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자(가명) 씨는 2013년 11월 병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3년 전 연락이 끊긴 남편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화였다. 이씨는 18세 딸과 함께 병원을 찾았지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2000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의 시신 인수를 포기했고 남편은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됐다.
그 후 이씨는 한부모가정 지원을 받고자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몇 달 전 죽은 남편이 가족관계등록부상 살아 있다는 말이었다. 주민센터 직원은 “남편이 53세로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뒤늦게 사망신고를 하려 했지만 사망진단서를 떼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밀린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이씨는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지 못했다.
무연고 사망자 법적 악용 여지 커
실제 죽었어도 사망신고가 되지 않은 이는 이씨의 남편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버지의 시신 인수를 포기한 최승연(30·가명) 씨도 아버지의 사망신고가 되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는 “구청에서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하면서 당연히 사망신고도 해주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최씨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 10개월이 지나서야 사망신고를 했다.
무연고 사망자는 대부분 가족이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당한 사람들이다. 서울 중구청 사회복지과 손석희 주무관은 “20년 동안 무연고 사망자를 담당하면서 직계가족이 없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청 생활보장과 윤진영 주무관은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은 고인과 몇십 년 동안 교류 없이 지낸 경우가 많다”며 “보통 시신 인수를 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취재팀이 2014년 5~7월 3개월 동안 서울시가 무연고로 처리한 사망자 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방자치단체가 사망 여부를 확인해준 10명 모두 사망신고가 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각 구청은 사망신고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청 복지지원과 관계자는 “사망신고가 구청 담당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고, 서울 동대문구청 복지정책과 관계자도 “구청에서 신고하지 않는다”며 “유가족이 사망신고를 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가족이 없는 사람도 사망신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동진(사망 당시 74세·가명) 씨는 재혼 가정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계모와 친형이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지만 각각 10년 전, 5년 전 사망했다. 그와 20년 넘게 청소부로 함께 일했던 황경자 씨는 “가족도 친척도 없었고 젊은 시절 한 번 결혼했지만 오래전 이혼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서울시티타워의 경비실장은 “유류품이 남아 있어 가족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며 “지금까지 가족이라며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지난해 6월 사망했지만 서류상으로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다. 박씨가 살았던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주민센터 관계자는 “아직 사망신고가 돼 있지 않다”고 답했다. 현행 제도상 박씨처럼 가족이 없으면 사망신고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서울 금천구청 관계자는 “가족이 없는 경우 사망신고를 하기가 애매하다”고 했다. 서울 중구청 사회복지과 손석희 주무관은 “가족이 없으면 구청에서 사망신고서를 작성해 가정법원으로 보낸다”며 “가정법원에서 사망신고를 해도 된다고 승인해줘야 사망신고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망 처리가 되지 않은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는 악용될 공산이 크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과 교수는 “사망신고가 되지 않으면 국가 재정이 낭비될 여지가 있다”며 “죽은 사람 이름으로 계약을 하면 신분관계가 안정되지 않아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안전한 거래를 위해서라도 사망신고는 바로 처리돼야 한다”고 했다.
