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5

2017.11.29

인터뷰

“봉만대가 죽으면 에로도 죽는다”

19금 영화 은퇴 선언한 ‘에로영화의 거장’ 봉만대 감독

  • 입력2017-11-28 17: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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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계에서 ‘봉만대’라는 이름은 하나의 인장과도 같다. 관객은 그 ‘브랜드’만 보고도 영화 분위기를 대략 짐작한다. 2003년 봉만대 감독(사진)이 첫 극장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맛섹사)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 그랬다. 당시 봉 감독은 이미 ‘에로비디오업계’에서 장편영화를 15편이나 선보인 스타였다. 그 경력을 바탕으로 ‘메이저 리그’에 등판해 처음 선보인 작품이 ‘맛섹사’다. 이 영화를 보고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이런 리뷰를 썼다.

    ‘많은 관객이 선입견을 벗고 이 영화를 본다면 국내에서 에로비디오를 찍었다는 경력이 프랑스 유학을 갔다 왔다는 경력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나의 확신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의 전작 비디오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즐겁다.’ 

    봉 감독은 그런 존재다. 한국 영화계에서 매우 드문 ‘양지의 에로영화 감독’이면서, 동시에 에로 분야가 주 무대여도 얼마든지 ‘예술가’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산증인이다. 그의 마니아들은 봉 감독이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 에로업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카메라워크를 선보였다고 증언하곤 한다. 당시 청년층에서 큰 인기를 끌던 왕자웨이 감독을 연상케 하는 화면을 에로 비디오에 담아냈다는 것이다. 

    봉 감독이 한일 합작 비디오영화 ‘도쿄 섹스피아’(1999)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쉼 없이 작품활동을 해온 것도 그의 ‘실력’을 입증한다. 언제부턴가 그의 이름 앞에는 ‘에로영화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봉 감독에 따르면 그에게 이런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임권택 감독이다. TV에서 우연히 봉 감독 영화를 접하고 끝까지 흥미롭게 봤다면서 “당신은 에로 거장이다. 그 길로 계속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봉 감독은 이 이야기를 전하며 “고등학생 시절 연극대회에서 연기상을 받은 일이 있다. 그때 무뚝뚝한 담임선생님이 나를 등 뒤에서 툭 치고 갔는데, 임 감독님 말씀을 듣는 순간 그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쑥스러운 웃음이 얼굴에 흘러갔다. 

    그렇다. 그는 에로영화 감독으로 잔뼈가 굵었고, 우리 영화계의 ‘거목’으로부터 ‘거장’이라는 찬사까지 받은 인물이다. 그런데, 왜? 바로 이 질문을 하려고 그와 마주 앉은 참이었다. 봉 감독이 최근 돌연 ‘19금 영화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니들이 에로를 알아?!”

    봉만대 감독의 16번째 작품이자 극장 영화 데뷔작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포스터.

    봉만대 감독의 16번째 작품이자 극장 영화 데뷔작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포스터.

    봉 감독이 지난 몇 년간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진행자 또는 패널로 출연하며 ‘방송 외도’를 하긴 했다. 최근 TV 프로그램을 통해 생애 최초의 ‘전체관람가’ 영화 ‘양양’을 선보이기도 했다. 뇌졸중에 걸린 아버지(임하룡 분)와 그를 돌보기 부담스러워하는 두 아들(권오중·기태영 분) 사이의 갈등을 잔잔히 그려낸 이 작품은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에로영화 은퇴’까지 선언해야 하는 걸까. 봉 감독이 2013년 개봉작 ‘아티스트 봉만대’에서 에로영화 감독으로서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냈던 터라 궁금증이 더 컸다. 

    에로영화 제작 현장을 무대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에서 봉 감독은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그가 연기한 인물은 ‘에로영화 감독 봉만대’다. 극중 ‘봉만대’는 에로영화라면 스토리고 뭐고 ‘살 냄새’만 풍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제작자와 감독을 무시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고 결국 ‘봉만대’는 ‘여배우 가슴을 좀 더 클로즈업하라’ ‘자세를 이렇게 좀 바꾸라’는 식으로 사사건건 작품에 개입하는 제작자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다. 

    “그렇게 벗겨대니까 좋지? 그렇게 하니까 한국 영화가 X 같아지는 거야. 에로영화 족보도 모르는 새끼들이 벗겨대니까 다 싸구려 콘텐츠만 만들어내는 거라고. 니들이 에로를 알아? 많이 벗겨서 잘 먹고 잘살아라. XX놈들아.” 

