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은 궁금증이었다. 북한 평안북도 영변에서 실제로 핵 유출사고가 벌어지면 한국이 입게 될 피해는 과연 얼마나 될까. 3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개회식 기조연설에서 “영변 핵시설에서 화재가 나면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한 핵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국내 원자력공학 전문가 사이에서는 박 대통령 발언의 사실 여부를 두고 한차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피해 규모가 한반도 전역은 물론 중국 동북지방과 일본 홋카이도까지 이를 것이라는 주장과, 터무니없이 과장됐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선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도 이러한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북한 외무성,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새로운 핵실험’ 발언과 함경북도 길주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의 활동이 증가했다는 위성사진 분석이 이어지면서 북한 핵 문제가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핵 개발의 핵심 기지 역할을 해온 영변 단지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관심 역시 함께 폭증했다.
‘동북아 핵 재앙’과는 거리 멀어
‘주간동아’는 영변 핵 시설에서의 대규모 유출사고가 한반도에 어떤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했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이 개발해 안보 당국과 전문연구소에서 사용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HPAC(Hazard Prediction and Assessment Capability)가 그것. 미 국방부와 관련 전문기관들이 냉전기간 수집해온 관련 실험자료를 기반으로 만든 이 프로그램에는 원자력발전소와 재처리시설 등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 규모를 산출하는 시나리오가 포함돼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도 다양한 해외 전문연구기관이 HPAC를 활용해 피해범위를 분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변 핵 단지에서 대규모 유출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준하는 초대형 피해가 발생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취재과정에서 확보한 국내외 전문연구기관의 시뮬레이션 분석도 마찬가지. 특히 휴전선이나 국경을 넘어 남한 등 주변국에까지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평안도 인근 지역에 상당한 피해와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동북아 핵 재앙’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영변 핵 단지에서 핵 유출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시설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북한이 1986년 건설한 5MW 규모의 흑연감속로가 있고, 여기서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방사화학실험실이 있다. 이와 함께 북측이 2010년 공개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100MW 출력의 경수로가 있다.
그중 방사화학실험실의 경우 북측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폐연료봉의 재처리 작업이 완료됐다고 선언했다. 작업이 완료된 핵물질을 이곳에 보관할 개연성이 높지 않음을 감안하면, 이곳에 화재가 발생한다 해도 대규모 유출사고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 5MW 흑연로는 핵물질의 양 같은 정밀 데이터를 추산하기 쉽지 않지만, 100MW 경수로의 경우 유사시 방사성 낙진을 만들어낼 핵종의 양이 개략적으로 공개돼 있다. 두 원자로의 규모를 감안하면 5MW 흑연감속로의 피해가 100MW 경수로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간동아’는 100MW 경수로의 사고 시나리오를 주로 시뮬레이션했다.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이 경수로의 핵연료에 들어 있는 세슘(Cs-137) 등 방사능 피해를 입히는 주요 핵종의 양을 계산해 실제 사고 시 얼마나 퍼져나갈지 따져보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이 경수로와 유사한 냉각 시스템과 연료봉 재질, 규모를 가진 미국의 초기 원자로 데이터를 원용해 체르노빌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예상되는 피해범위를 추산하는 작업이다.
두 시나리오 모두 사고의 심각도는 체르노빌 원전 4호기의 폭발사고 수준으로 설정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폭발 이후 화재를 진압한 10일 후까지 노심 속에 들어 있는 주요 방사성 물질의 30~50%가 외부에 유출됐고 그중 상당 부분이 폭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새어나온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이를 준용해 HPAC에도 비슷한 비율의 유출 규모와 10일 후라는 관찰시간을 설정했다. 피해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상상태는 남한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살펴보기 위해 10일 내내 영변에서 서울 방향(330도 북풍)으로 초속 10m 수준의 바람이 일관되게 부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했다.
경수로를 1년간 가동해 총 592TBq(테라베크렐)의 세슘137이 함유돼 있는 상황을 가정한 첫 번째 시뮬레이션 결과는 미미했다. HPAC는 시뮬레이션 결과로 도출된 피해범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크게 6단계로 나누어 제시하는데, 범위 내의 모든 인원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600rem(렘) 이상의 1단계 피폭지역은 반경 수십m 내외에 그쳤고, 노출자가 10년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50~150rem의 4단계 지역도 수km 수준에 머물렀다.
