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0

2018.03.21

권재현의 심중일언

“남한은 ‘촛불’, 북한은 ‘시장’ 통해 비가역적 변화 겪어”

“통일보다 평화에 무게중심 두고 100년 내다보는 국가대전략 짜자”

  • 입력2018-03-20 13: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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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철학’을 펴낸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이 책의 서평을 최초로 쓴 신문이 경향신문이었고 제일 크게 인터뷰 기사를 낸 신문은 조선일보였습니다. 거기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경향은 제가 조선일보에 고정 칼럼을 쓴다는 이유로 시종일관 저를 보수로 레이블링하면서 제가 촛불혁명에 찬사를 보낸 점에만 초점을 맞추더군요. 반대로 조선은 제가 강조한 촛불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이 북핵 문제에 대한 냉정한 대처를 강조한 부분만 부각하고요.” 

    정치철학자인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가 올해 초 펴낸 ‘국가의 철학’은 그렇게 각 언론의 이념적 입맛에 맞게 요리돼 ‘반쪽짜리 책’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 좌·우파를 동시에 겨냥한 양날의 검이다. 촛불혁명을 한국 사회가 성숙한 공화정으로 가기 위한 결정적 전환점이라 상찬하는 동시에 북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냉철한 국가이성의 필요성도 강조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철학’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 중인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의 일환으로 2016년 4, 5월에 진행한 강연이 토대가 됐다. 그해 2월 출간된 윤 교수의 ‘시장의 철학’ 뒤를 잇는 책으로 시장, 국가, 시민사회에 대한 철학적 성찰 3부작의 허리에 해당한다. 

    강연은 최순실 게이트나 촛불집회가 있기 전에 진행됐다. 그럼에도 윤 교수는 서문의 상당 부분을 촛불에 할애하면서 이승만·박정희 시대 한국이 민권(民權)보다 국권(國權)을 우위에 뒀으나 2016, 2017년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민권이 국권 우위에 서는 비가역적 전환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권의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독점적 폭력의 주체로서 국가의 역할 또한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된다며 양자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상과 당위의 주체로서 순우리말 ‘나라’와 현실과 폭력의 담지자로서 한자어 ‘국가’를 대별시키며 그 둘의 변증법적 통합을 바람직한 국가의 철학으로 규정한 것이다. 

    “촛불시민혁명 때 ‘이게 나라냐’와 ‘나라다운 나라’라는 표현이 등장했죠. 왜 국가 대신 나라라는 말을 썼을까요. 순우리말이기에 국가라는 한자어보다 본원적면서도 심정적 울림이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보다 중립적인 사회과학적 용어가 국가입니다. 국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순적 긴장관계에 있는 2가지 기능을 지닙니다. 하나는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권력주체’라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정당화를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한 발 더 나아가 복리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자를 국권이라 한다면 후자를 민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촛불혁명은 박정희 패러다임에 대한 안티테제”

    인류역사에서 전통적으로 국권이 민권의 우위에 있었다. 그러다 18세기 프랑스대혁명 이후 국권의 정당화를 위해 민권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역시 나라를 세우고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민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국권 우위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이었다. 윤 교수는 이를 ‘박정희 패러다임’이라 불렀다. 

    “촛불시민혁명은 과거 권위주의적인 국가지상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잘못된 국가권력을 인격으로 형성화한 박근혜, 박근혜가 상징하는 반동적인 박정희 패러다임, 박정희 패러다임이 의존하는 권위주의적이고 전통적인 국가이성을 시민이 온몸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민권 중심 시대로의 비가역적 전환이 이뤄졌음을 한국 시민들이 만천하에 공표한 것입니다. 한국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진전이자 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윤 교수는 국가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인간이성의 총화로 ‘국가이성’을 내세워 전체주의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는 비판을 받는 독일 사상가 헤겔의 복권을 시도했다. 또 일본 제국주의에 끼친 헤겔 사상의 부작용을 비판하며 ‘일본 학계의 텐노(天皇)’로 추앙받게 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에 대한 비판도 감행했다. 국권보다 민권을 중시하는 현대 정치사상의 흐름과 다소 동떨어진 시도다. 윤 교수도 이를 인정한다. 이번 책이 니체의 저술 제목을 빌려 ‘반시대적 고찰’에 가깝다고도 했다. 

