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된 김용준 후보자가 각종 의혹에 밀려 자진사퇴한 게 ‘총리 공석’의 시작. 이후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가 각각 전관예우와 역사관 문제로 인사청문회 문턱에서 낙마했고,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후임을 못 구해 사표를 내고도 어정쩡히 자리를 지켜야 했다. 다시 찾아온 국무총리 임명의 시기, 우리 국민은 어떤 국무총리를 기대하고 있을까. 각계각층 10인이 보내온 ‘내가 바라는 국무총리’ 제언을 모았다.
대통령의 최고보좌관
조창현 (사)정부혁신연구원 이사장, 전 중앙인사위원장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가 뽑은 국무총리(후보자 포함)는 거의 모두 실패했다. 선발 기준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직을 기득권 사회가 특정 엘리트에게 주는 사회적 벼슬로 인식한 게 문제다. 제대로 된 국무총리를 뽑으려면 그 직책이 안고 있는 시대적 과제와 사명이 무엇이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의 경험과 성품이 어떠한 것인지를 꼼꼼히 점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민주사회에서 공직자는 그 직책이 요구하는 일을 잘해낼 일꾼이다. 왕조시대 재상과는 다르다. 이 점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과 언론의 반성이 필요하다.
국무총리의 많은 자격 요건 가운데 주요한 몇 가지를 꼽자면 첫째, 대통령의 최고보좌관이요 고문이 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끌고 나가도록 부족한 점을 메워주고 과한 점을 줄여주는 구실을 잘할 수 있는 사람, 소통과 정치가 사라진 이 시점에 시민 및 국회(특히 야당)와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필요하다. 평소 삶과 인품이 이 경지에 미쳐야 할 것이다.
둘째, 지역과 계층, 세대에 따라 나라가 갈기갈기 갈라서 있는 상황에서 온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화해와 용서, 나눔과 보살핌, 연민과 보듬음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더불어 100만 공무원이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비관료적 선비이면서, 대통령이 인사(정무직 및 직업공무원)를 제대로 하도록 진언할 사람이라는 요건도 갖춰야 한다.
이런 자질과 인품을 모두 갖춘 인재를 찾는 건 쉽지 않으나 불가능하지도 않다. 임명권자가 국무총리 임명을 고유 권한이라 고집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공유하는 의무라고 생각한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공감력, 배려력, 실행력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현재 대한민국은 국무총리 구인 중에 있다. 작은 기업에서조차 필요한 인재를 구할 때 요모조모 따지는 것이 많을진대 한 나라의 국무총리라는 막중한 자리를 맡을 사람을 고를 때 따져야 할 조건이 얼마나 많을까.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국무총리에게 바라는 덕목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공감 능력이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단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공감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국무총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두 번째는 배려 능력이다. 공감과 비슷한 덕목이지만 배려는 좀 더 적극적인 언행을 의미한다. 국민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또는 국민의 고통을 느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더 편안해질 수 있게끔 배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 번째 조건은 실행 능력이다. 아무리 국민을 공감하고 배려한다 한들 구체적인 일들을 하지 않으면 무능한 국무총리가 될 것이다. 혼자서 국민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과 혹은 공직자들과 함께 배려하려면 실행 능력이 꼭 필요하다. 잘 짠 계획, 훌륭한 설득력, 강한 추진력, 그리고 잘 마무리 짓는 뚝심이 이에 포함된다.
마지막 조건은 성장의 마음가짐이다. 국무총리는 분명히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더 발전하고 성숙해지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내가 똑똑하니까 다들 나를 따라오라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장삼이사에게 배우고자 하는 태도, 즉 더 나아지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공감, 배려, 실행력, 성장의 마음가짐을 모두 갖춘 총리가 탄생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국무총리를 맡은 이해찬, 정운찬·김황식, 정홍원 전 총리(왼쪽부터).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현행 헌법상 국무총리의 기능은 국정의 전체 흐름을 이끌어가면서 내부 갈등과 충돌을 합리적으로 조율해 각 정부 부처의 활동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국무총리가 되려면 대통령의 임무와 중복을 피하면서도 국정에 대한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의 신뢰, 대통령의 신임, 야당과의 소통, 그리고 정부부처에 대한 장악력 등 네 가지 요소를 갖출 필요가 있다.
첫째,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능력뿐 아니라 도덕성도 검증해야 한다. 국민 앞에 떳떳할 수 없는 국무총리는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점을 작금의 사태가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 대통령의 신임을 얻지 못하는 국무총리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차후 개헌을 통해 책임총리제가 도입된다면 몰라도, 현행 헌법 아래에서는 대통령의 신임이 국무총리가 가질 실질적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다.
셋째,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를 대표하는 구실을 수행하게 된다. 이때 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에 따라 국정운영 효율성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과의 소통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이상의 조건들이 대외관계에 관한 성공 조건이라면, 정부조직 내에서 실질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정부부처에 대한 장악력이라 할 것이다. 국정 전반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를 기초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정부부처의 기능과 한계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국무총리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후보자가 더 적합한 인물인지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갖고 후임 국무총리를 생각할 때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받았으나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장상, 김태호, 문창극,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왼쪽부터)와 인사청문회 통과 후 불명예 퇴진한 이완구 전 총리.
