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7

2017.09.27

김민경의 미식세계

가을에 살 오르는 미꾸라지, 추어(鰍魚)로 격상

지역 따라 손맛 따라 다른 추어탕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9-25 17: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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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서른 살이 넘어 처음 추어탕 맛을 봤다. 이토록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보낸 30년 세월이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갈아 넣은 국이라기에 삐죽삐죽 거슬리는 건더기가 가득할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랐다. 구수하고 고소하며 시원한 추어탕은 지금까지도 나의 기호 음식 ‘넘버원’이다.

    미꾸라지는 미끈미끈해 붙은 이름이다. 잡으면 손안에서 쏙쏙 빠져나가 ‘법꾸라지’(법률 미꾸라지) 같은 오명의 신조어도 생겼지만 영양과 맛, 가격 면에서 보자면 이만큼 알찬 물고기도 없다. 오죽하면 논두렁에 사는 물고기를 가을을 대표한다는 뜻의 ‘추어’라는 이름으로 격상해 불렀을까. 동면을 하는 미꾸라지는 늦여름부터 차곡차곡 살을 찌우기 시작한다.

    진흙 바닥이나 흐름이 빠르지 않은 민물에 사는 미꾸라지는 손질을 잘해야 한다. 굵은소금을 뿌려 미끈거리는 점액질을 없애고 해감시킨다. 밀가루나 된장으로 바락바락 주물러 씻는 경우도 있다. 잘 씻은 미꾸라지는 반짝반짝 윤기가 난다.

    팔팔 끓는 물에 미꾸라지를 넣고 푹 끓인다. 미꾸라지는 크기가 작지만 1시간가량 삶아야 살이 무르게 익는다. 삶은 미꾸라지는 곱게 간다. 간 것을 체에 밭치거나 미꾸라지 삶은 물을 부어가며 굵은 뼈만 가라앉혀 웃물을 거르면 추어탕의 밑국물 준비가 끝난다.

    경상도나 전라도에서는 밑국물에 주로 된장을 풀고 조선간장 또는 액젓으로 간한다. 먹을 때는 들깻가루를 넣거나 취향에 따라 향이 강한 조핏가루(산초  ·  제피)를 솔솔 뿌리기도 한다. 원주 등 강원도에서는 고추장을 풀어 칼칼한 맛을 낸다. 서울과 경기지역에서는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째로 넣는 대신 소의 양지나 뼈로 만든 육수에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게 끓인다.



    부재료는 지역을 떠나 집집마다 다르다. 가장 많이 넣는 것이 시래기와 우거지다. 걸쭉하고 구수한 국물에 생 채소를 넣는 것보다 씹는 맛이 좋고, 마른 채소에서 우러나는 향이 국물과도 잘 어울린다. 말린 고사리나 토란대를 넣기도 하고, 먹기 전 숙주나 깻잎을 넣어 한소끔 끓여 내는 곳도 있다. 통추어탕은 국물이 맑아 유부, 두부, 버섯, 호박, 달걀처럼 덩어리 재료를 많이 곁들이는 편이다.

    사람마다 먹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다진 마늘, 송송 썬 청양고추, 조핏가루, 들깻가루, 후춧가루, 부추 같은 향신 재료는 입맛에 따라 넣어 먹는다. 깍두기나 배추김치를 풍덩 담가 먹기도 하고, 건더기부터 몽땅 건져 먹은 다음 국물에 여러 가지 양념을 풀어 밥을 말아 훌훌 먹기도 한다. 추어탕은 국물이 걸쭉해 쉽게 식지 않는 데다 대개 뚝배기에 담아주니 후후 불며 조심스레 먹느라 분주하다. 맵지도 않은 음식 한 그릇 먹었을 뿐인데 콧잔등에 땀이 송송 맺힌다.

    추어탕이 기력 회복에 좋다지만 무더위에 보양식으로 먹기엔 올여름이 너무 뜨거웠다. 게다가 국내산 미꾸라지가 귀해 일 년 내내 일정하게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단다. 미꾸라지와 닮았지만 몸이 통통하고 맛이 훨씬 고소한 토종 미꾸리는 더욱 찾기 어렵다. 그나마 여름 끝자락부터 가을까지 풍성하게 나온다고 하니 남도식, 서울식, 원주식 골고루 맛보며 가을 보신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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