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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有感

남한산성의 비극

남한산성의 비극

영화 ‘남한산성’은 균형이 잘 잡혔다.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와 주화파 어느 쪽도 소홀함이 없이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본 사람은 저마다 유리한 해석을 내놓기 바쁘다. 

하지만 전지적 시점에서 그 시대를 이해하게 된 현 관객들이 공감하는 바는 ‘주화파 최명길의 협상 전략이 옳았다’일 것이다. 물론 여기서 옳다는 말은 당시 상황에 한정해 써야겠지만. 척화파 김상헌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저 애처로운 저항이었다는 동정에 그칠 뿐이다. 김상헌이 내세운 숭명반청(崇明反淸)의 명분은 500년 가까이 흐른 현 시점에선 아무 의미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당시에는 무척 심각했을 이 명분은 지금 보면 ‘나는 살고 싶다’는 인조의 솔직한 말에 압도된다. 그때 민초들도 인조와 똑같이 ‘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최명길은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이념적 명분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리라.

임금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를 해야 얻을 수 있던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하지만 살아 있어야 진정한 평화도 찾을 수 있다. 

임금의 존엄이란 명분을 내세워 병사들의 방한용 가마니를 거둬 말 먹이로 쓰고, 결국 식량이 부족해져 말을 잡아먹고야 마는 아이러니한 현실은 당시 사람들만의 어리석음은 아닐 테다.



적어도 국제관계에서 명분은 실리를 포장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게 판단 기준이 돼선 안 된다는 것. 실리만 약삭빠르게 쫓으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힘과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에 저촉되는 명분이나 허세는 과감히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영화 ‘남한산성’의 교훈을 필자는 이렇게 새겼다.








주간동아 2017.10.18 1109호 (p6~6)

  • 서정보 편집장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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