    “전통적 국가이성의 시대착오적 성격은 인정하되, 아기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다. 민권이 국가 정당화의 원천이라 해서 국권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권이 등장하기 수천 년 전부터 당연시되던 폭력 주체로서 국가의 기능을 과소평가할 경우 큰 낭패를 겪게 됩니다. 그래서 국권과 민권의 변증법적 통합을 강조한 것입니다.” 

    국권과 민권의 변증법적 통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펼친 약육강식의 현실주의와 ‘로마사논고’에서 펼친 공화주의적 이상주의를 결합한 것을 ‘변증법적 국가이성’으로 풀어냈다. 

    “사실 저는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도 권모술수에 물든 정치공학자로 왜소화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군주론에서조차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언급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한 정치지도자가 제대로 된 통치를 하려면 물리력 못지않게 시민들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가 필요하다는 언급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선취한 것입니다. 특히 위정자의 최대 과오는 시민들에게 공포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경멸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한 부분이 의미심장합니다. 박근혜가 정확히 그 함정에 빠져 온 국민의 조롱거리가 된 것입니다.” 

    윤 교수는 또한 3월 26일로 서거 108주기를 맞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야말로 변증법적 국가이성의 모범답안이라고 강조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 중심 대동아공영론이 국권 우위의 국가이성이라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그런 이토에 대한 무력적 응징의 당위성과 한중일 3국의 평화적 공존이란 이상을 함께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치사상의 지평에서 볼 때 이토가 부국강병을 꿈꾼 국권주의자라면 안중근은 국권과 민권의 조화를 통해 정의롭고 평화로운 국가를 지향했습니다. 안중근을 통해 한국민의 자유와 안정을 보존하기 위해 물리적 폭력주체로서 국가의 필요성이 입증되는 동시에, 그를 통해 성립된 대한민국이 경제적 풍요와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정의로운 나라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정당성을 보장받습니다.”

    “북핵은 체제 보장이 아니라 패권 장악이 목표”

    안중근 의사.(왼쪽) 마키아벨리. [동아DB]

    안중근 의사.(왼쪽) 마키아벨리. [동아DB]

    그가 ‘변증법적 국가이성’이라는 반시대적 고찰을 내놓은 배경에는 21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세계 패권국가 자리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는 상황에서 이상주의적 ‘나라’의 담론에만 심취해 현실적인 ‘국가’를 망각할 경우 남북 공멸은 물론, 제3차 세계대전까지 불러올 핵전쟁의 화마(火魔)에 휩싸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저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21세기 신냉전시대가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시진핑, 러시아 푸틴, 일본 아베, 미국 트럼프까지 주변 4강의 지도자가 모두 스트롱맨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노골적으로 국익우선을 내세우며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는 그들의 등장이야말로 폭력 독점 주체로서 국가의 본질을 선명하게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게다가 북한이 핵무장한 채 한반도에서 헤게모니 경쟁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힘에 입각한 전통적 국가이성을 방기할 수는 없습니다.” 

    윤 교수는 특히 북한이 집요하게 핵무장을 하려는 목적이 북한체제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는 진보진영의 주장을 매섭게 비판했다. 북한은 핵을 통해 막판 역전극을 호시탐탐 노리는데도 남한의 경제규모가 북한의 50배가 넘어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다는 식의 생각은 ‘희망 섞인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체제 보장이 목표라면 북한이 저렇게 무리할 전략적 이유가 없습니다. 짧게 봐도 2006년 최초 핵실험을 했을 때 그건 이미 확보됐다고 봐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핵보유국을 상대로 전면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멀리 보면 1994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외과수술적 타격을 검토했지만 수도권에서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판단하에 이를 유보했을 때 이미 대북 군사적 공격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과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에 이어 9번째 핵무장국가가 됐습니다. 더 나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개발한 6번째 전략핵국가가 됐습니다. 미국 당국자들이 노골적으로 얘기하듯 김정은의 목표는 한반도 전체의 헤게모니 장악에 있습니다. 갑의 위치에서 핵이 없는 대한민국을 영원한 을로 놓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착취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국가대전략입니다. 한반도 패권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변증법적 국가이성으로부터 도출되는 대북정책은 어떤 것일까. 촛불혁명을 통해 진정 대한민국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김정은이 패권을 행사하는 한반도의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북한판 국가이성의 발현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국가이성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과거 이승만, 박정희 시대 권위주의적 국가이성을 넘어 깨어 있는 시민의 힘으로 변증법적 국가이성에 추동되는 성숙한 공화국을 향한 약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북한의 국가이성은 김씨 일가에 의한 국가사유화입니다. 물리적으로 그걸 떠받치는 것이 핵무기라면 사상적으로 그걸 떠받치는 것은 유일사상이죠. 북한헌법, 노동당규약, 유일사상 확립 10대 원칙이 3위 일체가 돼 절대자로서 수령의 권력을 대를 이어 충성을 바치자고 이념화한 것이 유일사상입니다. 자, 그렇다면 성숙한 공화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국가이성이 권력의 사유화를 지향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이성에 예속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까요?” 

