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4월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대학생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을 펼쳐 화제를 모았다. 정 부회장은 “신세계그룹의 경영이념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며 “사람 마음을 읽으려는 관심과 이해가 바로 인문학의 출발점이다. 신세계그룹은 앞으로 스펙만이 아닌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별해 뽑겠다”며 인문학적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간동아’는 인문학과 경영학의 융합을 잘 보여준 이 강연을 녹취해 게재한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정용진입니다. 제가 기업 경영자로 있으면서 비즈니스와 관련한 공식 석상이나 우리 회사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지만, 오늘처럼 회사 밖으로 나와 많은 분에게 말씀을 드리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학생 여러분을 만나니 굉장히 긴장되고, 또 아주 흥분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추운 겨울 동안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름다운 계절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데요. 대학생 여러분은 안타깝게도 이런 계절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기는커녕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또 도서관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 청춘의 최대 고민, 취업 문제 때문이겠죠. 더구나 스펙이 중요하다고 해서 없는 돈과 시간을 들여 잔뜩 스펙을 쌓아뒀더니, 이젠 난데없이 인문학적 소양이랍니다. 기운 빠지시죠. 짜증나시죠. 저라도 짜증날 것 같습니다.
‘인문학.’ 인문학자들조차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알 듯하면서도 애매한 그 영역, 그 가치에 대해 오늘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인문학은 인간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 또는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인텔 상호작용 및 경험 연구소 소장인 제네비브 벨 박사는 “공학적 사고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인문학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지’ ‘어떻게 하면 성공하지’가 아니라 ‘왜 사는가’ ‘무엇이 내 소명인가’를 살피자는 것이 인문학적 성찰입니다.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는 시대
그간 ‘How to’에 집중하던 우리는 이제 어려운 질문인 ‘Why’ ‘What’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읽으려는 관심과 이해가 바로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스펙이 좋은 사람을 사원으로 뽑았습니다. 우리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고 여러분은 스펙 쌓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았습니다. 과거에는 앞선 조직에서 내놓은 예측들을 잘 활용하는 사람을 인재라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스펙이 좋은 사람이 곧 우수 인재’라는 등식이 어느 정도는 설득력을 가진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너무나 급변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정답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게 돼버렸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이 급변하는 시대에 도대체 왜 인문학이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미래를 만들려면 세상을 다르게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실적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깊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이든 개인 생활이든, 행복하게 살려면 나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또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통찰력을 키우면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너무 쉽게 검색을 하고 있죠. 사색하지 않고 검색하는 우리가 당면하게 될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도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가 없이 ‘어떻게? ’에 집중하며 쓸려가던 우리를 회복하게 해줄 그 힘이 인문학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젊음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애정을 좀 더 갖고 생각해보면 그 젊음이 과연 건강한지 묻게 됩니다. 너무 피곤하고 지친 청춘이 안쓰러운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리더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저부터라도 ‘열심히’에 집중하던 우리 청년들에게 ‘제대로’ 사는 지표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입니다. 누가 취업 준비 잘되느냐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떠올리나요. 필요한 스펙의 높은 점수? 기업이나 경쟁률에 대한 정보? 멋지게 써둔 자기소개서나, 심지어 면접 때 입을 의상에 대해 말하는 이도 많습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외형적으로만 면접을 준비한다면 행여 어디에 입사한다 해도 또, 또, 또다시 면접을 봐야 할 것입니다. 국내 유수 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 모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조직, 제품 개발과 디자인, 마케팅 모든 분야에 걸쳐 인문학적 접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이 스마트폰만 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행동 패턴과 직관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제품과 서비스, 디자인에 반영한 결과입니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는, 기술공학을 대표하는 기업 구글도 채용 면접을 할 때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지원자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평가한 뒤 직원을 선발합니다.
우리 신세계그룹도 지금 채용 방식을 많이 바꾸려 합니다. 비슷비슷한 스펙만으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갖추고 주관이 건강한 차별화된 인재를 선발하려 합니다.
