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털터리 그녀의 풍선 같은 욕망

우디 앨런 감독의 ‘블루 재스민’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09-30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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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털터리 그녀의 풍선 같은 욕망

    케이트 블란쳇(왼쪽에서 두 번째)은 ‘블루 재스민’에서 ‘된장녀’ 재스민 역을 맡아 열연한다.

    미국 뉴욕 명품숍을 누비던 화려한 날들은 샤넬 재킷과 루이비통 여행가방에만 그 흔적이 남았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의 파티와 세련된 매너를 가진 상류층 사교계 인사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TV 앞에서 맥주를 들이켜며 시시껄렁한 욕설이나 내뱉는 천하의 낙오자들만 눈앞에 널렸다. 미국의 거장 감독 우디 앨런의 신작 ‘블루 재스민’ 속 주인공 ‘재스민’(케이트 블란쳇 분)의 이야기다.

    ‘뉴요커’ 앨런 감독이 유럽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환했다. 영국 런던의 상류사회를 무대로 한 ‘매치 포인트’와 ‘스쿠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카사노바의 자유와 연애 같은 유혹의 도시로 묘사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예술과 낭만의 파리를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처럼 그려낸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와 오페라, 스타와 명성, 순정과 불륜의 이탈리아식 재료를 섞어 만든 소동극 ‘로마 위드 러브’를 거쳐 자신의 영화적 본향인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을 다시 출발점으로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블루 재스민’은 뉴욕에서 시작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전개되는, 현대 미국인의 삶에 대한 날카롭고 경쾌하며 익살맞은 풍자극이다. 1% 최상류층의 삶을 상징하는 뉴욕 5번가와 잃을 것 없는 인생들이 모여 사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사이에서 주인공은 오도 가도 못한 채 자기기만에 빠져 허우적댄다.

    빈털터리 그녀의 풍선 같은 욕망
    재스민은 한국식으로 치자면 중년의 ‘된장녀’다. 한때 뉴욕 맨해튼 5번가의 명품숍을 누비고 다녔고, 햄프턴의 최고급 저택에 상류층 인사들을 초빙해 연일 파티를 연 대부호의 안방마님이었다. 그런데 화려한 날은 가고, 빈털터리가 된 채 이제 막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참이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돼 여동생 ‘진저’(샐리 호킨스 분)에게 신세를 지기 위해서다.

    재스민은 대학시절 만난 사업가 ‘할’(앨릭 볼드윈 분)과 결혼한 뒤 남편의 사업 성공으로 꿈에 그리던 부와 명예를 얻었다. 남편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재스민이 누리던 호사도 갈수록 더해갔지만, 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왔다.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것이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닥쳤고 추락하는 삶에는 날개가 없었다. ‘사업수완’으로만 믿었던 남편의 능력이 하루아침에 부정과 비리로 판명 났고, 재스민도 하릴없이 파산을 맞았다. 과연 재스민의 인생 재역전은 이뤄질까.



    앨런 감독이 보여주는 현대 미국은 취향의 사회이며 ‘브랜드’의 세계다. 브랜드로 집약된 취향과 욕망의 세계다. 재스민은 빈털터리가 돼 올라탄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에서도 루이비통 여행가방을 고집하고, 에르메스 버킨백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샤넬 재킷으로 몸을 감싼다.

    뉴욕 대부호의 우아한 안방마님과 늘 투덜대는 고집쟁이 중년여인은 물론, 광기 어린 표정으로 혼잣말을 늘어놓는 정신분열 증세의 여인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낸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훌륭하다. 무엇보다 그는 79세에도 여전히 수다스럽고 능청스러운 재담가이자, 뛰어난 드라마작가인 앨런 감독의 세계와 찰떡같은 궁합을 보여준다. 앨런 감독의 또 다른 ‘클래식’이라는 찬사가 별로 아깝지 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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