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막식당’ 돼지국수는 돼지 사골과 멸치 육수를 섞어 사용하며 두툼한 돼지고기 꾸미가 인상적이다.
서양 수프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끓인 맑은 국물을 원칙으로 하지만, 한국 사람은 펄펄 오래 끓인 진하고 탁한 국물을 더 좋아한다. 한반도에서 돼지고기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 가운데 하나인 제주에서 돼지국물은 두 가지 방식이 결합했고 거기에 멸치 육수까지 더해진 다양성을 지닌다. 따라서 제주 면요리 핵심은 면발이 아닌 국물에 있다.
제주에서 돼지육수는 잔칫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국물이지만 밀가루를 이용한 국수는 그다지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쌀과 밀 같은 작물은 제주에선 거의 재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말 개화사상가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의 한문일기 ‘속음청사(續陰晴史)’ 중 제주 유배기간에 쓴 일기(1898년 2월 21일자)에 국수가 등장하지만 관리나 지주가 먹던 극히 예외적인 음식이었다.
일제강점기 상대적으로 발달한 면 문화를 가진 일본인이 제주에 거주하면서 제주에도 면 문화가 들어온 것이 증언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제주도민을 상대로 한 대중적인 면 문화는 1950년대 후반 한성국수공장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지금까지 영업하는 한성국수공장의 주요 거래처는 제주 돼지국숫집과 멸치국숫집들이다. 특이하게도 제주 사람은 소면보다 우동 면발 같은 두툼한 중면을 즐겨 먹는다.
제주에서 돼지국수를 처음 상업화한 집은 제주 이도2동에 있는 ‘골막식당’이다. 1958년 창업한 것으로 알려진 ‘골막식당’의 돼지국수는 돼지 사골 30%와 멸치 육수 70%를 섞어 사용한다. 시원한 멸치 육수 맛과 진한 돼지 사골 맛이 잘 조화된 국물이다. 두툼한 돼지고기 꾸미도 인상적이다. 탄력 있는 식감에 단맛이 난다.
제주 술꾼은 2차나 3차로 돼지국수를 먹는 경우가 많다. 돼지국수 국물은 해장용으로 적당하고 풍성한 돼지고기 꾸미는 술안주로 제격이다. 이도2동에서 삼성혈 방면으로 걸어가면 돼지국수 거리가 나온다. 돼지국숫집 예닐곱 곳에서 관광객과 현지인이 섞여 돼지국수를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연일 몰려드는 쇼핑의 거리 신제주 연동에도 유명한 돼지국숫집이 많다. 그 중 ‘올래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골막식당’과 달리 살코기를 기본 육수로 해 맑은 국물이 특징이다. 맑은 육수는 상대적으로 제주 전통 방식의 돼지국물 내기에 더 가깝다. 면발은 대부분 돼지국숫집처럼 한성국수공장에서 만드는 중면을 사용한다. 된장으로 삶은 돼지고기 꾸미에서는 고소한 향이 난다. 이 집 돼지국수를 먹다 보면 내 마음속에 별이 몇 개 그려진다. 근처 ‘탁이국수’는 돼지 사골을 이용한 탁한 국물을 내놓지만 역시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