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5

2009.05.12

우아한 와인 뒤 추악한 거래의 진실

‘와인 정치학’

  • 왕상한 서강대 법학부 교수 shwang@sogang.ac.kr

    입력2009-05-08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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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와인 뒤 추악한 거래의 진실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 책보세 펴냄/ 280쪽/ 1만3900원

    국내 한 연구소가 최근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을 대상으로 와인에 대해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한 것이 있다. 와인 지식의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95%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와인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84%나 됐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시는 것이 술인데, 술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이유가 뭘까.

    ‘언제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물음에 33.9%가 ‘함께 식사하는 사람에게서 와인을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은 ‘와인 맛과 가격을 구분하지 못할 때(25.7%)’ ‘상대방이 말하는 와인 용어를 모를 때(20.5%)’ ‘와인 관련 테이블 매너를 잘 모를 때(3.7.%)’ 순이었다. 요컨대 요즘 사회생활에서 와인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와인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리라.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주위를 보면 와인 관련 책이 무수히 많다. ‘와인 바이블’ ‘와인 가이드’ ‘와인과 밥상’ ‘와인의 세계’ ‘엔조이 와인’ ‘와인 노트’ ‘와인 즐기기’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 와인 열풍을 몰고 와 양국에서 드라마로까지 제작됐거나 제작 예정인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등. 와인 서적은 대부분 와인에 대한 상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색다른 와인 책이 나왔다.

    가장 우수한 포도재배 지역은 어떻게 결정될까. 사회는 와인에 오명과 찬사 중 어느 것을 선사할까. 소비자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와인과 새로운 와인 상품을 어떻게 구매할 수 있을까. 와인 산업이 주장하는 것처럼 와인은 양조장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연구실에서 만들어져 반응집단을 통해 선별되는 것일까.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와인학을 가르치는 타일러 콜만의 ‘와인 정치학’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와인은 ‘정치적 결정’에 따라 저렴하게 또는 비싸게 팔린다. 와인 평론가들이 어떤 점수를 매기느냐가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품질도 마찬가지. 원산지, 포도 품종에 따라 등급과 가격이 결정된다. 같은 원산지에서도 정치적 결정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고, 그해 수확한 포도가 많고 적음에 따라 최고급 와인이라도 그 양을 조절하기 위해 증류 처리된다. 이 모든 것이 정치적 메커니즘에 따라 와인의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다.



    ‘와인 정치학’은 화려한 이미지에 가려진 와인산업의 그늘을 조명한다. 사람들이 어떤 와인을 구입하고,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고, 라벨에 무엇을 적는지 등 이 책은 와인산업의 이면을 보여주고자 프랑스와 미국 와인의 역사, 재배업자와 중개상인의 헤게모니 쟁탈전, 주류법 등 법령 제정에 관한 정치적 문제와 미국과 프랑스의 문화 배경을 바탕으로 상호 비교하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프랑스 와인산업이 처한 위기를 살펴보고, 미국에서 원하는 와인을 쉽게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치적 결정의 문제점을 분석했다. 이를 토대로 ‘통제’의 문제, 예컨대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평론가와 와인 제조업자, 새로운 기술력 등이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동시에 소매상점에서 소비자들의 선택, 토양, 와인 제조업자, 평가집단 등에 미치는 영향력도 살펴본다.

    최근 ‘천연’ 와인 제조와 관련해 제조업자들이 환경론자들과 논쟁하고, 마케팅 연구와 신념의 조화로 더욱 새롭고 자연친화적인 농법을 시도하는 상황도 담아냈다. 재배업자와 중개상인에 의해 정해지는 와인의 등급제도, 와인 평론가에 의해 판매가 좌우되는 마케팅 메커니즘 등 와인 라벨 이면의 역학관계가 흥미롭다. 그동안 혀로만 즐기던 와인에 대해 그 와인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어떤 정치적 메커니즘이 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적인 관심과 끊임없는 칭송에도 와인업계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로버트 파커. 파산 직전의 와이너리들을 구했고, 와인 생산자를 백만장자로 만들었으며, 무명의 와인을 인기 있는 소장품으로 만든 로버트 파커를 이 책이 잘근잘근 씹는 게 또한 흥미롭다. 파커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아침에 100여 종의 와인을 시음하는데, 와인이 담긴 잔을 후다닥 흔들어 냄새를 맡고, 입에 잠시 넣다 뱉고 하면서 평가지에 점수를 기록하는 게 도대체 잘못됐다는 것이다.

    와인은 옥탄가가 높은 과실주인데, 시음장 형광등 아래에서 맛본 것이 양초가 켜진 식탁에서 식사와 함께 제공될 때와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와인 정치학’을 읽고 와인 등급제도의 메커니즘, 원산지 제도의 비밀, 음주 관련법이나 와인 유통업의 실태 등을 알게 되면, 와인 맛이 달라질까? 와인 스트레스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는 와인에 대해 감미롭다, 웅장하다, 껄끄럽다, 우웩! 등 소비자의 입맛에 따를 것을 제안한다. 사람마다 사랑법이 같을 수 없듯 와인도 그렇게 사랑하자는 메시지가 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필자는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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