    이 절규는 열악한 한국 영화 환경에서 에로영화의 또 다른 길을 개척하겠다고 고군분투했던 ‘스크린 밖 봉만대’의 목소리처럼 들려 당시 화제가 됐다. ‘아티스트 봉만대’ 개봉 뒤 과거 봉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제작자가 그를 찾아와 “그때는 미안했다”고 사과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봉 감독은 “에로는 포르노가 아니다. 에로영화는 사람 사이의 사랑을 다루는 장르고, 영화 전반에 에로틱한 분위기가 흘러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청년 시절부터 줄곧 에로영화를 찍은 건 “사랑과 섹스만큼 흥미로운 주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맛섹사’ 개봉 당시 “이제는 에로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자신의 이름 앞에 ‘아티스트’를 붙인 ‘아티스트 봉만대’를 통해 드러내놓고 에로영화의 명예 회복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도전은 역설적으로 봉 감독을 현실의 벽 앞에 무릎 꿇게 하고 말았다. 

    “지금도 저는 남녀가 같이 손잡고 볼 수 있는 에로영화, 여배우를 희생시키지 않는 에로영화를 찍고 싶어요. 하지만 영화는 욕심으로, 용기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죠.” 

    ‘왜 에로영화 은퇴를 선언했느냐’는 질문에 그가 내놓은 답이다. 잠시 분위기가 무거워지려 할 때 그가 다시 말했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에로영화의 거장’이 아니라 ‘에로영화의 꼬장’이 돼버리고 말겠더라고요.” 

    에로영화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시대, 나아가 에로영화 자체가 사랑받지 못하는 시대에 대한 자조가 묻어났다. 다시 ‘아티스트 봉만대’로 돌아가자. 한국 에로영화계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이 작품은 당시 제법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명 평론가들이 별점 네 개를 줬고, 언론 인터뷰 요청도 쏟아졌다. 봉 감독은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면 누드 화보를 공개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들떴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한국 영화계의 또 다른 거장이자 성이 똑같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관객 900만 명을 돌파하며 폭죽을 터뜨리던 때, ‘아티스트 봉만대’는 관객 수 1만4000명대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스크린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봉만대 감독(오른쪽)이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사진 제공·골든타이드픽처스]

    봉만대 감독(오른쪽)이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사진 제공·골든타이드픽처스]

    풀 한 포기 없는 凍土, 말라버린 우물

    “지금도 저는 남녀가 같이 
 손잡고 볼 수 있는 에로영화, 여배우를 
 희생시키지 않는 에로영화를 찍고 싶어요. 
 하지만 영화는 욕심으로, 용기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죠.”[조영철 기자]

    “지금도 저는 남녀가 같이 손잡고 볼 수 있는 에로영화, 여배우를 희생시키지 않는 에로영화를 찍고 싶어요. 하지만 영화는 욕심으로, 용기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죠.”[조영철 기자]

    “기자고 평론가고 영화를 본 사람은 하나같이 재미있다고 했는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호평 일색이었는데 왜 다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걸까…. 한동안 그런 생각에 빠져 힘들었어요. 극복이 잘 안 됐죠. 사람들이 극장에서 볼 영화와 작은 화면으로 볼 영화를 구분하고 있다는 걸,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어도 관객과 만나기 어렵다는 걸 실감하게 됐어요.” 

    우리나라 관객의 영화 편향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멜로’ 장르가 사라진 한국 영화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평론가도 적잖다. 관객이 스케일 큰 영화에만 몰리는 바람에 멜로영화 생태계가 사실상 무너졌다는 것이다. 할리우드뿐 아니라 유럽, 일본, 대만 등 해외 각국에서 여전히 멜로영화가 활발히 제작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로영화를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더 척박할지는 미뤄 짐작이 갔다. 봉 감독은 “과거 나와 함께 에로영화를 만들던 제작진이 생계 문제로 하나둘 영화계를 떠났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조감독도 결혼하고는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좋은 스태프가 없으면 좋은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활기가 사라진 에로영화계에서 괜찮은 배우를 찾기도 어렵다고 한다. 봉 감독은 “나는 에로 감독은 있어도 에로 배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번 에로영화에 출연했다고 늘 비슷한 연기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으면서 에로영화에 대한 편견이 심화되니, 에로영화 출연이 배우한테는 일종의 낙인이 된다. 연기가 되는 배우는 에로영화 출연을 꺼리고, 그러면 영화 수준이 떨어진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알고 보니 그는 지난 2년여간 한 작품을 준비했다고 한다. 장르는 물론 에로였다. ‘아티스트 봉만대’의 상처를 추스르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시나리오를 든 채 많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열심히 두드린 문 가운데 어느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 앞에 놓인 게 문이 아니라 벽이더라”며, 그는 쓸쓸히 웃었다. 

    “에로영화를 제작할 기반 자체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는 거죠. 이럴 때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나 싶어요.”

    봉 감독의 말이다. ‘아티스트 봉만대’의 흥행 실패와 새로운 프로젝트의 좌절 사이에, 그는 MBC ‘라디오스타’ 등 여러 연예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에는 이무영 감독 영화 ‘한강블루스’에서 주연을 맡아 부산국제영화제에 배우 자격으로 초청받기도 했다. 문득 자신이 여전히 에로영화 감독이 맞나 자문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19금 영화 은퇴 선언’이 나왔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쩌면 이번 은퇴 선언도 ‘아티스트 봉만대’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에로영화 감독’이라는 자의식의 표현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서 은퇴를 하려면 최소한 그 순간까지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니 말이다. 