획일적 의식구조 상상만으로도 끔찍
여기서 우리가 인문학적 소양과 철학적 통찰력을 중시한다는 것은 이공계열보다 인문·사회계열을 우대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전공했느냐, 어떤 책을 읽었느냐 이런 문제를 떠나 그 사람이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관심, 이 세상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열린 세계관을 중요시하겠다는 뜻입니다.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집중하던 여러분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니 당연히 괴롭죠. 괴로울 겁니다. 저는 매년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직접 지원자들을 인터뷰합니다. 우리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은 대부분 훌륭한 스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많은 사람이 한결같이 똑같은 대답만 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지원자가 자신의 주관적 소신을 말하지 않고 마치 모범답안을 외운 듯 얘기하는 것을 볼 때면 참 안타까웠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전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좀 더 갖춘다면, 그 좋은 스펙이 참으로 더 빛날 텐데 하는 아쉬움을 자주 갖게 됩니다.
우리 회사만 해도 5만 명이 넘는 임직원이 일하는데, 그 사람들이 획일적인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면, 예측 불허인 날들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성장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조직이 성장하려면 건강한 소신과 주관을 가진 구성원이 다양한 의견과 토론 속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신세계그룹이 갑자기 인문학을 들고 나왔나, 도대체 유통회사와 인문학이 무슨 연관이 있기에 이런 프로그램(11개 대학에서 하는 인문학 강연)을 만들었나, 아마 이런 의문을 가진 분도 있을 겁니다. 신세계그룹 경영이념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인문, 예술, 문화를 통해 고객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지속적으로 관심 받고 확산되기를 소망하면서, 먼저 젊은 세대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세계그룹이 사회와 청년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인문학자는 아니지만, 인생을 좀 더 산 선배로서 오늘 제가 제안하는 다음 3가지를 여러분이 생활에서 실천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첫째, 고전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합니다. 고전을 읽는 것은 빠르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한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며,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성숙해집니다. 고전을 요약해놓은 것을 자꾸 뒤져보는 건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줄거리가 아닌 캐릭터를 보면서 자신을 자주 반추해보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요즘 뮤지컬과 영화로 유명해진 명작 ‘레미제라블’을 생각해봅시다. 사람은 대부분 장발장의 기구한 스토리에만 주목하죠.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장발장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물론, 자베르 경감에게 자신을 대입해보면서 그 사람의 철학과 나의 철학, 그 사람의 삶의 태도와 나의 태도를 비교하고 성찰한다면 훨씬 넓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살피는 것입니다. 고은의 시 ‘그 꽃’이 있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앞만 보고 달려갈 때 우리가 놓치는 것 가운데 정말 꽃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우리 인생에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챙기면서 가는 것이 인문학의 실천이라고 봅니다.
셋째,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참 좋은 시를 하나 더 소개할까요? 장석주의 ‘대추 한 알’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우리는 누구나 대추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겼고, 몇 개가 달렸는지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안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의 고뇌와 외로움, 즉 결과가 아닌 과정을 읽는 것이죠. 우리가 자신도, 타인도 이렇게 들여다볼 줄 안다면 좀 더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인문학 공부 기회 제공
인문학은 결코 취업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 인생을 더 풍요롭고 향기롭게 할 것이며,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 중심을 잡아주고 인생 방향을 제시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저는 혼란의 시대에 올바른 가치관과 남다른 생각을 갖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 리더들에게 ‘청년 영웅’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우리 신세계그룹에서 준비한 인문학 청년인재 양성 프로젝트 ‘지식향연’을 통해 청년 영웅들이 튼튼한 뿌리를 갖추며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합니다.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 전국 10개 대학에서 ‘지식향연’이 펼쳐지는데요. 저는 이 ‘지식향연’을 통해 이 시대 많은 젊은이가 인문학적 지혜와 성찰을 나누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가치를 찾게 되길 바랍니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인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닌 청년 영웅을 발굴해 전 세계 인문학의 중심지를 찾아가는 ‘그랜드 투어’ 같은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저는 앞으로 매년 지속할 이 ‘지식향연’을 통해 이뤄질 인문학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과 공부가 여러분 개인의 행복한 삶의 원천이 되길 기원합니다. 저와 신세계그룹의 응원이 여러분의 값진 미래를 키워가는 데 작지만 소중한 씨앗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스티브 잡스가 자주 인용하던 말이 있죠.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부족하나마 제 생각을 좀 더해서 말씀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미래를 만드는 시작은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해주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정용진입니다. 제가 기업 경영자로 있으면서 비즈니스와 관련한 공식 석상이나 우리 회사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지만, 오늘처럼 회사 밖으로 나와 많은 분에게 말씀을 드리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학생 여러분을 만나니 굉장히 긴장되고, 또 아주 흥분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추운 겨울 동안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름다운 계절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데요. 대학생 여러분은 안타깝게도 이런 계절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기는커녕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또 도서관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 청춘의 최대 고민, 취업 문제 때문이겠죠. 더구나 스펙이 중요하다고 해서 없는 돈과 시간을 들여 잔뜩 스펙을 쌓아뒀더니, 이젠 난데없이 인문학적 소양이랍니다. 기운 빠지시죠. 짜증나시죠. 저라도 짜증날 것 같습니다.
