 때문에 일부 의사단체가 필요한 진료를 못 했으므로 현 모든 급여 항목을 비급여화해야 한다. 돈이 없으면 국민은 아파서 죽으라는 말과 같다”고 주장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도 “상복부 초음파 보험 적용은 이미 박근혜 정부 시절 결정된 것이다. 이제 와 철회나 집단행동 운운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의사들은 문재인 케어의 가장 큰 문제점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라고 주장한다. 급여화가 되면 매 의료행위를 심평원이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진료권이 침해된다는 지적이다. 서울 대형병원의 한 전문의는 “통상적인 진료행위가 아닐 경우 보험심사팀의 심의를 받는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통상적 치료만으로 모든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보험 기준에 맞지 않는 약이 치료에 필요한 상황이 종종 생긴다. 환자를 위해 기준에 맞지 않는 치료를 강행하면 심사팀으로부터 경고가 날아온다. 물론 의사들도 논문, 교과서 등을 통해 반박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심사팀의 일이 보험료를 삭감하는 것이라 대부분 반려된다. 그러니 일선 의사들은 ‘비급여의 급여화=진료권 침해’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의를 안 할 수도 없다. 여전히 일부 병·의원이 의료비 부정수급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기 때문. 지난해 심평원이 국회에 제출한 ‘연도별 건강보험 현지조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현지조사를 통해 부당청구가 확인된 요양기관은 714곳이었다. 부당청구 금액은 총 381억 원. 

    이러한 의사들의 불만 사항과 관련해 정부는 심평원의 심사를 완화하고 의료계의 의견을 심사에 반영할 계획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1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관련 제6차 실무협의체’ 논의에서 진료비 청구건을 심사한 심사위원의 실명 공개 추진을 합의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심평원 중앙심사조정위원회에 의료계 추천 인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심사위원의 연임 제한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의협의 파업도 순조롭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병원 중심의 대한병원협회(병협)는 정부와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기 때문. 대형병원 소속 의사들이 파업전선에서 빠지면 의협의 파업 시도가 힘을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의협 관계자는 “병협이 소속 의사들의 파업 참여를 제한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