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60년 1042명이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91년 1만3429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후 범국가적 교통사고 감소대책이 추진됐고, 사망자 수가 점차 감소해 2004년 6563명으로 사상 최대치의 절반 이하를 기록했다. 이런 반감기까지 오는 데 걸린 기간은 13년. 주요 선진국이 반감기(영국 34년, 일본 33년, 스웨덴과 호주 30년, 프랑스 28년 등)에 접어들기까지 30여 년 가까이 걸린 데 비하면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국가의 교통안전 수준을 나타내는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 수는 2.0명(2014)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3명)보다 여전히 많다.
중상은 줄고 경상 사고 늘어
이제 인구 2명 중 1명은 운전면허가 있고, 자동차 등록 대수도 2000만 대를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운전면허 소지자는 1962년 8만8616명에서 2012년 2826만3000명으로 50년 만에 321배 늘었다. 전체 인구 중 운전면허 소지자 비율도 1962년 0.3%에서 2011년 55.9%로 186배 증가했다. 국토교통부는 2014년 말 기준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는 2011만 7955대로 전년보다 71만7000대(3.7%) 늘었다고 밝혔다.
자동차 대수가 늘자 사고 발생 건수도 덩달아 늘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 교통량은 2013년 기준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05년 6376명에서 2013년 5092명으로 줄어든 반면, 사고 건수는 21만4171건에서 21만5354건으로 늘어났다. 보험개발원 통계도 비슷하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10년 4126명에서 2011년 3799명, 2012년 3943명, 2013년 3737명으로 점차 감소했다. 그러나 대인·대물 교통사고 건수는 2010년 369만7753건에서 2011년 367만8556건, 2012년 393만6556건, 2013년 411만5587건으로 증가했다.
김영훈 보험개발원 선임은 “차량 운행 증가로 교통사고 절대 건수가 증가했다”며 “대인 사고는 감소하고 대물 사고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인 사고에서는 중상 사고가 감소하고 경상 사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차량 고급화로 안전장치를 장착한 차량이 늘고, 2013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법규를 위반한 교통사고가 4.6% 감소한 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외제차가 증가하고 국산차 평균 가격이 증가하는 등 차량 고급화 및 고액화에 따른 대물 사고 보험 청구도 늘고 있습니다.”
강동수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처장은 “사고가 늘어난 이유는 국민 1인당 차량 보유 대수가 늘어난 반면 도로와 주변 시설 등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라며 “사업용 화물차량의 교통안전을 확보하고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용 화물차량업계 자체가 열악하고, 근로기준법에서도 운전자의 근로시간 제한이 없어 졸음운전이 심각하다. 운전자 근로시간 제한이 있는 미국에서도 교통사고의 20% 이상이 졸음운전이 원인일 정도로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국에 위험물 운송 차량이 8만 대가량 되는데, 위험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화물차가 교통사고를 내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형 화재 또는 폭발사고를 일으키거나 독극물이 유출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위험물 운송 차량 관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아요. 지입 제도를 규제하고, 국가적인 재정보조로 안전성을 높여야 합니다.”
근본적 교통안전 대책 마련 없이는 교통 선진국으로 갈 길이 요원하다. 2014년 12월 10일 영동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추돌사고(위). 1월 10일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망사고 폐쇄회로(CC)TV 영상.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 사례를 통해 유류 가격과 유류 소비량 변화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그는 올해 평균 유가가 ℓ당 휘발유 1500원, 경유 1300원 미만으로 전년 대비 16~20% 하락할 것으로 보이며,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최대 8% 증가해 52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행거리가 늘면 사고가 많이 발생합니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때도 주행거리가 짧은 이에게 혜택의 폭을 늘리고 장거리 주행자에게는 할증제도를 도입하는 식으로 교통 혼잡을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2000년대 초반 국가적으로 ‘교통사고 줄이기 대책단’이 운영되고 2년 만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만 명에서 7000명대로 줄었는데, 이런 기관을 상설화해 주도적으로 정책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겠죠. 예산이 문제라면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게 자동차 앞뒤 모든 좌석 안전띠 착용 법제화입니다. 많은 국가가 뒷좌석까지 안전띠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고 지키지 않으면 범칙금을 부과합니다. 우리도 이를 의무화한다면 교통사고 사망률은 절반 가까이 떨어질 겁니다.”
진짜 교통 선진국으로 가려면
전문가들은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줄어든 게 교통문화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의료기술과 응급구호 체계의 발달, 미끄럼 방지, 에어백 설치 등 자동차의 안전성 강화, 도로 환경 보완 등으로 큰 사고 발생은 피했지만 자잘한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정강 녹색교통정책연구소장은 “운전자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는 OECD 교통사고 사망률 1위인데, 2위 일본과도 수치적으로 차이가 크고 감소 속도도 더딘 편이에요. 일본의 자동차 운전교습소를 흉내 낸 운전전문학원제를 도입한 것도 사고율을 높인 원인 중 하나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학과 시험 단계에서 안전 운전 마인드를 익히는 걸 중요하게 여깁니다. 돈 주면 딸 수 있는 면허, 쉽게 따는 면허만 강조할 게 아니라 교통사고를 내면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도록 교육 단계부터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장택영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발생 건수가 증가한 것은 사고 발생 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신고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라며 “교통사고에 대한 공적 확인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에서는 경찰의 리포트를 첨부해야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데, 우리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어 남용과 악용 여지가 있습니다. 사고 후 처리 결과를 사고 예방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고를 내면 가해자가 받는 악영향이 커야 ‘두 번 다시 사고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은 ‘보험 처리하면 되지’라는 생각부터 합니다.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교통안전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예산이 제대로 추진됐는지 모니터링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4000명대로 떨어진 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