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대동문’의 만둣국.
조선시대부터 떡국과 만둣국은 설날에 먹는 의례 음식이었다. 이식(1584~1647)은 ‘택당집(澤堂集)’에서 “정조(正朝)에는 각 자리마다 병탕(餠湯·떡국)과 만두탕(饅頭湯)을 한 그릇씩 놓는다”고 적고 있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관습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남송(南宋) 시인 육유(1125~1209)가 쓴 ‘세수서사시(歲首書事詩)’에 나오는 “세일(歲日·설날)에는 탕병(湯餠)을 먹는데 이것은 ‘동혼돈 연박탁’과도 같은 것”이라는 인용문이 떡국 중국 기원설의 근거가 됐다.
설날 만둣국을 먹는 풍습도 역시 중국에서 비롯됐다. 한국 만두는 중국 만터우(饅頭)와 이름은 같지만 모양이 조금 다르다. 만터우는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빵이다. 한국 만두는 우리가 교자라 부르는 중국의 자오쯔(餃子)다. 자오쯔는 중국 돈 원보(元寶)를 닮았다. 중국 사람들은 자오쯔를 먹으면 돈을 많이 벌고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자오쯔의 발음은 자오쯔(交子)와 같은데 ‘자손이 번성한다’는 의미다. 자오쯔는 ‘자시(밤 11~1시)가 되다(交在子時)’와 발음이 비슷한 탓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뜻도 담고 있다.
설날에 자오쯔를 먹는 관습은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산둥 지역에서 가장 성행했다. 이런 문화는 평안도와 황해도, 함경도 등 북한 지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평안도에서는 설날에 떡국 대신 만둣국만 먹기도 했다.
서울 여의도 ‘산하’의 떡만둣국.
1960년대 분식장려운동으로 밀가루로 만든 만두는 중국집, 분식집에서는 물론, 길거리 음식으로도 큰 인기를 얻는다. 만두 자체도 인기가 많았지만 탕의 민족답게 국에 만두를 넣어 먹는 만둣국은 저렴한 한 끼 식사로 인기였다. 개성의 사각형 납작 만두인 편수는 중국 만둣국인 완탕과 연관이 깊은 음식이다. 서울 만둣국 식당은 대개 이북 실향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작은 눈사람 모양으로 만든 조랭이떡국은 개성의 명물 떡국이다. 서울 인사동 ‘궁’이나 신설동 ‘개성집’에 가면 맛볼 수 있다.
서울 여의도 ‘산하’는 황해도식 떡만둣국으로 유명하다. 평안도 만두의 5분의 1 크기지만 피와 속이 알차다. 서울식 양지 국물과 서로의 존재감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상생한다. 1만2000원 하는 가격에도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떡국과 만둣국을 따로 먹기도 하지만 식당에선 대부분 떡과 만두를 함께 넣은 떡만둣국을 판다. 여의도에는 만둣국으로 유명한 식당이 두 군데 더 있다. 개성식 만두를 파는 ‘진진’은 고춧가루를 넣은 얼큰한 손만두술국이 유명하고, 평양식 음식으로 유명한 ‘대동문’은 평양냉면 국물처럼 맑은 국물에 평양식 만두를 넣은 만둣국이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