후쿠시마 이상의 타격 어려울 것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설정한 연간 허용치 이상에 해당해 어떤 식으로든 방사선 영향을 받는 6단계 범위 역시 50km 내외. 영변에서 평양까지가 대략 70km, 서울까지가 270km에 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폭발사고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 인구밀집지역은 인구 32만 안팎의 개천(영변 남측 15km)과 24만 수준의 안주(영변 남측 30km) 정도다. 연간 허용치 이상의 방사성 낙진이 휴전선을 넘어 유의미한 피해를 주는 경우는 발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1960년대 가동됐던 미국 미시간 주의 빅록포인트(Big Rock Point) 발전소의 데이터를 원용해 체르노빌 수준의 사고를 시뮬레이션한 두 번째 시나리오 결과는 첫 번째보다 다소 심각하다. 4단계 피폭지역이 남측 10km 지점까지 늘어나고, 5단계 피폭지역은 40km, 연간 허용치를 넘는 6단계 범위는 150km를 넘어서 평양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적절한 대피작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영변에 거주하는 상당수 주민은 10년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고, 안주 거주자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영구적인 피해를 입을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휴전선을 넘어 수도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꾸로 10일 내내 고정적으로 남풍이 분다면 중국 단둥 등 북·중 접경지역 역시 피해범위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이 경우도 중국 측이 입는 피해는 연간 허용치를 간신히 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쉽게 말해 어떤 경우든 영변에서의 대규모 핵 유출사고가 주변국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상의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는 어렵다는 결론. 이러한 차이는 영변 경수로의 용량이 워낙 작기 때문으로, 일반적인 발전용 원자로(1000MW 안팎)의 10분의 1에 그치다 보니 포함돼 있는 핵물질의 양도 적고 따라서 피해 규모도 작을 수밖에 없다.
시뮬레이션 준비과정에서 입수한 해외의 유사한 분석결과는 이보다도 피해범위가 훨씬 좁았다. 북한 에너지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의 데이비드 폰히펠 박사가 2013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가 대표적이다.
짧은 외신 근거로 국제회의 연설
역시 미국 빅록포인트 원자로 데이터를 원용한 이 시뮬레이션의 경우 연간 허용치를 넘는 방사선이 미치는 범위는 15km 안팎에 그쳤다. 15년 뒤까지 시간범위를 확장해 누적 피폭량을 따져봐도 70km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 역시 개천과 안주 정도만이 낮은 수준의 피해를 입을 뿐, 평양이나 서울은 아예 피해범위에 들지 않는다는 결과다. 영변에서는 전체 인구의 1% 정도가 치사량 이상의 방사선에 피폭되지만 개천의 경우 0.064%, 평양은 0.006%, 서울은 0.002%까지 확률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폰히펠 박사는 ‘남한이 입을 사회적, 정치적 충격은 크겠지만 방사선 영향 자체는 경미하다(modest)’고 결론짓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 당국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분석자료를 작성한 바 있다는 사실. 주무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기 두 달 전인 2월 18일 최원식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북한 영변 원자로 방사능누출사고 국내 영향 예측’ 평가보고서가 그것이다. 영변 5MW 흑연로와 같은 형태인 영국 윈드스케일(Windscale) 원자로에서 1957년 발생한 사고 데이터를 원용한 분석이다. 역시 영변에서 서울 방향으로 고정적으로 바람이 부는 상황을 가정해 따져본 결과 서울의 방사선 피폭량은 연간 자연 피폭선량(3mSv)의 0.00028%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 보고서는 ‘종합의견’ 항목에서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자료는 박 대통령의 ‘동북아 핵 재앙’ 연설과는 거리가 먼 분석결과를 일관되게 보여준다. 핵안보정상회의 기조연설 내용은 영국의 ‘IHS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가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둔 1월 26일 게재한 기사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는 “영변 원자로가 폭발한다면 북한 전역과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 동북 지역은 물론 서울도 방사능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결과에 근거한 기사는 아니었다. 이미 정부 주무기관의 관련 분석결과가 보고서 형태로 정리돼 있음에도, 그와 상반되는 400단어 안팎의 짧은 외신기사를 근거로 대통령의 국제회의 연설문이 작성된 셈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앞서 보고서를 작성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이은철 위원장도 당시 핵안보정상회의에 동행했다는 점. ‘주간동아’는 위원회 보고서와 대통령의 발언 내용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청와대 측이 기조연설에 앞서 위원회나 이 위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자문한 적이 있는지 질의했으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질의 시점부터 일주일이 지난 마감시한까지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도 이러한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북한 외무성,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새로운 핵실험’ 발언과 함경북도 길주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의 활동이 증가했다는 위성사진 분석이 이어지면서 북한 핵 문제가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핵 개발의 핵심 기지 역할을 해온 영변 단지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관심 역시 함께 폭증했다.
