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 김모 씨는 약국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수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됐다. 돈 문제로 아내와 다툼이 잦아지자 약국 규모를 줄여 이사하면서 아예 그곳에 눌러앉았다. 한 달째 약국 한편에 야전침대를 들여놓고 생활하면서 집에는 가끔 한 번씩 얼굴을 비치다 최근에는 이마저 끊었다. 김씨는 “집에 들어가 봤자 아이들은 나를 무시하고, 아내는 싸우자고 덤빈다. 열심히 돈 벌어다 줄 때는 아무 소리 안 하다가 지금 와서 가장 구실을 제대로 못하니까 사람 취급도 안 한다. 지금처럼 지내는 게 속 편하다”고 했다.
최근 집 나가는 남편이 적지 않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가출과 관련한 이혼 상담은 2011년 453건, 2012년 499건, 2013년 585건으로 증가 추세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장은 “전체 상담 건수가 증가해서 그런지 가출 관련 상담도 따라서 늘었다”고 말했다.
집 나가 찜질방과 사우나 전전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이윤수 박사(비뇨기과 원장)는 “밤일(?)이 시원찮다 보니 퇴근 후에도 술 먹고 밖으로 돌다 아내와 다투고 가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연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 결혼 후 성기능장애가 생겨 2세 출산 문제로 고민하던 30대 남자 환자는 부인이 배란기를 따져 디데이(D-Day)를 잡고 벼르는 통에 너무 괴로워 가출 직전 상태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적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한 가출도 있지만 ‘마마보이’ 성향을 가진 젊은 층에서 가출 문제로 이혼 법정까지 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 박사는 “이혼 조정 때 보면, 마마보이 가운데 의외로 명문대 나오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모범생이 많다. 이들은 자랄 때 가정에서 엄마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봐왔고 자기 생활도 엄마에 의해 좌지우지됐기 때문에 부부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면 결단을 못 내리고 회피하면서 아내에게 미룬다. 의사 표시를 명확히 하는 걸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담 때문에 부부 갈등이나 뭔가 결정할 일이 생기면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로 가출하기도 한다”고 했다.
외도나 경제적 문제, 종교 갈등, 부부간 성격 차이 등으로 가출하는 남편을 둔 주부의 하소연과 경험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느 주부는 “과거 남편이 가출해 4개월 만에 집에 들어온 적이 있다”며 “가출하면 전화통화, 문자메시지에 일절 답이 없어 속을 까맣게 태우더니 이젠 본가로 들어가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며 안 들어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드라마를 보다 내용을 두고 의견이 갈려 말다툼으로 이어졌는데 남편이 집을 나갔다”고 걱정하는 아내, 새로 산 침대보가 맘에 안 들어 집에서 자기 싫다며 나간 철없는 남편 때문에 속 끓이는 아내 등 갖가지 사연이 속출하고 있다.
한편 인터넷에선 ‘며칠간 단식투쟁을 했더니 남편이 싹싹 빌더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애들 데리고 친정으로 가출한 뒤 남편이 와서 빌 때까지 들어가지 마라’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고 남편 짐을 싸서 문 밖에 두라’ 등 남편의 가출 버릇을 잡는 방법을 훈수하는 글도 이어진다.
남편들이 가출해 주로 가는 곳은 회사 근처 찜질방이나 24시간 사우나, PC방 등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 노숙인 담당관 김태섭 경위는 “매일 영등포역 일대를 순찰하는데 50대 이하 가출 남편이 최근 영등포역 일대 PC방에 70명, 다방에 30명, 길거리 노숙자로 50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이 밖에도 몇 달씩 가출해 고시원에 묵는 경우도 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40대 초반 이모 씨는 평소 성격 차이로 아내와 자주 부부싸움을 하다 두 달 전 집을 나왔다. 그는 “고시원은 늦게 들어가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며 “주변에 맛있는 음식점이 널려 있고 빨래도 세탁소에 맡기면 깔끔하게 다 해준다. 아주 편하고 자유롭다”고 했다. 부부싸움이 빌미가 됐지만 그가 집을 나온 이유는 따로 있다. 이씨는 “애들은 나를 본체만체하고 모든 가정생활이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퇴근해 집에 들어가도 재미가 없었다. 아내는 눈 마주치면 돈 얘기만 했다. 밖에서 생활해보니 적은 돈으로도 불편함 없이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와이프는 월급을 다 갖다 줘도 불만이더라. 솔직히 집에 들어가기 싫지만 타이밍을 놓칠까 봐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근무태만에 의한 잦은 이직과 사채 문제로 아내와 3년째 갈등을 겪고 있는 40대 후반 이모 씨는 한 달 전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산다. 그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집에 들어가 봤자 아내나 아이와 생활 사이클이 안 맞아 얼굴 볼 시간도 없다. 아내 잔소리를 듣는 것보다 아예 부딪치지 않는 게 속 편하다. 가끔 한 번씩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약간의 어려움 있어도 회피심리
조경애 소장은 “가장의 무책임한 가출은 아이에게 불안감 등을 안겨줘 정서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머리 맞대고 해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가부장적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진 건 긍정적 측면이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희박해지고 있다. 부모 또는 부부가 될 준비 없이 결혼한 젊은 층은 약간의 어려움과 갈등만 생겨도 가출 등 회피심리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가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자칫 법정에 설 수도 있다. 우리 민법은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두고 있다. 이를 근거로 아내는 가출 남편을 상대로 ‘동거청구에 관한 조정’을 청구할 수 있다. 조정이 실패하면 재판을 받는데 2009년 서울가정법원은 가출한 30대 초반 남편에게 “가정에 복귀해 가족을 돌보며 살라”는 부부동거 명령을 내렸다. 이 부부는 2007년 결혼해 이듬해 딸을 낳았지만 남편이 집을 나간 뒤 생활비와 양육비를 주지 않자 부인이 남편을 상대로 ‘심판청구’를 했던 것. 이 경우 남편이 끝내 귀가를 거부하면 강제귀가 조치를 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이혼하면 남편이 유책배우자가 되고 위자료 산정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습관성 단기 가출 역시 이혼소송에서 남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전인중 한국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장기간 가출하면 부부간 관계 회복 기회를 잃게 된다. 가출을 예방하려면 부부가 평소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고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한 “개인 인권을 중시하다 보니 가정이 개인 권익보다 우선한다는 법조차 없다. 가정은 국가를 이루는 기초다. 가출을 예방하려면 가정의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법적, 제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집 나가는 남편이 적지 않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가출과 관련한 이혼 상담은 2011년 453건, 2012년 499건, 2013년 585건으로 증가 추세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장은 “전체 상담 건수가 증가해서 그런지 가출 관련 상담도 따라서 늘었다”고 말했다.
