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 다리와 시가지 전경.
몇 번을 가도 늘 새로운 모습
프라하 여행이 시작되는 구시가 광장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정표를 보며 걸으면 쉽게 카를 다리를 만날 수 있다.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돌다리인 카를 다리에 섰다. 웅장한 고딕 양식 교탑을 지나면 언제나 거리 악사들이 내는 음악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파는 노점을 만나게 된다. 카를 다리 난간에 있는 30개 성상이 이 돌다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시간과 날씨, 계절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카를 다리는 몇 번을 가도 늘 새로운 곳이다. 또 프라하 여행의 다리 구실을 하기도 한다. 프라하 여행의 중심인 구시가 광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적격인 카파 섬과도 연결돼 있다. 또한 아기자기한 쇼핑 거리인 네루도바 거리와 프라하 성과도 연결된다. 여러모로 카를 다리는 프라하 여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놓쳐서는 안 될 한 가지. 구시가 쪽 탑 위에 오르면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카를 다리와 프라하 성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카를 다리 위에서는 눈에 담기는 모든 것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카메라 렌즈를 어디에 둬도 ‘엽서 사진’같은 풍광이 찍힌다. 어느 누구라도 예술가로 만드는 곳이 여기 프라하인 것 같다. 도도하게 흐르는 블타바 강을 따라 나도 어디론가 흘러가고 싶어진다.
카를 다리 난간에서 바라본 풍경(위)과 다리 위의 화가.
이곳 카를 다리 위 30개 성상 중에도 소원을 비는 곳이 있다. 반질반질하게 닳은 곳이 그곳이다. 다리에서 가장 오래된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 아래 네포무크의 순교를 묘사한 청동판과 충직한 개를 쓰다듬는 모습의 청동판 역시 반질반질하게 닳았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은 모두 저마다 소원을 빌고 또 그 소원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누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곳곳에 숨어 있는 이 작은 이정표가 여행자를 행복하게 한다. 잠시 빈틈을 이용해 나도 슬쩍 소원을 빌었다.
블타바 강 돌다리 위 예술가들
바닥의 돌 하나에도, 조각해 세워놓은 성상에도, 그리고 다리 위 여러 예술가에게도 저마다 사연이 있다. 한낮 다리 위는 인파에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오직 한 가지 목적, 다리를 건너려고 전 세계에서 찾아온 여행자에겐 이 또한 즐거움이다. 예수 수난 십자가 상 아래 서서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다리 위 어느 곳에서든 사방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본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공예품을 사려고 흥정하는 사람들을 본다. 귀에 익은 신나는 연주를 듣고 동전을 넣으며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중년 여인을 본다. 다리 난간에 기대 강을 내려다보는 사람을 본다.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누구든 특별하게 보인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예술가들이 사는 곳, 프라하. 얼굴을 보니 알겠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정말 행복한 얼굴들이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게 예술을 즐기는 곳이 프라하다.
여행길에서 언제나 만나는 그들, 거리 악사에게선 화려하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음악을 통해 소통하려 하는 ‘진심’을 들을 수 있다. 익숙한 멜로디와 감미로운 연주는 여행자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들의 진심과 순수한 감정이 묻어난 연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돼 발걸음을 멈춘 여행자에게 감동을 선물하며 마음속 ‘기억’ 어딘가에 담아두게 한다.
카를 다리 위의 악사(위)와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성 요한 네포무크 순교 부조.
‘악마와 계약’ 등 수많은 이야기 간직
카를 다리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다리를 만들 때 홍수로 다리가 무너지자 어떤 사람이 보수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리가 완성되면 다리를 건너는 첫 번째 사람의 영혼을 갖는다는 조건으로 그 사람이 악마와 계약을 한 것이었다. 그 사람은 그런 사악한 계약을 한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희생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자신의 아내가 희생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엄마 영혼을 위로하려고 다리 위에서 연주하는 악사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에 얽힌 이야기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나 다리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모양이다. 돌로 다리를 만든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함께 적잖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리에 전해지는 이야기 대부분이 ‘슬픔’이기에 안타깝다. 다리 위를 걷는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것과는 대조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슬픔’ 후에는 반드시 ‘기쁨’이 있다는 점을 믿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블타바 강 위에 가로놓인 카를 다리는 파리의 퐁뇌프나 런던의 런던 브리지보다 낭만적이며 무엇보다 프라하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계절과 시간, 날씨에 따라 다른 분위기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다리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프라하의 풍광 앞에서 과연 냉철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이 이뤄진다는 연인들의 다리 카를 다리에선 오늘도 새로운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길이 520m로 단 10분이면 건널 수 있지만, 나는 지금도 다리 위에서 서성이며 아름다운 다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수많은 지구촌 여행자와 눈웃음을 나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도도히 흐르는 블타바 강과 조화를 이룬 카를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