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가 19세까지 머물렀던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부세토의 베르디 극장.
독일 대문호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묘사한 ‘낙원’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유럽인에게도 이상향으로 여겨져온 그곳을 이제는 많은 한국인이 찾는다. 로마 콜로세움과 스페인 계단을 오르고, 곤돌라를 탄다. 그러나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다.
6월은 이탈리아 여행의 최적기
무대에서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휘몰아치는 사랑과 질투와 격정과 성공의 드라마, 오페라를 감상해보자. 유럽인을 500년 가까이 매료해온 음악과 문학, 미술의 종합예술을 즐기며 그들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동아일보사 문화기업팀은 6월 14일부터 8일간 일정으로 밀라노 라스칼라, 파르마 오페라,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서 3편의 오페라 공연을 즐기며 작곡가들의 자취와 북이탈리아 일대 최고 경관을 돌아보는 ‘꽃보다 클래식-이탈리아’ 여행을 기획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축제로는 로마시대 원형극장에서 열리는 베로나 오페라 축제, 푸치니가 살았던 호반 마을에서 펼쳐지는 토레 델 라고 푸치니 페스티벌, 오페라의 고향 피렌체에서 펼쳐지는 피렌체 5월 음악제 등을 꼽는다. 시간이 허락하면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 음악제와 오랑주 페스티벌,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야외 오페라 축제 등을 함께 묶어 코스로 구성할 수도 있다.
단 이 경우 반(半)밀레니엄의 유구한 내력을 가진 유럽 명문 오페라극장에서 전통적인 모습대로 공연되는 오페라를 감상하기 힘들다. 피렌체 5월 음악제를 제외한 오페라 축제 대부분이 한여름이자 여행 성수기인 7, 8월에 열린다. 이 시기 오페라극장은 대부분 문을 닫는다. 시즌 중에는 통상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즐기고, 여름이면 휴가지에서 한결 부담 없는 기분으로 오페라를 감상해온 유럽인의 생활 관습에 따른 축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을 넉넉히 잡을 수 있다면 주요 극장의 시즌이 열리는 6월에 여행을 시작해 7월 오페라 축제 시즌 개막을 즐기고 돌아오는 여정을 추천한다. 먼 나라에서 온 음악팬을 위한 황금 같은 기간을 꼽는다면 야외 오페라의 대명사인 베로나 오페라 축제가 개막하는 6월 하순이 최적기다. 이 시기엔 밀라노 라스칼라를 비롯한 명문 오페라극장 대부분이 시즌 중이라 축제 기분을 마음껏 느끼는 야외 오페라와 안락한 좌석에서 한층 완벽한 음향, 호사스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실내 오페라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정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다. 에밀리아로마냐 주 파르마의 론콜레 마을 입구에 있는 베르디 생가. 토스카나 주 피사 시에 있는 피사의 사탑(왼쪽부터).
유럽의 6월은 평범한 여행자에게도 가장 완벽한 여행 시즌이다. 7월이 되면 따가운 햇살 속에서 헤매느라 체력이 바닥나기 일쑤다. 7, 8월엔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쏟아지는 만큼 박물관과 유적 입구에서 줄을 서느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기 쉽다. 악명을 떨치는 남유럽 소매치기들도 인파가 들끓는 이 시기 관광지에서 옷차림이 가벼운 관광객을 노린다. 이에 비해 6월은 한층 안락하고 안전하며 날씨도 청명하다.
