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6일 오후 ‘변호사시험 정원제 반대’ 전국 법학전문 대학원 집회에서 재학생들이 자퇴서를 단상에 쌓고 발언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미국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법학교육을 대학원 교육, 소위 로스쿨 교육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영미법계 모국인 영국뿐 아니라 대륙법계인 프랑스와 독일은 여전히 학부 법학교육 체계를 유지한다.
우리나라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턴가 사법개혁 일환으로 법학전문대학원, 소위 로스쿨 도입 논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로스쿨은 일본이 먼저 도입했다. 하지만 일본 로스쿨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자체적인 모델이다.
첫째, 학부에 법학과가 있든 없든 준칙주의에 따라 로스쿨을 설치할 수 있다. 둘째, 학부 법학교육은 그대로 유지한다. 셋째, 로스쿨 교육기간은 차등화한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자는 2년, 비법학사는 3년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법학부가 존치하기 때문에 로스쿨 도입에 따른 충격이 최소화됐다. 하지만 법학부도 없는 대학에 로스쿨 설치를 허용한 준칙주의는 법학교육 파행을 초래했다. 준칙주의에 따라 로스쿨이 많이 세워졌지만 로스쿨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그에 상응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합격률이 20%대를 맴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벌써 자진 폐교와 정원 감축을 선택하는 로스쿨이 속출한다.
한국형 로스쿨 새로운 문제점
일본식 법률가 양성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 우리나라에서는 로스쿨 도입 외관만은 완전히 미국식을 택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로스쿨을 도입한 대학에서는 법학부를 폐지하게 했다. 하지만 미국식 자유주의 산물인 로스쿨이 한국에서는 관치행정의 산물로 전락했다. 철저한 인가주의에 따라 전국 100개 가까운 법학부 가운데 25개 대학만 인가해주고, 입학정원도 2000명으로 제한했다. 그 결과 미국에는 이미 사라진 학부 법학교육이 25개 대학 외 대학에서는 그대로 지속되는 이중적 형태를 보인다.
한국형 로스쿨은 최근 새로운 문제점에 봉착했다.
첫째, 로스쿨 졸업생에게만 변호사시험(변시)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문제다. 사법시험(사시)은 2017년 종료한다. 이에 로스쿨 졸업생 외 사람에게도 변시 응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소위 예비시험 도입론이다. 이 와중에 사시 존치론도 제기되지만 이는 로스쿨 제도의 도입 취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기에 논란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예비시험 도입은 타당한가. 이론적으로는 로스쿨을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법률가가 되는 길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일본도 예비시험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형태는 다양하지만 어찌됐든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아도 법률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제도의 평면적 이해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한국식 정부통제형 로스쿨 제도의 본질에 비춰본다면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도 법률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여는 순간 로스쿨은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로스쿨 도입 취지가 법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방지하고 우수한 젊은 인재의 고시 낭인화를 차단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로스쿨 제도에 제3의 길을 열어서는 안 된다. 의사가 되려면 반드시 의대를 졸업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로스쿨의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학제도의 획기적인 확충이 필요하다. 또 법학부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들이 로스쿨에 진입할 수 있는 문호를 실질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둘째, 변시의 안정적인 정착이 먼저다. 2회에 걸친 변시 결과는 중요한 가늠자가 된다. 1회 변시에서는 87%라는 높은 합격률이 문제였다. 그런데 1회 탈락자들이 가세한 2회에서는 합격률이 75%로 내려가며 불합격자가 500명 이상 나왔다. 변시는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5회까지 응시할 수 있다. 앞으로 불합격자가 누적되고, 합격자 수가 지금처럼 1500여 명 수준을 유지하면 최대 4000명이 응시할 경우 결국 2500여 명이 불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응시자 대비 최소 합격률이 70~75%는 보장돼야 한다.
다만 이 경우 안 그래도 심각한 취업문제가 더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는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취업문제 못지않게 기왕에 닻을 올린 로스쿨의 성공적인 정착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합격률 보장으로 제도를 운영하더라도 매년 최소 500명에서 최대 1000명까지 불합격자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합격자를 1500여 명으로 정해두면 최악의 경우 합격자를 20~30%밖에 배출하지 못하는 로스쿨이 생기게 될 테고, 이에 따라 이들 로스쿨의 존폐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변시 재시자 불합격은 학내외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재시자들의 합격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용해서도 안 된다. 합격률 보장과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는 로스쿨 도입 취지와 직결된 로스쿨 교육의 다양성을 상실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변시 유관과목 중심의 수강 현상이 드러나는 판에 변시 합격이 어려워지면 변시 과목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과목의 폐강이 속출할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공통과목 개설을 통해 소수과목의 폐강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4월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주최로 열린 로스쿨 설립취지 실현 촉구 기자회견.
이론과 실무 아우르는 교육 필요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대기업에선 법률전문직이 아닌 일반 비즈니스직으로도 로스쿨 졸업자를 채용한다. 법률가 자격을 가진 이들이 비즈니스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후학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마련된다. 회계사가 자격만으로 우쭐대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취업에 유리한 스펙으로 회계사에 도전하는 시대가 됐다. 변호사도 비슷한 길로 갈 것이다. 이에 능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기업들도 로스쿨 변호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무렵 대한민국 그 어느 금융기관에도 전임변호사가 없었다. 많은 법적 업무를 법대를 졸업한 비법조인이 담당했다. 그 자리를 변호사가 담당하면 훨씬 더 능동적인 업무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변호사를 채용하는 데 고비용이 드는 시대는 끝났다. 금융기관에서도 많은 변호사가 ‘인 하우스 카운슬러’로 활동 중이다. 변호사들이 송무에만 매달려서는 미래가 없다. 더 나아가 세계화 시대에 국제기구나 다국적기업으로 진출하려는 의지도 필요하다.
다만 로스쿨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준법조직은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점이 남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법무사는 등기변호사, 변리사는 특허변호사로 일괄 전환하고 법무사시험과 변리사시험을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학부 법학교육이 지속될 것이다. 종래 100개에 가까운 전국 법학부가 한결같이 비슷한 커리큘럼으로 교육해오던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로스쿨이 전문적인 법률가 양성을 위한 코스라면, 법학부는 법적 소양을 갖춘 지성인을 배출하는 장이다. 따라서 법학부는 전통적인 사시 중심 운영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리걸 마인드(legal mind)를 갖춘 좀 더 실사구시적인 인재 양성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로스쿨 교육도 실무교육 중심 환상에서 벗어나 이론과 실무를 함께 아우르는 방향으로 틀을 잡아가야 한다. 로스쿨 출범과 더불어 소위 실무교수를 많이 채용했지만 어차피 전임 교수가 된 이상 더는 실무교수가 아니다. 더구나 미국과 달리 실정법 체계를 갖춘 우리나라에서 교수는 이론 중심 체계를 구축하고 현직 법원과 검찰의 판검사, 경륜 있는 개업변호사를 통해 살아 있는 현장 실무를 배우는 길을 확고히 해야 한다. 특히 로스쿨 도입에 따른 학문후속 세대 양성도 시급한 과제다. 우수 인재가 로스쿨 졸업 후 취업보다 박사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