출생신고 못 하게 하는 복잡한 법
출생신고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정호(사망 당시 30세·가명) 씨는 주민등록번호 대신 833311-1××××××로 시작하는 행려번호만 갖고 있었다. 장애가 있던 이씨는 어릴 적 부모로부터 버려져 1997년 서울시어린이병원으로 옮겨왔다. 병원에서만 17여 년을 살다 2013년 1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씨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지만 기록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태어난 후 어느 누구도 그의 출생신고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청 관할지역에서 발견돼 관련법에 따라 행려병자로 법적 보호를 받았을 뿐이다. 서울 은평구청 청소년복지팀 관계자는 “구청이 출생신고를 할 의무가 없다”며 “보통 관내에서 무연고인 아픈 아이가 발견되면 바로 어린이병원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서울시어린이병원도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병원 원무과 직원은 “(출생신고는) 우리 권한이 아니다”라며 “사회복지시설 등에 입소하면 호적이 생기는데 이씨는 계속 어린이병원에서 살다 보니 출생신고가 안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처럼 어렸을 때 버려진 아이를 ‘행려아동’이라 칭한다. 정확한 법적 용어는 기아(棄兒)다. ‘부모를 알 수 없는 유아로서 출생신고 의무자가 없거나 명확하지 않은 유아’를 뜻한다. 행려아동의 경우 출생신고를 할 방법이 있긴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다. 지난해 12월 행려아동 정모 군의 출생신고를 도운 서울 광진구청 사회복지과 홍지유 주무관은 “아동복지시설의 장을 후견인으로 세워 신고하기까지 5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주민등록번호 부여 업무는 주민센터에서 담당하고, 허가는 가정법원에서 한다”며 “협조받을 기관이 많고 복잡해 행려아동을 출생신고한 사례가 우리 구청이 처음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행려번호만 있을 뿐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아이가 서울시어린이병원에만 70명이 넘는다. 반쪽뿐인 번호라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도 제한돼 있다. 서울 은평구청 사회복지과 최성균 주무관은 “행려아동은 의료급여 혜택만 받을 수 있고 국민건강보험급여 수급자 자격은 부여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혼부(未婚父) 역시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기 힘들다. 미혼부 김준식(가명) 씨는 6세인 딸의 출생신고를 아직까지 못 하고 있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엄마의 인적정보가 필요한데 아이 엄마가 기록이 남는 게 싫다며 출생신고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 엄마를 상대로 소송까지 했으나 결국 딸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당시 상담을 진행한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관리자 정영란 사회복지사는 “방법이 없었다”며 “그나마 김씨가 출근할 동안 할머니가 아이를 돌봐주고 있어 형편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미혼부 가정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1995년 2630가구였던 미혼부는 2010년 1만8118가구로 6배가량 증가했다. 미혼부가 증가하는 현실과 달리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엄마 쪽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출생신고를 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절차가 복잡하다. 미혼부가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려면 4건의 재판을 거쳐야 한다. 법무법인 마당 송윤정 변호사는 “아이에 대한 후견인 인정을 받고 아이의 성과 본을 창설한 다음 친생자 관계가 존재한다는 판결까지 받아야 한다”며 “복잡한 절차를 거치면서까지 출생신고를 하려는 사람이 드물다”고 언급했다.
출생 및 사망신고 거부하는 병·의원들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미혼부는 양육비 지원 등 정부의 아동복지 혜택을 받을 방법이 없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예전에는 국가가 주는 복지혜택 자체가 적어 출생신고 여부가 아동에게 크게 불이익을 끼치지 않았다”며 “하지만 정부 지원이 늘어나면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을 경우 이런 혜택에서 아동이 소외되고 차별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출생신고 시스템은 신생아 매매 및 불법·탈법적인 입양 문제와 함께 영아보건정책 수립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가족이 우선적으로 출생 및 사망신고를 하게 돼 있다. 같은 법 제6조 1항에 따르면 결혼한 가정에서 아이의 출생신고는 부(父) 또는 모(母)가 하도록 규정돼 있다. 혼외자는 엄마에게만 출생신고 의무가 있다. 사망신고 또한 출생신고와 마찬가지로 동거하는 친족이 해야 한다.
무연고자나 행려병자, 엄마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려는 혼외자 자녀의 출생 및 사망신고를 가족 또는 친족 외의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가족관계등록법 제50조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할 수 없을 경우 아이가 태어난 병원에서 신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법은 있지만 병원은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산부인과병원 원무과 관계자는 “아이가 출생했다는 내용의 증명서는 떼어주지만 신고는 부모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의 한 산부인과병원 관계자 또한 “병원에선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가족관계등록법에 의하면 병원이 출생신고 의무자라는 조항은 사망신고에도 준용된다. 엄영천 서울가정법원 계장은 “준용은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라며 “가족이 사망신고를 하지 못하면 사망 장소인 병원을 신고의무자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은 대부분 이 조항을 알지 못했다. 취재팀이 조사한 결과 무연고 사망자를 처리하는 서울 소재 병원 23곳 중 사망신고 의무를 알고 있는 병원은 단 1곳에 불과했다.
이 밖에도 사망신고의 경우 주민센터 동장이 직권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우진영(사망 당시 53세·가명) 씨는 그의 주소지인 경북 영천시 자양면 동장이 사망신고를 했다. 연고자가 없던 우씨는 간암으로 투병 중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서대문구 동신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해당 병원의 관할구청인 서대문구는 주소지의 동장이 사망신고를 하도록 요청했다.
