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돈의동 ‘할머니칼국수’에서 칼국수 반죽을 만들고 있다.
외식으로서의 칼국수는 이후 서울에도 깊이 뿌리를 내렸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저렴한 서민 칼국수와 지방의 유명 칼국수가 공존해왔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부근 돈의동에는 두 곳의 칼국숫집이 있다. 해물칼국수로 유명한 ‘찬양집’과 멸치 국물로 유명한 ‘할머니칼국수’가 그 주인공. ‘찬양집’의 창업연도는 1965년이다. 집에서나 먹던 칼국수가 정부의 강력한 정책하에 세상 밖으로 본격적으로 나온 바로 그 시기에 생긴 집이다.
‘할머니칼국수’는 멸치, 다시마, 양파 등을 넣어 만든 진하고도 개운한 국물과 졸깃하고 잘 익은 면발을 수북하게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일까. 이 집에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려면 20~30분을 기다리고도 사람들과 부대끼며 먹어야 한다. 하지만 젓가락을 드는 순간 그 모든 수고로움이 뇌리에서 사라진다. 그만큼 입맛을 끄는 매력이 있다.
한편, 서울 혜화동 부근의 칼국숫집들은 ‘칼국수=서민 음식’이라는 공식을 보기 좋게 깨는 곳이다. ‘국시집’은 1969년 한옥 집 한 칸으로 시작했는데 항상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로 붐빈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30년 가까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던 덕이다. 설렁탕 국물을 연상케 하는 사골 육수에 안동칼국수의 특징인 하늘거리는 면발이 일품이다. 그 위에 다진 고기와 호박이 고명으로 나온다. 경북 안동 양반가에서 사골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 먹은 것에서 유래한 ‘양반식 안동 칼국수’다. 칼국수는 물론이고 안주용으로 좋은 수육과 안동식 식당에서 빠지지 않는 문어수육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집이기도 하다.
‘국시집’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그 주변에 하나 둘씩 칼국숫집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일대에 칼국수 동네가 형성됐다. ‘혜화칼국수’ ‘명륜손칼국수’ ‘밀양손칼국수’ ‘손칼국수’ 등이 그들이다. 이 집들은 서로 이러저러한 인연을 맺고 ‘국시집’ 스타일의 안동식 칼국수를 팔고 있다. 혜화동 주변이 전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칼국수 문화를 지닌 동네로 변신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호정’의 칼국수(왼쪽)와 종로구 혜화동 ‘국시집’의 칼국수.
이 집의 기품 있는 고깃국물은 서민적인 칼국수와 양반가에서 먹던 칼국수가 원래부터 다른 태생임을 보여준다. 안동의 전통적인 면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먹어보면 야들야들 하늘거리지만, 그렇다고 날리진 않는다. 면발의 식감도 좋을뿐더러 고깃국물이 잘 배어 있어 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소호정’의 칼국수 한 그릇에는 세련된 칼국수의 이정표가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