집 나가 찜질방과 사우나 전전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이윤수 박사(비뇨기과 원장)는 “밤일(?)이 시원찮다 보니 퇴근 후에도 술 먹고 밖으로 돌다 아내와 다투고 가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연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 결혼 후 성기능장애가 생겨 2세 출산 문제로 고민하던 30대 남자 환자는 부인이 배란기를 따져 디데이(D-Day)를 잡고 벼르는 통에 너무 괴로워 가출 직전 상태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적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한 가출도 있지만 ‘마마보이’ 성향을 가진 젊은 층에서 가출 문제로 이혼 법정까지 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 박사는 “이혼 조정 때 보면, 마마보이 가운데 의외로 명문대 나오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모범생이 많다. 이들은 자랄 때 가정에서 엄마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봐왔고 자기 생활도 엄마에 의해 좌지우지됐기 때문에 부부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면 결단을 못 내리고 회피하면서 아내에게 미룬다. 의사 표시를 명확히 하는 걸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담 때문에 부부 갈등이나 뭔가 결정할 일이 생기면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리로 가출하기도 한다”고 했다.
외도나 경제적 문제, 종교 갈등, 부부간 성격 차이 등으로 가출하는 남편을 둔 주부의 하소연과 경험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느 주부는 “과거 남편이 가출해 4개월 만에 집에 들어온 적이 있다”며 “가출하면 전화통화, 문자메시지에 일절 답이 없어 속을 까맣게 태우더니 이젠 본가로 들어가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며 안 들어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드라마를 보다 내용을 두고 의견이 갈려 말다툼으로 이어졌는데 남편이 집을 나갔다”고 걱정하는 아내, 새로 산 침대보가 맘에 안 들어 집에서 자기 싫다며 나간 철없는 남편 때문에 속 끓이는 아내 등 갖가지 사연이 속출하고 있다.
한편 인터넷에선 ‘며칠간 단식투쟁을 했더니 남편이 싹싹 빌더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애들 데리고 친정으로 가출한 뒤 남편이 와서 빌 때까지 들어가지 마라’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고 남편 짐을 싸서 문 밖에 두라’ 등 남편의 가출 버릇을 잡는 방법을 훈수하는 글도 이어진다.
남편들이 가출해 주로 가는 곳은 회사 근처 찜질방이나 24시간 사우나, PC방 등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 노숙인 담당관 김태섭 경위는 “매일 영등포역 일대를 순찰하는데 50대 이하 가출 남편이 최근 영등포역 일대 PC방에 70명, 다방에 30명, 길거리 노숙자로 50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최근 가정 내 사소한 다툼으로 집을 나가 찜질방 등에서 생활하는 남편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근무태만에 의한 잦은 이직과 사채 문제로 아내와 3년째 갈등을 겪고 있는 40대 후반 이모 씨는 한 달 전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산다. 그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집에 들어가 봤자 아내나 아이와 생활 사이클이 안 맞아 얼굴 볼 시간도 없다. 아내 잔소리를 듣는 것보다 아예 부딪치지 않는 게 속 편하다. 가끔 한 번씩 집에 들어간다”고 했다.
약간의 어려움 있어도 회피심리
조경애 소장은 “가장의 무책임한 가출은 아이에게 불안감 등을 안겨줘 정서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머리 맞대고 해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가부장적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진 건 긍정적 측면이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희박해지고 있다. 부모 또는 부부가 될 준비 없이 결혼한 젊은 층은 약간의 어려움과 갈등만 생겨도 가출 등 회피심리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가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자칫 법정에 설 수도 있다. 우리 민법은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두고 있다. 이를 근거로 아내는 가출 남편을 상대로 ‘동거청구에 관한 조정’을 청구할 수 있다. 조정이 실패하면 재판을 받는데 2009년 서울가정법원은 가출한 30대 초반 남편에게 “가정에 복귀해 가족을 돌보며 살라”는 부부동거 명령을 내렸다. 이 부부는 2007년 결혼해 이듬해 딸을 낳았지만 남편이 집을 나간 뒤 생활비와 양육비를 주지 않자 부인이 남편을 상대로 ‘심판청구’를 했던 것. 이 경우 남편이 끝내 귀가를 거부하면 강제귀가 조치를 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이혼하면 남편이 유책배우자가 되고 위자료 산정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습관성 단기 가출 역시 이혼소송에서 남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전인중 한국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장기간 가출하면 부부간 관계 회복 기회를 잃게 된다. 가출을 예방하려면 부부가 평소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고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한 “개인 인권을 중시하다 보니 가정이 개인 권익보다 우선한다는 법조차 없다. 가정은 국가를 이루는 기초다. 가출을 예방하려면 가정의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법적, 제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