‘인문학.’ 인문학자들조차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알 듯하면서도 애매한 그 영역, 그 가치에 대해 오늘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전적 의미로 인문학은 인간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 또는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인텔 상호작용 및 경험 연구소 소장인 제네비브 벨 박사는 “공학적 사고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인문학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지’ ‘어떻게 하면 성공하지’가 아니라 ‘왜 사는가’ ‘무엇이 내 소명인가’를 살피자는 것이 인문학적 성찰입니다.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는 시대
그간 ‘How to’에 집중하던 우리는 이제 어려운 질문인 ‘Why’ ‘What’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읽으려는 관심과 이해가 바로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스펙이 좋은 사람을 사원으로 뽑았습니다. 우리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고 여러분은 스펙 쌓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았습니다. 과거에는 앞선 조직에서 내놓은 예측들을 잘 활용하는 사람을 인재라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스펙이 좋은 사람이 곧 우수 인재’라는 등식이 어느 정도는 설득력을 가진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너무나 급변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정답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게 돼버렸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이 급변하는 시대에 도대체 왜 인문학이 우리에게 필요할까요. 미래를 만들려면 세상을 다르게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실적 못지않게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깊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이든 개인 생활이든, 행복하게 살려면 나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또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통찰력을 키우면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너무 쉽게 검색을 하고 있죠. 사색하지 않고 검색하는 우리가 당면하게 될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기회도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가 없이 ‘어떻게? ’에 집중하며 쓸려가던 우리를 회복하게 해줄 그 힘이 인문학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젊음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애정을 좀 더 갖고 생각해보면 그 젊음이 과연 건강한지 묻게 됩니다. 너무 피곤하고 지친 청춘이 안쓰러운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리더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저부터라도 ‘열심히’에 집중하던 우리 청년들에게 ‘제대로’ 사는 지표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입니다. 누가 취업 준비 잘되느냐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떠올리나요. 필요한 스펙의 높은 점수? 기업이나 경쟁률에 대한 정보? 멋지게 써둔 자기소개서나, 심지어 면접 때 입을 의상에 대해 말하는 이도 많습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외형적으로만 면접을 준비한다면 행여 어디에 입사한다 해도 또, 또, 또다시 면접을 봐야 할 것입니다. 국내 유수 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 모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업의 조직, 제품 개발과 디자인, 마케팅 모든 분야에 걸쳐 인문학적 접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이 스마트폰만 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행동 패턴과 직관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제품과 서비스, 디자인에 반영한 결과입니다.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는, 기술공학을 대표하는 기업 구글도 채용 면접을 할 때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지원자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평가한 뒤 직원을 선발합니다.
우리 신세계그룹도 지금 채용 방식을 많이 바꾸려 합니다. 비슷비슷한 스펙만으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갖추고 주관이 건강한 차별화된 인재를 선발하려 합니다.