    “‘양양’을 찍으면서 저 자신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한 거 같아요. 이 영화 주인공이 늙고 병들어 자식들의 짐이 돼버린 아버지잖아요. 그 모습을 연기하는 임하룡 선배님을 보며 처음엔 우리 어머니나 주변 어르신을 떠올렸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바로 제 모습이 그 안에 비치더라고요. 나는 지금 영화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버려진 것일까…. 이렇게 지내다 버려지고 말 것인가….” 

    그렇다고 ‘양양’이 내내 무겁고 진중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일단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살짝 비튼 ‘양양’이라는 제목부터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만든다. 한여름 성수기가 지나고 인적이 뜸해진 강원 양양군 한 해변에 무료하게 앉아 있던 세 부자가, 스쿠버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 지나가자 동시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피식 웃음이 난다. 봉 감독은 “원래 내 스타일 대로 하면 그 대목에 좀 더 힘을 줬어야 하는데” 하더니 “이번엔 전체관람가니까”라면서 웃어 보였다.


    봉만대 감독이 처음 연출한 ‘전체관람가’ 영화 ‘양양’.

    봉만대 감독이 처음 연출한 ‘전체관람가’ 영화 ‘양양’.

    “에로는 결국 내가 돌아올 자리”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이렇게 ‘봉만대’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사랑, 달리 말하면 에로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다. 관객과 영화계가 지금 그의 에로를 원하지 않는다면 ‘잠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걸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것이 ‘19금 영화 은퇴 선언’의 전말인 셈이다. 

    지금 봉 감독은 ‘순수’를 콘셉트로 한 영화 제작을 추진 중이다. 이르면 내년 극장 개봉을 목표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오늘도 인터뷰를 마치면 제작사에 갈 계획”이라며 “이번 영화가 내가 더 나이 들기 전 첫사랑의 떨림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설렌다”고 했다. ‘양양’을 통해 대중에게 ‘봉만대’가 그릴 수 있는 세계의 또 다른 모습을 선보였듯, 새 작품이 ‘봉만대 영화’의 지평을 좀 더 넓히는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그렇게 더 강하고 완숙해져 사람들이 ‘봉만대 에로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는 ‘에로영화 감독 은퇴 선언’을 뒤로하고 자신의 고향에 ‘컴백’할 계획이다. 그때는 지금 너무 단단해 도무지 뚫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영화계의 여러 벽을 하나하나 부수고 들어가 ‘에로균’을 퍼뜨리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봉 감독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동토(凍土), 말라버린 우물’이 됐다고 한탄한 우리 에로영화계에 새로운 싹이 트고 물길이 생길 테다. 그때 탄생할 ‘진짜 멋진 에로’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도, 봉 감독이 지금 준비하는 작품이 멋지게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봉 감독이 미리 써둔 묘비명은 ‘봉만대가 죽었다. 에로도 죽었다’이다.


    追伸

    봉만대 감독은 ‘청룡의 남자’다. 2014년부터 4년째 청룡영화상 핸드프린팅 행사 사회를 맡았다. 1994년 이후 줄곧 청룡영화상 공식 행사를 진행해온 배우 김혜수만큼은 아니어도 영화계의 ‘대표 얼굴’ 중 한 명인 게 분명하다. 그의 비주류 이력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스스로를 ‘B급’이라고 말하는 봉 감독은 요즘 한국 영화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졸’ 감독이다. ‘돌아온 손오공’ 같은 어린이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이른바 영화계의 ‘밑바닥’에서 비디오영화 감독을 거쳐 주류 영화계에 데뷔하기까지 그를 이끌어온 건 늘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의 에로영화가 남다른 것도 막무가내로 ‘벗기는’ 영화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티스트 봉만대’ 시사회에 참석하고, 이준익 감독이 “봉만대 감독은 스토리가 좋다”고 칭찬하는 등 한국 영화계 대표 감독들이 그를 인정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는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나는 창작자다.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갖고 대중과 소통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봉 감독이 언젠가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 중에는 유년기의 강렬한 기억에 대한 것도 있다. 광주 태생인 그가 1980년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경험한 거대한 폭력과 그 앞에 선 개인의 비참함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후 학교에 갔을 때 교실에 흐르던 공기를 기억한다고 했다. 학생들 앞에 서서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수업을 진행해야 했던 교사들의 표정을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봉 감독에 따르면 “수문만 열어주면 콸콸 쏟아져나갈 것처럼 내 안에 가득 쌓여 있는 기억들”이다. 그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드는 게 그의 필생의 소망이다. 봉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말레나’를 좋아한다. 내 영화적 완성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뒤 언젠가 반드시 ‘5·18’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가 5·18영화로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감독으로서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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