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늘공(늘 공무원)의 먹튀,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반격?

청와대 전경.

최근 내부 감찰에 적발된 청와대 3~5급 행정관 5명이 징계 없이 원 소속부처로 복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거제’ 출신과 ‘과거제’ 출신 공무원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형국이다. 청와대에 파견된 직업 공무원인 이른바 ‘늘공’(늘 공무원)과 특채 별정직 공무원인 ‘어공’(어쩌다 공무원) 간 긴장관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현 정부 들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어공 측 반격이 시작될 조짐도 보인다.

먼저 이번에 문제가 된 청와대 행정관들의 비위 사실을 보자.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국가정보원 근무 시절 정치에 관여했다는 의혹으로, 홍보수석실 4급 행정관은 향응수수와 인사청탁 등으로, 총무비서관실 8급 직원은 한 남성과 교제하면서 과도한 선물과 생활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원복조치를 받았다. 외교안보수석실 3급 행정관은 친북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에 가입한 혐의와 국가보안법 위반이 적발돼 면직 처리됐다. 앞서 미래전략수석실과 경제수석실 행정관 5명은 관련 부처로부터 법인카드를 상납받아 사용하거나 대기업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는 등 비위 사실이 확인됐지만, 청와대는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해 축소 해명 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 인사 마인드 변화 기대

이들 비위 공무원 10명 중 8명이 징계 없이 원대 복귀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뒤늦게 4월 3일 ‘원복 공무원’에게 징계조치를 취하도록 관련 비위 사실을 해당 부처에 통보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한 어공 행정관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청와대의 늘공은 어차피 원 소속부처로 돌아가 탄탄대로를 달릴 사람이기에 부처에서도 슈퍼 갑(甲)으로 모셔야 할 인사다. 그러니 부처 처지에선 법인카드를 상납하고 잘 모실 수밖에. 방송통신위원회로 복귀한 공무원은 자신이 모신 전직 공무원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에 선출될 수 있도록 청탁을 했다. 이처럼 공무원은 기수를 중심으로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 서로 밀고 당겨주니 이런 사단이 난 거 같다.



대통령 순장(殉葬)조로 부르는 어공 역시 임기 말 ‘자리’를 얻으려고 무리하다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늘공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늘공이 정권 성공을 위해 충성하기보다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다. 비위 사실을 확인했으면 진작 징계를 했어야 한다. 청와대 안에 늘공이 많다 보니 아무래도 원대 복귀라는 ‘선처’ 쪽으로 기운 거 같다. 이참에 청와대 인사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어공이 이 문제로 모임을 갖자고 하는데, 자칫 ‘갑오사화’로 비화될까 조심하고 있다. 최근 외부 인사와 접촉을 자제하라 해서 더는 자세한 말을 못 하겠다.”

행정관 비위 사건 보도 이후 ‘청와대 함구령’이 떨어지면서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어공 사이에선 대통령의 인사 마인드가 바뀌길 기대하는 눈치다. 이를 위해 의견을 모아 다양한 경로로 대통령에게 전달할 움직임도 보인다. 어공으로 분류되는 또 다른 청와대 인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과거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집권 초 철저히 늘공을 중용해 어공의 피해의식이 큰 게 사실이다. 국정기획수석실과 경제수석실 등 핵심 수석실은 관료가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우리(어공)는 홍보수석실 등 비정책부서에 주로 기용됐다. 직급도 낮게 책정돼 일부 당 인사는 아예 청와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입성한 어공도 불만이 컸다. 어공이 정책라인에 거의 합류하지 못하다 보니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 전파도 더딘 거 같다.

역대 정권 인사담당자는 대통령 의중을 대변한 실세급 인사수석(비서관)이었지만 현 정부에선 안행부(안전행정부) 출신 2급 행정관이 팀장이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는 인사위원회가 있지만 사실상 전문성을 중시하는 대통령 의중을 받들어야 하는 만큼 늘공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 않나. 당에서도 여러 차례 당 인사를 받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뿐이었다. 7시에 출근해 청와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사우나한 뒤 업무를 시작하는 늘공이 믿음직스러워 보이겠지만, 우리가 볼 때는 ‘역시 공무원’ 수준이다.”

청와대 인사 구성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2013년 4월 27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 근무자는 모두 476명으로 이 중 정치권에서 온 별정직 공무원은 18명이다. 2급 이하 행정관, 행정요원, 정치권 별정직은 91명으로 전체 2급 이하 437명의 20.8%에 불과하다. 늘공은 대부분 청와대 내 비정책라인에 집중 배치됐는데 주로 정무, 홍보수석실이었다.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대통령 수석비서관회의에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맨 앞) 등 수석비서관들이 들어오고 있다(왼쪽). 3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의 업무 보고에 앞서 참석자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전문성과 정무 감각은 보완관계

정책라인에 있는 어공 역시 대통령 국정철학을 전파하거나 정무적 판단을 하기보다 관료 출신 틈바구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생활한다고 푸념한다. 늘공은 어공에게 “역량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은근히 무시하고, 어공은 늘공에게 “우리(대통령선거 공신)가 없었으면 청와대 입성 못 했을 사람들”이라며 마뜩잖아 한다. 또 다른 행정관의 설명이다.

“우리는 일을 하다 보면 ‘정책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정무적 판단을 얘기했더니 ‘누가 일을 이런 식으로 하나’ ‘당신이 이 업무를 아느냐’며 비아냥거리더라. 수석실 내 직원 대부분이 늘공 출신인데, 다들 이죽거렸다. 치열했던 대통령선거 때가 떠올라 ‘욱’했지만 참을 수밖에.

따지고 보면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청와대는 여론을 예측 감지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정무적 판단이 매우 중요한 곳이다. ‘연간 16만 원 세 부담은 감내할 수준’이라고 말해 비난을 받은 조원동 경제수석이나,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고객이 정보 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는 발언으로 사과한 현오석 경제부총리 역시 정무적 판단이 부족했다. 공무원은 자기들끼리만 일하니까 그렇다. 어공이 이런 문제를 스크린해야 하는데, 수도 적고 수석과 비서관이 시키는 일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 늘공의 구심점이 돼 각 수석실이 제구실을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현 청와대에서는 그런 구심점이 없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구심점을 만들어 의견을 전달하자는 의견도 있다.”

늘공 역시 할 말은 많다. 한 늘공 행정관은 “과거 정부와 달리 ‘박근혜 청와대’에 근무했다고 승진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죽도록 일만 하다 부처로 돌아가도 특정 정치권 인사로 인식돼 힘든 경우가 많다”며 “행정관의 비위 사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늘공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난해 청와대를 떠난 ‘전직 어공’ 인사는 “조선시대 과거제와 천거제를 각각 시행한 이유를 생각해보라. 정책 전문성이 강점인 늘공과 정무적 전문성이 강점인 어공은 서로를 인정하고 협조하는 보완적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며 “인맥 관리 차원에서도 배려와 존중은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