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맨 오른쪽)이 세제개편 수정안을 설명하려고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을 찾았다.
먼저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한 대통령선거(대선) 공약과 달리 세제개편안은 사실상 증세라는 점이다. 둘째, 증세 대상이 고소득층이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층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현 정부는 대선 공약을 파기하면서도 해명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철학에도 맞지 않는다.
나라 살림의 재원은 세금으로 마련하기 때문에 살림 규모가 커지면 세금을 더 징수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증세 요인이 산적해 있다. 그중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고령사회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 인구의 12%인데, 2020년에는 16%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인구는 급속히 증가해 2030년에는 4명당 1명, 2050년에는 3명당 1명이 노인인 사회가 된다.
세제개편안 졸속 그리고 불공평
고령사회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적어 세금이 적게 걷힐 수밖에 없는 반면, 노인인구가 늘어나 복지 지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세련된 재정운용만이 그리스 같은 국가부도 위기를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증세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증세 이유에 대해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증세를 증세가 아니라고 변명했던 게 국민을 화나게 했다.
기획재정부의 세제개편안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된 부분은 증세 대상으로 고소득층이 아니라 서민층과 중산층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개편안은 당초 연간 총소득 3450만 원 이상이면 세 부담이 늘어나는 쪽으로 설계했다. 연간 총소득 3450만 원은 소득 10분위 중 아래에서 네 번째 수준이다. 통계 자체로 보면 서민층, 혹은 소득 수준이 낮은 중산층에 속한다. 대한민국 인구를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10%에서 가장 높은 10%까지 10등급으로 분류한 통계를 소득 10분위라고 하는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4분위 연평균소득은 3529만 원 수준이다. 이 그룹에게 세금을 더 내라는 방식의 세제개편은 공평하지 않다.
세제개편안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자 개편안 발표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정부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세금을 더 내는 소득 수준을 3450만 원에서 5500만 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러면서 논리적 근거로 이 정도가 중위소득의 150%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중위소득은 전체 가구를 소득 순위로 정렬한 후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이것 역시 졸속이라 비판받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이 중위소득의 50%에서 150%에 위치한 소득그룹을 중산층이라고 정의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대한민국 중산층은 연소득 1825만 원에서 5500만 원 사이다. 하한선 1825만 원은 2분위의 연평균소득에 근접한 수준으로 중산층이라고 보긴 어렵다. 상한선 5500만 원은 7분위의 연평균소득 수준으로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지만, 중산층 상한선으로 보긴 어렵다. 대한민국 소득분포는 유사 정규분포를 유지하지 않고 양극화의 깊은 골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 10분위 분포를 보면 양극화 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통계청의 2013년 1/4분기 자료에 의하면 가장 높은 소득 10분위의 연평균소득은 1억2022만 원 수준인데, 그 아래 9분위의 소득 수준은 8010만 원에 불과하다. 이 두 그룹의 소득 격차는 4013만 원이다. 여기에 비해 나머지 소득그룹의 차상위 분위와 소득 격차는 많으면 1100만 원, 적으면 700만 원 수준이다. 예컨대 9분위와 8분위의 평균소득 격차는 1174만 원이고, 8분위와 7분위의 격차는 955만 원이며, 7분위와 6분위의 격차는 740만 원 수준이다. 최고 10분위의 소득은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나머지, 즉 대한민국 인구 90%의 소득은 정체된 현실을 이 통계수치가 밝히고 있다.
참담한 현실이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잘사는 10%와 못사는 90%로 양극화됐기 때문에 OECD 방식으로 중산층을 정의할 수 없다. 이 사실을 당국이 인식해야 공정한 조세정책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중산층의 상한선 5500만 원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수치다. 연간 소득 수준이 6000만 원이면 8분위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최고 10분위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워낙 크게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말하길 꺼린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증세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증세를 밀어붙인다 하더라도 강력한 조세저항과 사회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세제개편안에서 간과하는 점은 과세구간이다. 소득세의 경우 과세구간 조정 없이는 공정 세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 역진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소득세의 경우 2012년 귀속 과세구간은 5등급이었다. 최하구간은 연소득 1200만 원 이하로 세율은 6%, 그다음은 4600만 원 이하로 세율은 15%, 3등급은 8800만 원 이하로 세율은 24%, 8800만 원 초과는 35%, 3억 원 초과는 38%로 설정해놓았다.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공평하게 보일 수도 있다.
“세 부담 늘려야” 국민 설득을
8월 13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있는 천막당사에서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박근혜 정부 세제개편안 토론회’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과세구간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그 방향에도 문제가 있다. 고소득자의 최고 과세구간을 3억 원에서 1억5000만 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이것 또한 소득분포 현실을 간과한 제안이다. 1억5000만 원이면 최고 10분위 소득그룹의 평균소득 수준이다. 공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들에게 과도한 누진세를 물릴 것이 아니라, 3억 원 이상 초고소득자에게 더 높은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대선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공약이다. 당시 전문가들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박근혜 대선후보 측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다시 문제가 됐다. 전 국민 기초노령연금 제공과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을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렵다는 문제가 정부 측에서 제기되자 공무원의 안일한 사고라고 비판하면서 다시 위기를 넘겼다. 정책 현장에서는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요령은 바로 탄로 나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허구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신뢰받는 정부가 되기 어렵다. 일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복지비는 늘어나는 고령사회의 우울한 현상을 누구든 나서서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조금씩 국민의 세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제시하고, 국민으로부터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것만이 정부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임을 인식해야 한다.
나쁜 정부는 허구를 진실이라 선전하면서 국민을 착각하게 만들지만, 착한 정부는 정책 방향의 실패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가 착한 정부로 인정받는 길을 선택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