일부 구청은 우씨처럼 동장 권한으로 사망신고를 처리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었다. 동장 직권은 법에 명시된 규정이지만 취재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울 25개 구청 중 9곳이나 이를 몰라 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렇듯 병원이나 구청은 출생 및 사망신고를 처리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실정이다. 이들은 가족에 비해 신고의무가 약하다. 김상용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사망 및 출생신고는 기본적으로 가족이 하게 돼 있다”며 “병원에선 가족이 신고했으리라 믿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가족이 출생 및 사망신고의 제1의 의무자가 된 배경에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가 있다고 설명한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은 “우리나라는 관혼상제 모두 가족 내에서 해결하는 전통이 있어 가족이 하는 일에 왜 국가가 개입하느냐는 인식이 강하다”며 “출생 및 사망신고도 가족이 할 일이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병·의원의 출생·사망 등록 의무화해야
부모나 친족이 출생과 사망신고를 일차적으로 담당하게 한 우리와 달리 독일에선 출생과 사망신고 의무가 병원에 있다. 김상용 교수는 “독일 신분등록법에 따르면 출생신고 의무는 병원장이 부모보다 앞선다”며 “병원에서 출생하면 병원장이 출생등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망신고 역시 사망한 병원의 장이 해야 한다. 가족보다 병원을 상위 신고의무자로 두는 나라는 독일만이 아니다. 영국은 병원에서 출생신고 업무를 담당한다. 미국 역시 의료기관에 신고의무가 있어 출생증명서를 담당하는 사람을 1명 이상 두게 하고 있다.
사망신고도 이와 유사하다. 미국에선 의사와 장의사가 사망신고를 한다.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해 해당 장례식장에 보낸다. 이를 바탕으로 장의사는 사망신고를 하게 된다. 호주도 병원에서 사망한 경우 환자 주치의가 사망 사실을 정부 기관에 48시간 이내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송효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행정기관에 통보해 등록하도록 하는 출생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철웅 교수는 “출생 및 사망신고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병원에서 신고하는 제도를 채택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보통 출생과 사망은 병원에서 이뤄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전국 출생아의 98.3%가 병원에서 태어났다. 사망신고도 병원에서 발급하는 사체검안서나 사망진단서를 첨부하는 비율이 전체 사망자의 95%에 이른다. 병원에서 출생 및 사망신고를 직접 담당하게 될 경우 신고 행정 절차가 단순해진다.
신고제가 등록제로 바뀔 시 통계 산출에도 도움이 된다. 통계청 인구추계과 담당자는 “현재의 신고 시스템을 병원이 처리하는 등록제로 바꾸면 통계 정확성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보건복지부가 낸 ‘사망자정보 통합관리 허브 시스템 구축’ 보도자료에 따르면 사망신고가 한 달 안에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1년간 전체 사망자의 8.5%였다. 반면 2009년 통계개발원이 발간한 ‘인구 및 경제통계 활용방안과 분석연구’에 따르면 미국, 영국 등 등록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신고 기한 내 신고하지 않은 사망자는 없었다.
정치권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법률 개정에 나섰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9일 새정치민주연합 김우남 의원이 발의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수정해 통과시켰다. 해당 법은 시장 등이 무연고 사망자 등을 처리한 경우 지체 없이 사망지·매장지 또는 화장지의 시·읍·면의 장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김상용 교수는 “해당 법이 연고자가 없거나 찾을 수 없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규정에 불과하다”며 “가족이 있는데도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는 해당되지 않아 지극히 제한적인 법”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행려아동, 미혼부 자녀 등의 출생신고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완전히 빠져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여전히 남아 있는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선 (현행 신고제 대신) 등록제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등록제 내용을 담은 법률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이 2013년 11월 18일 대표발의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출생 및 사망신고를 병원 등이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 법이 통과되면 출생 및 사망신고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등록제는 특정 이해 단체가 추진하는 법률이 아니라 이슈화, 공론화하기 쉽지 않지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2014년 제1회 삼성언론재단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의 내용 중 일부를 윤문하고 발췌한 것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