박준영 변호사
명재상을 바란다. 차기 국무총리는 행정 능력뿐 아니라 인품까지 뛰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사소한 과오를 문제 삼으면 좋은 인물을 찾을 수 없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걸 안다. 하지만 국가 근본이 바로 서려면 먼저 ‘영(令)’이 바로 서야 하고, 영이 바로 서려면 청렴한 삶을 산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 여론과 인사청문회의 ‘송곳 검증’을 통과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혹은 국정 공백이 오래 지속된다는 이유로 이 기준을 포기하면 안 된다.
국민이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지도자의 기준이 ‘청백리’가 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여러 차례의 국무총리 낙마 사태를 정치권 공방의 결과로만 볼 수 없다. 지도자의 기준에 대한 국민 인식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우리, 우리 자녀, 그리고 그 후손이 자손만대 지켜야 할 나라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조금 힘들고 불편해도 확실히 정립돼가는 명재상의 기준을 후퇴시키거나 포기해선 안 된다.
동정심도 차기 국무총리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동정심은 사람을 화합하게 만든다. 동정심 있는 지도자가 동정심 있는 국민을 만든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계층 간 위화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도자에게 반드시 동정심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도덕적인 통합의 상징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
국무총리는 상징이다. 한국처럼 (지독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총리가 가진 권한과 갖가지 화려한 수사에도 총리는 상징이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라는 전제가 있지만 후보자 내정 자체를 대통령이 하기 때문에 절반의 동의에 불과하다. 그런데 총리임명권이 있는 대통령은 지극히 정치적 맥락에서 선출된다. 동의하기 어려운 양측이 팽팽히 맞붙어 싸우다 좀 더 우세한 쪽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통령을 갖는다. 나머지 절반은 소외되기 일쑤다. 총리가 통합을 상징하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이완구 전 총리, 좋은 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거쳐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이라는 악재 속에서 속절없이 떨어지는 지지율을 경험했다. 내년엔 총선이 있다. 그래서 나온 카드가 충청 출신 국회의원 이완구였다. 흠집이 난 채 총리가 됐지만 문제는 계속됐다. 그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자 갖가지 반응이 나왔다. 요약하면 이랬다. ‘뜬금없네’(낙마 원인은 부메랑처럼 날아든 성완종 리스트였지만). 맥락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화자가 문제였다. 국민이 아닌 대통령 자신을 위한 총리를 발굴하다 보니 빚어진 참사였다.
인정하자. 현 정부에서 총리의 정치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 어차피 청와대가 각본, 감독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능력도 크게 중요치 않다. 왜? 역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상징처럼 서 있고 그림자처럼 조용한 인물 정도면 된다. 통합이 어렵다면 최소한 도덕성이라도 담보된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어느 쪽이든 이번에도 기대가 크진 않다.
용기 있는 진짜 어른
김용섭 트렌드 분석가,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위기를 인정하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위기를 숨기거나 장밋빛으로 포장하는 건 악수가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나 정치권은 꽤나 오랫동안 각종 악수를 둬왔다. 참 세련되지 못했다.
현재 우리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은 분명하다. 국민 수준은 높아졌는데 정치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글로벌 경제가 불안하다. 더 커지는 빈부 격차와 실업률, 내수 침체와 예고된 대기업 구조조정 등 우리의 일상을 팍팍하게 만드는 상황만 가득하다. 이런 시대의 국무총리상으로, 겉으론 소박하고 온화해 보이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떠올려봤다.
메르켈 총리는 대화할 때 80%를 듣고 20%만 말한다고 한다. 진짜 카리스마 있는 사람은 독단적이고 목소리 큰 사람이 결코 아니다. 리더십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저기 다 관여하고, 뭐든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리더십이 아니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고, 상대 얘기가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말 그대로 ‘대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잘 듣는 국무총리가 필요하다. 그와 동시에 대통령에게는 직언하고 반대 의견도 개진할 수 있는 국무총리가 있으면 좋겠다.
더불어 새 국무총리는 진짜 어른이었으면 한다. 어른은 나이 든 사람이기 이전에 책임지는 사람이자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에 나이 든 사람은 점점 많아지는데 진짜 어른은 줄어드는 듯해 걱정이다. 적어도 국무총리만큼은 진짜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믿고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을 원한다.
사람다운 사람
김정은 주부
우리나라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命)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統轄)한다’(헌법 제86조 2항). 새로 뽑히는 국무총리는 이 한 문장만이라도 명심하면서 본연의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첫째, 대통령의 명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하게 공부하고 경험한 사람이어야 하겠다. 준비 없이 즉석 토론을 해도 대부분의 사안에 수준 있는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정도의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야 한다.