‘동북아 핵 재앙’과는 거리 멀어
‘주간동아’는 영변 핵 시설에서의 대규모 유출사고가 한반도에 어떤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했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이 개발해 안보 당국과 전문연구소에서 사용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HPAC(Hazard Prediction and Assessment Capability)가 그것. 미 국방부와 관련 전문기관들이 냉전기간 수집해온 관련 실험자료를 기반으로 만든 이 프로그램에는 원자력발전소와 재처리시설 등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 규모를 산출하는 시나리오가 포함돼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도 다양한 해외 전문연구기관이 HPAC를 활용해 피해범위를 분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변 핵 단지에서 대규모 유출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준하는 초대형 피해가 발생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취재과정에서 확보한 국내외 전문연구기관의 시뮬레이션 분석도 마찬가지. 특히 휴전선이나 국경을 넘어 남한 등 주변국에까지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평안도 인근 지역에 상당한 피해와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동북아 핵 재앙’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영변 핵 단지에서 핵 유출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시설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북한이 1986년 건설한 5MW 규모의 흑연감속로가 있고, 여기서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방사화학실험실이 있다. 이와 함께 북측이 2010년 공개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100MW 출력의 경수로가 있다.
그중 방사화학실험실의 경우 북측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폐연료봉의 재처리 작업이 완료됐다고 선언했다. 작업이 완료된 핵물질을 이곳에 보관할 개연성이 높지 않음을 감안하면, 이곳에 화재가 발생한다 해도 대규모 유출사고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 5MW 흑연로는 핵물질의 양 같은 정밀 데이터를 추산하기 쉽지 않지만, 100MW 경수로의 경우 유사시 방사성 낙진을 만들어낼 핵종의 양이 개략적으로 공개돼 있다. 두 원자로의 규모를 감안하면 5MW 흑연감속로의 피해가 100MW 경수로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 데이비드 폰히펠 박사가 작성한 영변 핵 사고 시 거리별 피폭 데이터. 15년 누적 그래프를 살펴봐도 평양과 서울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편으로 나타난다.
두 시나리오 모두 사고의 심각도는 체르노빌 원전 4호기의 폭발사고 수준으로 설정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폭발 이후 화재를 진압한 10일 후까지 노심 속에 들어 있는 주요 방사성 물질의 30~50%가 외부에 유출됐고 그중 상당 부분이 폭발로부터 72시간 이내에 새어나온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이를 준용해 HPAC에도 비슷한 비율의 유출 규모와 10일 후라는 관찰시간을 설정했다. 피해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상상태는 남한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살펴보기 위해 10일 내내 영변에서 서울 방향(330도 북풍)으로 초속 10m 수준의 바람이 일관되게 부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했다.
경수로를 1년간 가동해 총 592TBq(테라베크렐)의 세슘137이 함유돼 있는 상황을 가정한 첫 번째 시뮬레이션 결과는 미미했다. HPAC는 시뮬레이션 결과로 도출된 피해범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크게 6단계로 나누어 제시하는데, 범위 내의 모든 인원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600rem(렘) 이상의 1단계 피폭지역은 반경 수십m 내외에 그쳤고, 노출자가 10년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50~150rem의 4단계 지역도 수km 수준에 머물렀다.