이탈리아 토레 델 라고, 프랑스 오랑주와 엑상프로방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등 오늘날 명성을 날리는 야외 오페라 축제의 ‘원조’를 꼽자면 단연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축제다. 1913년 당대 유명 테너 조반니 제나텔로는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오페라 ‘아이다’를 옛 검투사들의 무대였던 3만 석의 베로나 고대 로마 유적에서 공연했다. 효과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핀마이크 하나 없어도 음향이 완벽해 객석 구석구석까지 노래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전달됐다. 이 고대 유적은 넓고 장려한 무대 효과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오늘날 이 축제는 전 세계에서 매년 50만 명의 음악팬을 끌어모으고 있다. 관객이 저마다 촛불을 받아 켜 들고 개막을 기다리는 ‘자신들의’ 모습 자체부터가 어떤 요소보다 감동을 주는 볼거리다.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이 어울리는 장려한 음향 속에서 하늘에 하나 둘씩 빛을 발하는 별빛을 보노라면 역사의 무대와 나의 삶, 고대와 현대가 하나 되는 특별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북이탈리아는 오페라 역사의 황금 같은 현장이기도 하다. 서쪽 해안 토스카나 주에는 푸치니가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 세계 오페라 흥행 5위 안에 들어가는 3개 거작을 탄생시킨 토레 델 라고 저택이 있다. 현재는 푸치니 박물관으로 꾸며졌으며 근처 호반에서 매년 여름 푸치니 야외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토스카나 북쪽에 인접한 에밀리아로마냐 주에서는 베르디가 탄생한 작은 마을 론콜레와 그가 자라난 부세토를 찾아 오페라 대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도니체티가 탄생한 베르가모는 그 자체로 인기 높은 관광지다. 초여름 레몬 향취가 대기에 퍼져 있는 이곳은 언덕바지에 조성된 아늑한 중세 마을로 인기 높다.
이탈리아 베로나에 가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줄리엣의 집을 가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베니스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잇는 ‘탄식의 다리’. 이탈리아 북서부 라스페치아 지방의 친퀘테레(5개 마을) 중 리오마지오레 해변(왼쪽부터).
이탈리아 문화예술의 본고장 피렌체가 오페라의 고향이라는 사실은 잊기 쉽다. 16세기가 끝날 무렵 이 도시의 지식인 모임 ‘카메라타’에서 오페라라는 새로운 예술장르가 탄생했다. 이 도시는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로 유명한 푸치니 ‘잔니 스키키’의 배경이기도 하다. 한편 베로나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명작 희곡이자 샤를 구노가 오페라로 작곡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제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 인근 만토바는 베르디 ‘리골레토’의 무대로 오늘날에도 ‘리골레토의 집’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북이탈리아는 로마시대 이후 유적과 풍요한 자연 혜택이 어우러진 명승지로도 이름 높다. 푸치니의 저택 토레 델 라고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푸른 바다와 절벽을 마주한 그림 같은 해안마을 5곳이 연달아 시선을 매혹한다. 한국인에게도 뜨는 관광지로 사랑받고 있는 친퀘테레다. 알프스 산맥의 구불구불한 지경을 배경으로 호수와 산이 어울린 그림 같은 휴양지들도 있다. 호수 한가운데 돌출한 반도와 중세의 성곽이 어우러진 가르다 호반 관광지 시르미오네는 특히 ‘마리아 칼라스가 사랑한 휴양지’라는 명예를 간직하고 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도 베로나에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거리다. 한층 여유 있는 여행자라면 부호와 예술인들의 회합 장소였던 코모 호수 주변 마을들, 이탈리아 전통 증류주인 그라파의 고향이자 중세 목조다리와 흰 산의 조화가 여행객을 매료하는 바사노 델 그라파도 찾아가보자.
‘꽃보다 클래식-이탈리아’ 여행은 이 같은 북이탈리아의 보석 같은 핵심을 담아냈다. 6월 16일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고향 파르마에서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17일 유럽 최고 명문 오페라극장 밀라노 라스칼라에서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 ‘팔리아치’를, 19일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개막 작품 베르디 ‘나부코’를 감상한다. 푸치니와 베르디, 도니체티의 고향과 이들의 체취가 남아 있는 현장, 리구리아 해의 절경 친퀘테레와 가르다 호반의 시르미오네, 베네치아 등 최고 경치도 함께 돌아본다(문의 : 동아일보사 문화기획팀 02-361-1414/ tourdonga.com).
14~15세기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던 이탈리아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