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관피아 척결’ 관련 전국 검사장회의가 열렸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5월 27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주례 간부회의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은 의미심장한 용어를 선택했다.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을 ‘청해진해운의 운영자’로 못 박았고 유 전 회장 일가를 ‘세월호 사고 관련 책임자들’이라고 규정했다. 검찰이 유 전 회장에게 회사 돈을 빼돌린 횡령과 배임, 조세포탈 혐의 외에도 300여 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결론, 즉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한 것이다.
세월호 사고 원인을 수사 중인 검경합동수사본부(수사총괄 안상돈 광주고등검찰청 차장)는 청해진해운 압수수색 등 수사 초기 과정에서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 회장’으로 표기된 문서 2건을 확보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하루 전인 4월 15일 작성한 ‘청해진해운 인원 현황표’와 비상연락망이 그것. 현황표에는 유 전 회장이 ‘회장’으로 명시됐으며 유 전 회장의 사번 ‘A99001’도 표시돼 있다. 이 사번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회사 설립일인 1999년 2월 24일 가장 먼저 입사해 1번을 부여했다는 의미다.
또 유 전 회장 일가의 경영 비리를 수사하는 인천지방검찰청(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경영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와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 증거만으론 “회사 주식 한 주도 갖고 있지 않고 사진만 찍으러 다녔을 뿐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는 유 전 회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법조계 의견이 엇갈렸다.
세월호에 개인 전시실 만들라고 지시
세월호 침몰 사고 공동정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한식 청해진 해운 대표.
이후 김 대표는 나미노우에호의 이름을 세월호로 바꾸고 여객실과 화물적재 공간을 늘린 뒤 유 전 회장의 개인전시실을 만들려고 2012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세월호 수리 및 증축공사를 진행, 그해 3월 15일부터 운항을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김 대표가 유 전 회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것.
하지만 적자가 누적되자 청해진해운 간부들은 지난해 11월 기획관리팀에서 작성한 ‘제주항로 선박운영 구조조정안’을 기반으로 세월호 매각 방안을 포함한 인천-제주 항로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며, 그 결과 세월호의 복원성에 문제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매각을 결정했다. 김 대표는 간부 회의에서 도출한 결론을 올해 1월쯤 유 전 회장에게 “증축공사로 세월호의 복원성에 문제가 생겨 화물을 적게 실을 수밖에 없으며 화물을 많이 싣게 되면 과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매각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함께 보고했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은 김 대표의 보고를 받고도 복원성 문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선령이 먼저 25년을 초과하는 오하마나호를 매각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세월호 복원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 계속 운항하라고 지시한 것이 침몰 사고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이런 세월호와 관련한 구체적인 경영 보고와 지시가 반복됐을 뿐 아니라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으로부터 최근까지 월급 1000만 원과 기타 상여금을 받아왔다는 내용이 적힌 근로소득 지급명세서도 검찰이 확보했다. 이런 증거들 때문에 김 총장의 발언에서도 드러나듯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청해진해운의 실운영자’이며 그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부당하게 빼돌린 2398억 원 추정
검찰은 5월 28일 유 전 회장 일가의 실명 재산에 대해 기소 전 추징보전 명령을 청구했다. 도주한 유 전 회장 일가를 붙잡아놓고 숨겨둔 재산을 찾아내 자백을 받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단 드러난 재산이라도 ‘동결’해놓고자 한 조치다. 추징보전이란 피의자가 범죄로 얻은 재산을 형이 확정되기 전 빼돌려 추징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사전에 막으려고 양도나 매매 등 처분행위를 일절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민사상 가압류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검찰은 계열사로부터 부당하게 빼돌린 범죄 수익이 유 전 회장 1291억 원, 장녀 섬나(48) 씨 492억 원, 장남 대균(44) 씨 56억 원, 차남 혁기(42) 씨 559억 원 등 총 2398억 원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밝힌 1차 추징보전 대상은 유 전 회장과 섬나, 대균, 혁기 씨 등 4명의 실명 재산으로 은행 예금(22억 원), 서울 강남구 삼성동 건물과 서초구 염곡동 대지 등 부동산 159건(공시지가 기준 126억1000만 원), 대균 씨 명의의 벤틀리 아나지 승용차와 혁기 씨 명의의 플라잉스퍼 승용차 등 차량 5대(13억700만 원) 등 161억1700만 원 상당이다. 추징보전 대상에 포함된 다판다 등 계열사 주식 63만5080주와 대균, 혁기 씨가 각각 4.7%씩 보유한 보현산영농조합법인 지분의 시가도 추후 산정할 계획이다.
일단 부패재산몰수특례법으로 재산 확보
검찰은 유 전 회장 일가가 빼돌린 금액을 횡령 배임에 의한 범죄 수익 및 책임 재산이라 판단하고 여기에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특례법)을 적용했다. 피해를 입은 회사는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데, 각 회사에서 유 전 회장의 지위와 구실,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회사가 이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다. 현행 부패재산몰수특례법은 횡령·배임 범죄 피해자(유 전 회장 측 회사들)가 재산반환청구권이나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없는 등 피해 회복이 곤란하다고 인정될 경우 몰수 및 추징을 허용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따른 보상금 및 구조비용은 최소 6000억 원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추징금은 국고로 귀속할 수 없고 범죄 피해자(계열사)에게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세월호 보상금에 충당할 수는 없지만, 정부가 나중에 청해진해운에 구상권을 청구할 경우에 대비해 일정 금액을 유 전 회장 일가의 책임재산으로 남겨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검찰은 유 전 회장 일가의 차명 재산도 계속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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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보도문]
2014년 06월 02일자(주간동아 939호) ‘구원파에 농락…검찰 ‘허탕 수색’ 참담‘ 기사와 2014년 06월 09일자(주간동아 940호) ‘유병언에 업무상 과실치사 기소 방침‘ 제하 기사 중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이라거나 실질적 운영자”란 표현과 관련해 유 전 회장측은 “유 전 회장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주식은 물론,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회사들의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으므로 실소유주가 아닐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운영하지 않았다”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