둘째, 행정 각부를 제대로 통할할 수 있게 행정 실무 전반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기에 부드러운 리더십, 원만한 인간관계, 갈등 해결 능력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셋째, 전면에 나서서 자기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기보다 뒤에서 사려 깊고 조용한 태도로 중간자 구실을 다하는 사람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당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국무총리는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변명을 내놓지 않고, 어떤 자리에 있든 항상 자기 양심에 비춰 바르게 행동하려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사람다운 사람’ 가운데 뽑자는 말이다.
인품으로 존경받는 사람
김향란 뮤지컬파크 대표
공연기획사 대표인 나에게 나를 보좌할 국무총리 같은 사람을 한 명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을 뽑을 것인가. 공연에 열정과 의지가 있고, 공연업계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실무 능력을 갖췄으며, 도덕적으로 올곧고 인품이 뛰어난 사람, 게다가 국제 감각이 있어 영어쯤은 능숙히 구사하고, 무엇보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가장 잘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을 고를 것이다.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한다. 국정 관련 제반 지식과 행정 경험이 풍부하고, 실용적이며, 현실적이고, 대통령의 취약한 부분을 완벽하게 보좌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 덕망이 있고 인품이 뛰어나며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건전한 역사관과 종교관을 지녀 국민을 통합하면서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인물을 국무총리로 뽑으려 하지 않을까.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해임하는 자리로, 어떤 국무총리가 필요한지는 대통령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으로 본다. 따라서 국정수행 능력상 대통령이 가진 약점을 속속들이 알 턱 없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국무총리는 원하지 않는다’에 대해 밝히는 게 더 적절할 듯하다.
먼저 나는 특정 이데올로기, 종교, 정당, 계층을 대변하거나 상징하는 국무총리는 원하지 않는다. 또 모든 판단이나 결정 기준이 사적 이익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양 포장하는 위선적인 사람은 사양한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조건을 갖춘 그런 교과서 같은 인재가 없다면 적어도 양심과 도덕성만이라도 갖춘, 그래서 실무 능력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인품 면에서는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그런 국무총리라도 뽑으면 어떨까. 국민의 눈에 국무총리는 어쨌거나 상징성이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마저 없다면? 그렇다면, 차제에 정치 선진국에서 용병 국무총리를 한 사람 공수해오는 것은 어떨까.
황희 정승 같은 어르신
박광서 강원 설악고 교감
아버지와 어머니, 교장과 교감이 각자 자신의 소임을 잘할 때 가정이 화목하고 학교가 잘 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상호 소통이 이뤄지는 가운데 자기 구실에 충실할 때 국가가 발전할 것이다. 아버지나 교장은 왠지 엄하고 어렵지만, 어머니와 교감은 자녀와 학생, 교사들에게 더 친근한 느낌이 든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은 국가 최고통수권자이자 정치가라는 이미지가 강한 반면, 국무총리는 마음 좋은 할아버지 같고 어른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는 세종대왕 시절 17년 동안 영의정을 지낸 황희 정승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국무총리상에 투영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그래도 자녀 교육은 어머니가 전문가이고 관심이 더 크듯, 대통령은 외교, 국방, 경제 등 외치(外治)에 힘쓰고 국민 살림살이나 교육과 관련한 내치(內治)는 국무총리가 책임지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래서 정치가인 국무총리보다 국민의 삶과 교육에 더 관심을 갖는 국무총리를 기대한다.
또 여러 차례 인사 검증 실패로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만큼, 국민이 존경할 수 있는 깨끗하고 모범적인 사람이 국무총리가 됐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여야는 물론, 언론까지 나서 여론의 철저한 사전 검증 작업을 거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어떨까 싶다.
세월호 사고 후 사의를 밝혔으나 두 달간 사표 수리가 유보되다 결국 유임이 결정된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해 6월 26일 굳은 표정으로 서울 정부종합청사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요즘 대한민국 국무총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얼굴 마담’ ‘대독 총리’ 정도가 아니라 ‘만신창이 동네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5명의 국무총리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 등 다양한 유형을 시도했지만 참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집권 3년, 임기 중반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박 대통령의 신임 국무총리 인선은 민심과 레임덕의 갈림길이 될 만큼 중요하다.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 것을 대통령이 책임지는 ‘대통령책임제’ 국가에서 ‘책임 총리’는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이 서 있는 시점과 상황을 보면 신임 국무총리의 조건과 구실은 간단하다. 박근혜 정부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시적인 정책 성과를 내야 한다. ‘박근혜표 대표 업적’ 말이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문제, 경제 정책에서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따라서 행정 능력을 갖춘 정책가형 국무총리가 필요하다. 단, 좌고우면하는 관료주의 스타일이 아니라 강한 추진력을 지닌 인물이면 좋겠다.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민생만을 향해 맹렬히 달려갈 수 있는 정책가형 국무총리가 적격이라고 본다.
국회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고? 그건 반대다. 청문회에 대비해 티끌 한 점 없는 도덕군자를 찾는 것보다 일단 적임자를 찾은 뒤 여야 간 정치적 협상으로 푸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또 국무총리에게 지역 안배를 하는 시대도 지났다. 신임 국무총리는 출신 지역을 잊고 오로지 가시적 정책성과 창출에만 매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