후쿠시마 이상의 타격 어려울 것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설정한 연간 허용치 이상에 해당해 어떤 식으로든 방사선 영향을 받는 6단계 범위 역시 50km 내외. 영변에서 평양까지가 대략 70km, 서울까지가 270km에 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폭발사고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 인구밀집지역은 인구 32만 안팎의 개천(영변 남측 15km)과 24만 수준의 안주(영변 남측 30km) 정도다. 연간 허용치 이상의 방사성 낙진이 휴전선을 넘어 유의미한 피해를 주는 경우는 발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1960년대 가동됐던 미국 미시간 주의 빅록포인트(Big Rock Point) 발전소의 데이터를 원용해 체르노빌 수준의 사고를 시뮬레이션한 두 번째 시나리오 결과는 첫 번째보다 다소 심각하다. 4단계 피폭지역이 남측 10km 지점까지 늘어나고, 5단계 피폭지역은 40km, 연간 허용치를 넘는 6단계 범위는 150km를 넘어서 평양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적절한 대피작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영변에 거주하는 상당수 주민은 10년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고, 안주 거주자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영구적인 피해를 입을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휴전선을 넘어 수도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꾸로 10일 내내 고정적으로 남풍이 분다면 중국 단둥 등 북·중 접경지역 역시 피해범위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이 경우도 중국 측이 입는 피해는 연간 허용치를 간신히 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쉽게 말해 어떤 경우든 영변에서의 대규모 핵 유출사고가 주변국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상의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는 어렵다는 결론. 이러한 차이는 영변 경수로의 용량이 워낙 작기 때문으로, 일반적인 발전용 원자로(1000MW 안팎)의 10분의 1에 그치다 보니 포함돼 있는 핵물질의 양도 적고 따라서 피해 규모도 작을 수밖에 없다.
시뮬레이션 준비과정에서 입수한 해외의 유사한 분석결과는 이보다도 피해범위가 훨씬 좁았다. 북한 에너지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의 데이비드 폰히펠 박사가 2013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가 대표적이다.
짧은 외신 근거로 국제회의 연설
역시 미국 빅록포인트 원자로 데이터를 원용한 이 시뮬레이션의 경우 연간 허용치를 넘는 방사선이 미치는 범위는 15km 안팎에 그쳤다. 15년 뒤까지 시간범위를 확장해 누적 피폭량을 따져봐도 70km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 역시 개천과 안주 정도만이 낮은 수준의 피해를 입을 뿐, 평양이나 서울은 아예 피해범위에 들지 않는다는 결과다. 영변에서는 전체 인구의 1% 정도가 치사량 이상의 방사선에 피폭되지만 개천의 경우 0.064%, 평양은 0.006%, 서울은 0.002%까지 확률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폰히펠 박사는 ‘남한이 입을 사회적, 정치적 충격은 크겠지만 방사선 영향 자체는 경미하다(modest)’고 결론짓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 당국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분석자료를 작성한 바 있다는 사실. 주무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기 두 달 전인 2월 18일 최원식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북한 영변 원자로 방사능누출사고 국내 영향 예측’ 평가보고서가 그것이다. 영변 5MW 흑연로와 같은 형태인 영국 윈드스케일(Windscale) 원자로에서 1957년 발생한 사고 데이터를 원용한 분석이다. 역시 영변에서 서울 방향으로 고정적으로 바람이 부는 상황을 가정해 따져본 결과 서울의 방사선 피폭량은 연간 자연 피폭선량(3mSv)의 0.00028%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 보고서는 ‘종합의견’ 항목에서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자료는 박 대통령의 ‘동북아 핵 재앙’ 연설과는 거리가 먼 분석결과를 일관되게 보여준다. 핵안보정상회의 기조연설 내용은 영국의 ‘IHS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가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둔 1월 26일 게재한 기사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는 “영변 원자로가 폭발한다면 북한 전역과 러시아 시베리아, 중국 동북 지역은 물론 서울도 방사능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결과에 근거한 기사는 아니었다. 이미 정부 주무기관의 관련 분석결과가 보고서 형태로 정리돼 있음에도, 그와 상반되는 400단어 안팎의 짧은 외신기사를 근거로 대통령의 국제회의 연설문이 작성된 셈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앞서 보고서를 작성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이은철 위원장도 당시 핵안보정상회의에 동행했다는 점. ‘주간동아’는 위원회 보고서와 대통령의 발언 내용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청와대 측이 기조연설에 앞서 위원회나 이 위원장에게 관련 내용을 자문한 적이 있는지 질의했으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질의 시점부터 일주일이 지난 마감시한까지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