획일적 의식구조 상상만으로도 끔찍
여기서 우리가 인문학적 소양과 철학적 통찰력을 중시한다는 것은 이공계열보다 인문·사회계열을 우대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전공했느냐, 어떤 책을 읽었느냐 이런 문제를 떠나 그 사람이 가진 인간에 대한 이해,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관심, 이 세상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열린 세계관을 중요시하겠다는 뜻입니다.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에 집중하던 여러분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니 당연히 괴롭죠. 괴로울 겁니다. 저는 매년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직접 지원자들을 인터뷰합니다. 우리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은 대부분 훌륭한 스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많은 사람이 한결같이 똑같은 대답만 한다는 점입니다. 많은 지원자가 자신의 주관적 소신을 말하지 않고 마치 모범답안을 외운 듯 얘기하는 것을 볼 때면 참 안타까웠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전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좀 더 갖춘다면, 그 좋은 스펙이 참으로 더 빛날 텐데 하는 아쉬움을 자주 갖게 됩니다.
우리 회사만 해도 5만 명이 넘는 임직원이 일하는데, 그 사람들이 획일적인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면, 예측 불허인 날들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해결하고 성장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조직이 성장하려면 건강한 소신과 주관을 가진 구성원이 다양한 의견과 토론 속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신세계그룹이 갑자기 인문학을 들고 나왔나, 도대체 유통회사와 인문학이 무슨 연관이 있기에 이런 프로그램(11개 대학에서 하는 인문학 강연)을 만들었나, 아마 이런 의문을 가진 분도 있을 겁니다. 신세계그룹 경영이념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인문, 예술, 문화를 통해 고객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지속적으로 관심 받고 확산되기를 소망하면서, 먼저 젊은 세대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세계그룹이 사회와 청년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인문학자는 아니지만, 인생을 좀 더 산 선배로서 오늘 제가 제안하는 다음 3가지를 여러분이 생활에서 실천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첫째, 고전을 많이 읽을 것을 권합니다. 고전을 읽는 것은 빠르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한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며,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성숙해집니다. 고전을 요약해놓은 것을 자꾸 뒤져보는 건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줄거리가 아닌 캐릭터를 보면서 자신을 자주 반추해보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요즘 뮤지컬과 영화로 유명해진 명작 ‘레미제라블’을 생각해봅시다. 사람은 대부분 장발장의 기구한 스토리에만 주목하죠.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장발장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물론, 자베르 경감에게 자신을 대입해보면서 그 사람의 철학과 나의 철학, 그 사람의 삶의 태도와 나의 태도를 비교하고 성찰한다면 훨씬 넓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살피는 것입니다. 고은의 시 ‘그 꽃’이 있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앞만 보고 달려갈 때 우리가 놓치는 것 가운데 정말 꽃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우리 인생에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챙기면서 가는 것이 인문학의 실천이라고 봅니다.
셋째,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참 좋은 시를 하나 더 소개할까요? 장석주의 ‘대추 한 알’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우리는 누구나 대추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겼고, 몇 개가 달렸는지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안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의 고뇌와 외로움, 즉 결과가 아닌 과정을 읽는 것이죠. 우리가 자신도, 타인도 이렇게 들여다볼 줄 안다면 좀 더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인문학 공부 기회 제공
인문학은 결코 취업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 인생을 더 풍요롭고 향기롭게 할 것이며,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 중심을 잡아주고 인생 방향을 제시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저는 혼란의 시대에 올바른 가치관과 남다른 생각을 갖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 리더들에게 ‘청년 영웅’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우리 신세계그룹에서 준비한 인문학 청년인재 양성 프로젝트 ‘지식향연’을 통해 청년 영웅들이 튼튼한 뿌리를 갖추며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합니다.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 전국 10개 대학에서 ‘지식향연’이 펼쳐지는데요. 저는 이 ‘지식향연’을 통해 이 시대 많은 젊은이가 인문학적 지혜와 성찰을 나누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가치를 찾게 되길 바랍니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인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닌 청년 영웅을 발굴해 전 세계 인문학의 중심지를 찾아가는 ‘그랜드 투어’ 같은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저는 앞으로 매년 지속할 이 ‘지식향연’을 통해 이뤄질 인문학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과 공부가 여러분 개인의 행복한 삶의 원천이 되길 기원합니다. 저와 신세계그룹의 응원이 여러분의 값진 미래를 키워가는 데 작지만 소중한 씨앗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스티브 잡스가 자주 인용하던 말이 있죠.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부족하나마 제 생각을 좀 더해서 말씀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미래를 만드는 시작은 사람을 헤아리는 것이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해주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