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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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주취자 (술에 취한 사람) 대하려면 마음에 굳은살 박여야”

경찰 인트라넷에 박 순경 모금 진행한 서울 연신내지구대장 이지은 경정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8-25 1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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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시간도 되지 않아 모금액이 1억4000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8월 16일 박모(33) 순경의 딱한 사연을 경찰 인트라넷을 통해 알리고 모금을 진행한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신내지구대장 이지은 경정(사진)의 말이다. 이 경정이 나선 덕에 박 순경은 소송으로 지게 된 빚을 털어내고 전국 동료 경찰들로부터 위로도 받을 수 있었다. 23일 이 경정을 연신내지구대에서 만나 모금을 시작한 이유를 물었다.



    “공무집행 중 사건에 순경 혼자 고군분투”

    1월 부임했다. 박 순경 사건이 지난해 7월 일어났으니, 그의 사정을 처음에는 잘 몰랐을 것 같다. 어떻게 알고 박 순경을 돕게 됐나.
    “부임 당시 박 순경은 한창 합의금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간혹 기운이 없어 보였다. 다른 직원들에게 사정을 물어 (소송에 대해) 알게 됐다. 그제야 박 순경의 행동이 이해됐다. 평소에는 적극적이고 일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박 순경이지만 주취자(술 냄새를 풍기며 지구대로 온 사람들)를 대할 때마다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각에서는 박 순경이 피해자를 추가로 폭행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있다.
    “판결문에 나와 있는 대로 목을 한 번 밀친 것 외 추가 폭행은 없었다.”



    당시 피해자와 합의는 어느 정도 진행됐었나.
    “박 순경이 변호사 없이 혼자 합의를 진행 중이었다. 빤한 순경 월급으로 합의금 몇천만 원을 마련하려다 보니 변호사 선임은 어림없었을 것이다. 사정이 딱해 박 순경에게 지인 가운데 판사 출신인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고맙게도 변호사가 박 순경의 사정을 듣고 무료 변론을 해주기로 했다.”

    피해자 측이 합의금을 계속 올렸다고 들었다.
    “합의가 안 되면 박 순경이 직업을 잃게 될 것을 알고 피해자 측에서 계속 합의금을 올리지 않았나 싶다. 판결 일주일 전이 박 순경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피해자 측이 갑자기 합의금을 1000만 원이나 올려버렸다. 다행히 내가 모아놓은 돈을 빌려줘 급한 불은 껐다.”

    1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놓기 어려웠을 텐데.
    “2년 차 신임 순경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공무집행 중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지만 경찰 내 지원 제도가 확립되지 않아 박 순경 혼자 고군분투했다. 만약 합의가 안 돼 형사처분을 받고 경찰직을 잃으면 평생 경찰조직에 환멸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경찰 인트라넷에 박 순경의 사연을 올리고 모금을 진행한 것도 이런 마음에서다.”

    모금 반응은 어땠나.
    “8월 16일 저녁 7시에 글을 올렸다. 큰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다음 날 아침 출근해 인트라넷을 살펴보니 댓글이 2000개 가까이 달려 있었다. 댓글 대부분이 ‘◯◯아 힘내’ ‘이번 기회로 많이 배우고 멋진 경찰 되자’ 등 박 순경을 향한 위로와 응원이었다. 댓글만큼이나 모금도 빠르게 진행됐다. 18일 오후 3시에 벌써 1억4000여만 원이 모였다. 더 큰 금액이 모이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인트라넷에 모금 종료 공지를 올렸다. 모금은 끝났지만 아직도 개인적으로 박 순경을 돕고 싶다며 전화가 오기도 하고, 지구대에 직접 찾아와 돈을 주고 가는 분들도 있다.”

    박 순경도 큰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얼마 전에는 경우회(경찰 퇴직자 모임)가 우리 지구대를 방문했다. 경찰에 몸담았던 분들이 박 순경의 사정에 공감하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자 박 순경도 과거에 비해 기운을 많이 찾은 것 같다.”

    박 순경 사례에 경찰들이 이렇게 공감을 표하는 것을 보면 주취자 때문에 고통받는 경찰이 그만큼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지구대 등 대민 접촉이 많은 부서에서는 항상 주취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일단 술에 취한 상태라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체포된 주취자가 다치기라도 하면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실제로 유치장 의자에서 자다 주취자가 떨어져 다치면 그것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처리할 사건이 많은데도 수시로 주취자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등 인적 낭비가 크다.”



    “제복 열정 무너뜨리는 주취자들”

    취객이 폭언이나 위협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나도 처음 경찰이 됐을 때 가장 놀랐던 게 주취자의 폭언이었다. 특히 주취자는 여경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술에 취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욕설에 화가 나거나 협박에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지금이야 마음에 굳은살이 박여 주취자의 폭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지만, 경찰 초임 시절에는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다.”

    주취자가 경찰에게 위협을 가해도 공무집행방해죄 적용이 어렵나.
    “주취자가 경찰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흉기로 위협하는 등 심한 경우가 아니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기 어렵다. 현장에서는 주취자가 난동을 부려도 어쩔 수 없이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정은 “이제 막 경찰이 된 초임 경찰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주취자를 다루는 일”이라고 말했다.

    “초임 경찰은 대부분 국민의 안전을 위해 범죄와 싸우겠다는 신념을 갖고 제복을 입는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많이 맞닥뜨리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주취자를 상대하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한 사람과 승강이를 하다 보면 처음의 열정은 사라진다. 경찰이 힘들고 답답한 조직으로 느껴질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 경정은 과거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에서 근무하던 시절 1인 시위로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대구지방검찰청 한 검사가 경찰에 수사 축소 지시를 하면서 폭언 등 모욕적 언사를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 간부가 해당 검사를 고소했지만, 검사가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아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이 경정(당시 경감)은 휴가를 내고 대구지검 서부 지청 앞에서 선글라스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1인 시위를 벌여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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