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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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진 담판, 끝까지 공세 포기하지 말라

美 육군 야전교범에서 배우는 협상 성공법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naver.com

    입력2015-03-23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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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진 담판, 끝까지 공세 포기하지 말라

    미 육군 야전교범 ‘TACTICS(전술)‘.



    허브 코헨은 자신의 저서 ‘협상의 법칙’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거대한 협상 테이블이다. 싫든 좋든 우리는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다.’ 당장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날 때조차 자기 자신과 협상하는 것이 평범한 이들의 삶 아닌가.

    흔히 협상을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 정도라고 생각하기 쉽다. 분명 외규장각 도서 반환이나 IS(이슬람국가) 테러리스트들과의 인질 반환 협상 같은 이슈는 우리 일상과 별 접점이 없다. 하지만 이들 협상에서 본질적인 속성만 뽑아내면 남는 것은 승패다. 누군가 가지면 다른 쪽은 잃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늘 일어난다.

    약점 돌파, 기습, 공격 정신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누가 나서서 협상이니 전략이니 말하지 않아도 이미 오래전에 상생의 방향으로 결론이 났을 것이다. ‘윈윈(win-win) 게임을 만들라’ 같은 뻔한 조언에 하품 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글에서는 윈윈이 불가능한, 이익과 손실이 명백히 나뉘는 제로섬 게임을 다루고자 한다.



    전 세계 주요 국가 야전교범의 전략, 작전, 전술에서 공통된 핵심 원칙이자 정신으로 명시된 한 마디를 꼽자면 바로 ‘공세(offensive)의 원칙’이다. 공세는 공격(attack)과는 다르다. 아군이 방어하더라도 그것이 일시적이고 적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오기 위한 것이라면, 군사작전에서는 이를 ‘공세’로 본다.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공세라는 말의 정의는 ‘주도권을 행사해 적에게 피해를 강요하는 적극적 행동’ 또는 ‘부대가 공격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 작전에서 공격과 방어, 공세와 수세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은 주도권(initiative)이다. 이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주도권을 선점한 측이 자신의 ‘의지’를 군사작전에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군 야전교범 ‘TACTICS(전술)’ 역시 ‘공세적 정신과 행동은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결정적인 방법’이라고 명시한다. 이를 통해 획득한 주도권은 지휘관으로 하여금 자신이 싸울 시간, 장소, 특정 전술, 기법, 절차, 운용부대 등을 정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1991년 걸프전에서 ‘사막의 폭풍’ 작전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미군은 공세적 태도를 작전에서 실현하기 위한 핵심 요건을 ‘대담한 공격’과 ‘공격 정신의 유지’로 압축하게 된다. 대담한 공격이란 쉽게 말해 ‘그럼에도 공격!’이다. ‘TACTICS’는 이를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 빠른 결단력으로 약점이 포착되자마자 과감하고 집요하게 공격하고,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속도를 늦추지 않음으로써 적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압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시행하려면 두 가지 사항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먼저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판단하는 작업이다. 전쟁영화에서처럼 무조건 적의 주력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옳은 판단일 수 없다. 강점은 회피하고 약점만 공격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그다음으로는 기습이 가능한지 여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적이 예상치 못한 시간, 장소,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혹은 적이 예상했다 해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시간, 장소, 방법을 바꾸는 것도 포함된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은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구분하는 전술의 대가였다. 며칠이 걸리든 부대와 부대가 배치된 틈을 찾았고, 몇 명이 죽든 그 틈을 향해 계속 공격을 이어갔다. 1951년 5월 현리전투에서는 600m 좁은 계곡에 3개 연대를 이틀 동안 쏟아부었다. 그 결과 한국군 제3군단이 붕괴됐고, 방어선에는 58km의 돌파구가 형성돼 유엔군 작전 전체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걸프전 당시 미군 작전은 기습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당시 지휘부는 101공중강습사단을 전선 110여km 후방에서 공수 강하시키는 동시에 육상에서는 배치된 이라크군을 무시하고 빠르게 진격토록 했다. 이라크군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난 작전이었다. 심리적 충격과 함께 측면과 후방에서 동시에 위협을 받게 되자 이라크군은 무기와 장비를 버리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렇듯 대담한 공격을 위해서는 공격 정신 유지가 필수적이다. 달성 가능성을 알 수 없고, 상황이 갈수록 악화할지라도 계속 공격을 이어갈 수 있는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이 꼭 개인 의지의 산물일 필요는 없다. 상하 각 부대의 원활한 의사소통이나 단순한 아이디어가 전세를 역전하기도 한다. 행군하던 병사들에게 저 언덕을 넘으면 시큼한 매실이 있다고 말해 물 부족 문제를 해결했던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의 기지가 대표적이다.

    ‘소비에트 방식’의 무서움

    배수진 담판, 끝까지 공세 포기하지 말라

    6·25전쟁 중이던 1953년 4월 12일 포로 교환 장소를 협상하기 위해 경기 파주 판문점 중립지대에서 만난 유엔군 측과 북한군 측.

    자, 다시 협상장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가장 먼저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은 대담함이다. 테이블에 앉으면 먼저 대담한 제시라는 공을 상대에게 던져보라는 뜻이다. 이때는 슬쩍 언더스로로 건넬 게 아니라 오버스로로 전력을 다해야 상대 반응을 살필 수 있다. 사고파는 흥정을 할 때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말도 안 되게 싼값을 제시하는 전략도 이에 속한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문지방 효과’ 혹은 ‘극단적 초기 입장’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런 카드를 던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매년 연봉협상에서 사람들은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말하거나, 처음에 생각했던 인상분에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한다. 마음속으로 자신의 가치를 아무리 높게 매겨봐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상대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연봉 협상은 대표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첫수는 대담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 단계는 상대 약점을 포착해 집요하게 공격하기.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 돌파구가 마련되고 거기서 길이 열린다. 기습의 원칙은 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이다. 협상장에서는 상대가 미처 예상치 못한 곳을 찌르는 방식으로 변용할 수 있다. 상대 반응을 보기 위한 고전적 수법 가운데 하나로, 이를 통해 상대가 균형을 잃거나 당황하면 이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TACTICS’의 가르침 중 실천하기 가장 까다로운 조건은 의외로 공격 정신의 유지다. 양자택일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1원칙은 상대가 내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물러나지 않는 것. 양보는 곧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6·25전쟁 휴전회담의 유엔군 수석대표였던 터너 C. 조이 제독은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언제나 호전적이었다. 단 한 번도 양보한 적이 없다.” 기업에서 이렇듯 강경한 협상태도를 ‘소비에트 방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시장경쟁 무대에서는 여전히 ‘경쟁자를 두들겨 패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다. 그러니 자신이 승자독식 게임을 앞두고 있다면 명심해야 한다. 공격 정신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윈윈 게임 따위는 사는 동안 쉽게 만날 일이 없다. 상대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협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잔인한가. 인생은 전쟁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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