    여기까지 들으면 윤 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북의 국가이성이 통약 불가능한 상황에서 해답은 어느 한쪽의 멸절이 돼야 하지 않을까. 

    “아닙니다. 그렇게 철저히 국가이성이 다른 남북의 통일을 지향할 게 아니라 장기적인 평화공존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삼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십중팔구 핵전쟁이 될 테고, 남북이 공멸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촛불혁명을 통해 성립한 정통성 있는 민주정부로서 문재인 정부가 전쟁의 가능성을 줄이고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놓쳐선 안 될 국가이성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윤 교수는 남북관계에서 통일국가 수립보다 평화체제 수립을 강조하면서 매우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진보적 사회과학계가 주장하는 ‘분단체제’라는 것이 결국 남과 북이 결손국가라는 점을 가정하고 온전한 국가 모습을 갖춘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얘기인데, 과연 그런 원형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이다. 

    “백낙청 교수가 주창한 분단체제론은 남북이 한 민족, 한 국가로 반만 년을 함께 살다 분단국가로 나뉘었기에 결손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럼 분단되기 전의 원형이 뭘까요?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 1919년 임시정부일까요. ‘임시’가 붙어 있으니 온전한 국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측은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국가의 3요소를 완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1948년 정부 출범을 건국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기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남북의 공통된 원형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남한과 북한 모두 미완으로 출범했지만 저마다 완성된 국가를 이룩했고 1991년 유엔 동시 가입을 통해 이를 인정받았다고 봐야 합니다.”

    “100년 앞까지 내다보는 평화관리 체제”

    윤 교수는 중국의 대만 정책을 예로 들면서 한국 역시 북한을 조급한 통일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선 평화 후 통일’의 100년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경우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전체주의 체제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외면 내지 방기한다는 비판이 대두될 수 있다. 

    “남북이 처한 정치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핵이라는 절대무기로 무장한 북이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의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것은 도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미래는 기본적으로 북한 인민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물론 북한 인민은 아무런 결정권이 없고 수령이 100% 독점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장의 철학’에서 강조했듯이 북한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400개의 상설시장과 5000개에 달하는 장마당이 북한 곳곳에서 작동하면서 북한 인민 8~9할이 배급통제경제가 아닌, 시장과 장마당에서 자체적으로 벌어서 먹고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성숙한 공화정으로 비가역적 진화를 하고 있다면 북한의 경우 시장의 발전이 불가역적 단계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장의 자생적 성장을 도와 시장의 섹터가 확장되면 유일체제가 이완될 것입니다. 시장의 진화와 민주주의 진화는 쌍생아와 같습니다. 시장이 본격화하면 국가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는 시민사회가 생겨나고 민주주의의 맹아가 싹틉니다. 전쟁을 피하면서 평화체제를 관리하다 보면 북한도 체제 안정 속에서 정치적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입니다.” 

    그는 그 연장선상에서 4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이 결정되더라도 현금이나 쌀을 통한 지원은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정권이 이를 통해 배급통제경제를 복원하려고 할 경우 북한 시장과 장마당이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인문강좌 특강을 할 때 대북정책에 대한 비책이 있느냐고 해서 ‘한국 사람들은 열정이 넘치는 것은 좋은데 너무 조급하다. 남북문제는 중국처럼 100년 단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만장일치로 폭소가 터지더군요. 농담이 아니라 진지한 발언이었기에 제가 다 놀랐습니다. 우리가 중국에게서 배워야 할 확실한 한 가지는 역사를 길게 보는 것입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무력 충돌할 군사력이 안 되기 때문에 대만과 통일을 100년 뒤로 잡고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가 남북 분단 정부 수립 70주년인데 우리도 중국처럼 70년 앞, 100년 앞까지를 내다보는 유장한 호흡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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