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0

2017.08.09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삶의 여정과 닮은 곡선

한 걸음 물러나야 보이는 전체 리듬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입력2017-08-07 17: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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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여행 갔던 경남 통영에서 일행 모두가 가장 좋았다고 손꼽은 데가 미륵산 전망대다. 바람에 흔들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으로 올라가는 재미뿐 아니라 하늘, 바다, 섬이 어우러진 풍경에 감동이 몰려오는 곳이었다. 케이블카 도착 지점에서 10여 분 걸어 정상에 다다르자 숨이 차올라 헉헉대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탁 트인 사방은 하늘과 바다로 가득했다. 흰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푸른 하늘 아래 잔잔한 파도가 이는 쪽빛 바다가 있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선 위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초록의 섬들이 보였다. 미륵산 줄기가 굽이굽이 흘려내려 바다로 이어져 역동적인 가로선이 펼쳐졌다.

    산과 섬이 그리는 곡선이 내려가는 지점에는 긴 꼬리를 남기며 지나가는 큰 배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갈 길을 가는 작은 고깃배, 그리고 산 아래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이 자연이 그리는 거대한 리듬에서 어울리고 있었다. ‘흐르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rhythmos’에서 유래한 ‘리듬(rhythm)’은 애써 꾸미지 않고 순리에 맞게 저절로 이뤄진 자연이 그리는 파동과 닮았다. 올라가는 선이 있으면 내려가는 선이 있기 마련이다.



    음악이 그리는 리듬의 곡선

    자연의 리듬처럼 인간이 창조하는 음악의 리듬도 높음과 낮음의 반복으로 이뤄진다. 소리는 공기와 같은 유체에서 압력의 높고 낮음이 진동하면서 전파되는 파동(출처 : 물리학백과)이다. 이러한 소리의 파동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디자인한 엽서가 있다. 영국 디자인 회사 스튜디오 아웃풋(Studio Outfoot)이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 행사를 홍보하고자 제작한 소리 파동 엽서가 그것이다.



    공연에서 연주할 음악의 어느 한 부분을 분석해 색상과 파동 모양으로 바꿨다. 음악의 리듬이 제각각 선의 리듬으로 탈바꿈해 가로 곡선을 그린다. 어떤 선은 올라가고 내려가는 깊이의 변화가 크고, 어떤 선은 변화가 완만하다. 또 어떤 선은 어우러지는 다른 파동과 모양의 차이가 크고, 어떤 선은 규칙적인 패턴을 가진다. 여기에 차갑고 따뜻한 색의 온도 및 밝기의 대비 정도가 더해져 선이 표현하는 음악의 내용이 달라진다. 콘서트에 가기 전 설레 하는 음악 애호가들이 각각의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공감각적 엽서를 본다면 흥미와 기대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다.

    독일 펩시콜라가 제작한 3편의 광고 시리즈(광고대행사 BBDO 제작·2007년 발표)는 자연이 그리는 가로 곡선을 이용했다. 광고 이미지의 장대한 자연 풍경이 위쪽은 붉은색, 아래쪽은 푸른색으로 덮여 있고 그 사이를 흰색 선이 물결을 그리며 가로지른다. 붉은색, 흰색, 푸른색의 동그란 펩시콜라 심벌마크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높은 산 오르려면 낮은 계곡에도 머물러야

    놀랄 정도로 펩시콜라 심벌마크를 닮은 자연 풍경에 압도될 무렵 아주 작은 점 같은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깎아지른 듯한 높은 설산에서 스키 타는 사람, 하늘을 가린 절벽에 매달려 등반하는 사람, 세상을 삼킬 만큼 높은 파도 사이를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다. 광고의 오른쪽 아래 구석에는 ‘dare for more(더 큰 꿈을 가져라)’라는 카피 한 줄이 자리한다. 조그마한 몸으로 당당하게 자신만의 리듬을 창조하는 사람들, 역동적인 대자연의 리듬을 타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자연이 만드는 선은 고요한 가운데 끊임없이 움직이며 세계를 창조하는 정중동(靜中動)의 리듬이다. 전체 리듬의 모양은 한 걸음 물러나야 비로소 보인다. 좁은 시야에서는 눈앞의 것 하나만 보이지만 넓은 시야로 보면 하늘, 바다, 사람들의 높고 낮음이 조화로운 흐름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저서 ‘인간의 품격’에서 유명 인사들의 삶이 ‘고양된 산을 오르기 위해 겸양의 계곡으로 내려가야 했다’며 잘 올라가려면 내려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풀이한다.

    자연의 선이 내려간 지점에서 올라가고 그 지점에서 다시 내려가며 리듬을 그리듯, 삶의 리듬도 낮은 곳에서 고요히 머무르는 인고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어느 순간 저절로 올라가는 선이 시작된다. 다사다난 했던 하루의 끝,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고 올라갈 순간을 위해 고요함 속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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