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0

2018.03.21

황승경의 on the stage

“삐뚤어졌지만 진정성 있는 범죄자”

연극 | ‘미저리’

  • 입력2018-03-20 13: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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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

    [사진 제공·㈜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

    1991년 개봉한 스릴러 영화 ‘미저리’에서 주인공 애니 역을 맡아 열연한 캐시 베이츠(70)의 명연기 덕에 한동안 ‘미저리’는 광적으로 집착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였다. 조 · 단역을 전전했던 베이츠는 ‘미저리’로 출세했지만 광기 어린 애니의 그림자를 벗어내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미저리’는 영화가 개봉하고 24년이 지난 2015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발표됐다. 남자주인공은 영화 ‘다이하드’의 히어로 브루스 윌리스(63)가 맡았다. 윌리스는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영화에서 하차하고 연극 ‘미저리’에 출연했다. 

    원작자 스티븐 킹(71)은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쥔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다. 불우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으로 판타지 세계를 꿈꾸며 습작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허를 찌르는 도전적인 반전과 궁금해서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가 교묘하게 연결돼 있다. 


    [사진 제공·㈜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

    [사진 제공·㈜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

    연극 ‘미저리’의 줄거리는 이렇다. 폴(김상중 · 김승우 · 이건명 분)은 순수한 여인 미저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여주인공 미저리가 사망하는 9부작으로 시리즈 작업을 마친 뒤 그는 3년 동안 매달린 신작소설 ‘조각난 삶’을 탈고했다. 신작 원고를 들고 뉴욕으로 가던 날, 눈보라로 인한 기상악화로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친다. 그리고 나흘 후 그는 애니 집에서 반신불수 몸으로 눈을 뜬다. 심각한 조울증 환자인 애니(길해연 · 이지하 · 고수희 분)는 폴의 극성 팬으로, 폴을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한 채 보살피며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든다. 애니는 폴의 신작 소설 문체와 마침 출간된 ‘미저리’ 마지막 편 줄거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격분하고 폴에게 폭력까지 가한다. 폴은 그녀로부터 벗어나려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폴은 애니가 원하는 결말로 ‘미저리’ 시리즈 10부작을 다시 집필하기에 이른다. 

    TV드라마 연출자였던 황인뢰는 소름 끼치는 긴장감과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안정감을 무대에 표현했다. 회전무대가 장면마다 돌아가며 선보이는 각양각색 이미지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함께 관객을 사로잡는다. 연극에서 애니는 영화처럼 포악한 정신병자 캐릭터가 아니라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관객은 ‘독 안에 든 쥐’인 폴뿐 아니라 ‘미치도록 사랑하기 때문에’ 소유하고 싶은 애니의 왜곡된 정서에도 감정이입할 수 있다. 연극이 끝난 뒤 나오던 한 여성 관객의 말이 귀에 꽂혔다. 



    “그녀는 삐뚤어졌지만 진정성은 있는 범죄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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